여러 대의 아날로그 전화기가 보입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벨이 울리고 있습니다.
한 다이얼 전화기 앞에 다가가 봅니다.
'누군가의 부재중 통화를 받아보세요'라는 글이 적혀 있습니다.
조심스레 수화기를 들어보니
잠시 후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떨리는 목소리, 망설이는 목소리,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인생 살기 힘들다며 고통스러워하는 사람,
헤어진 연인을 여전히 그리워하는 사람,
엄마를 부르고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사람.
수화기 너머의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들의 짧고 긴 고백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이 목소리는 어디에서 들려오는 걸까요?
이제는 거리에서 사라져버린 공중전화 부스가
공간 한쪽 편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공중전화 부스 안으로 들어가면
이런 글이 보입니다.
"차마 말하지 못해
부재중 통화가 되어버린 이야기,
당신에게도 있나요?
이제 누군가는 들어주었으면 하는
당신의 '하지 못한 말'을 남겨주세요.
당신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그 어떤 말도 괜찮습니다."
요금을 넣을 필요도, 전화번호를 누를 필요도 없습니다.
공중전화 수화기를 들면 녹음을 알리는 소리가 흘러나오고
하고 싶은 말을 남기면 됩니다.
당신은 누구에게, 어떤 말을 전하고 싶은가요?
누군가는 들어주었으면 하는
당신의 부재중 통화는 무엇인가요?
이곳에 남겨진 이야기들은 데이터화되어 공중전화 부스 밖,
우연히 수화기를 든 누군가에게 랜덤하게 전달됩니다.
전시가 끝나면, 남겨진 이야기들을
세상의 끝에 놓아주는 의식이 진행됩니다.
2018년 처음으로 모여진 부재중 통화들은 2019년,
지리적 세상의 끝인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의 바람 속에
자유롭게 놓아졌습니다.
이후 2021년까지 모인 통화들은
사하라 사막의 고요 속으로 흩어질 예정입니다.
책에 등장하는 부재중 통화들은
상대방이 듣지 못해도 닿길 바라는 목소리들입니다.
나이도, 성별도 알 수 없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당신에게 작은 파동으로 다가가길 바랍니다. (프롤로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