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누구니 - 젓가락의 문화유전자 한국인 이야기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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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젓가락이다. 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 두 번째 이야기 소재로 젓가락이 선택되었다. 안 그래도 첫 번째 이야기 <너 어디에서 왔니>를 읽으며 옛날이야기의 세계에 푹 빠져들었던 기억이 생생한데, 이번에는 젓가락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고 하니 이 책도 읽어보고 싶었다.

지난번 책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어령 선생님이 고인이 되셨다는 점이다. 그래도 이 책을 펼쳐들면 이 안에서 생명력을 느끼게 될 것이다. 남기신 이야기는 오래도록 우리 곁에 살아 숨 쉬리라.

한국인 이야기는 전4권으로 구성되는 한국인 이야기와 전6권으로 이제 가제만 정해진 '아직 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의 대작이다. 평생의 지적 편력을 집대성한 최후의 저작 시리즈다. 그 두 번째 이야기 『너 누구니』를 읽으며 젓가락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살펴보는 시간을 보낸다.



이 책의 저자는 이어령. 그는 60년 이상 평론과 소설, 희곡, 에세이, 시, 문화비평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방면의 글을 써왔다. 인생의 후반에 이르러 평생의 지적 편력을 담은 후기 대표작 '한국인 이야기(전4권)'와 '아직 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전6권)' 시리즈를 집필해 왔다. 시리즈의 첫 번째 책으로 《너 어디에서 왔니》를 출간했으며, 2022년 두 시리즈의 방대한 원고를 유고로 남기고 영면에 들었다. (책날개 발췌)

이야기 속으로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고개를 넘어가는 이야기'와 젓가락질의 시작 '젓가락은 문화유전자다', 여는 시 '생명공감 속으로' 등으로 시작되어, 수저 고개, 짝궁 고개, 가락 고개, 밥상 고개, 사이 고개, 막대기 고개, 엄지 고개, 쌀밥 고개, 밈 고개, 저맹 고개, 분디나무 고개, 생명축제 고개 등 열두 고개로 이어진다. 저자와의 대화 '인류 최초의 요리사와 전사의 도구, '부지깽이'와 '작대기''와 맺는 시 '보릿고개 넘어 젓가락 고개로'로 마무리된다.

만약에 말입니다, 우리가 모두 젓가락질하는 방법을 잊었더라면, 그것은 단순한 두 개의 막대기에 지나지 않았을 겁니다. 젓가락은 옛날 유물이 아닙니다. 지금도 끼니 때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사용하는 물건입니다. 신기하지 않습니까. 천년 동안 내려온 젓가락과 젓가락질. 그 속에 한국인의 마음과 생활의식이 화석처럼 찍혀 있다면, 그것은 어떤 고전보다도 더 많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줄 것입니다. (14쪽)

시작부터 젓가락에 관한 방대한 이야기가 펼쳐져서 곧바로 집중해서 읽어나가도록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리고 어디에서도 못 보았던 의미를 짚어주니 '아, 그렇네!' 하면서 읽어나가게 된다.

그런데 말입니다. 중국이든 일본이든 아이누든, 먹을 것을 옮기는 식도구의 이름이 직접 인체와 연결되어 있는 것은 한국뿐입니다. 손가락에서 젓가락이란 말이, 그리고 숟가락이란 말이 생겨난 것이지요. 그래서 손가락과 연결된 젓가락, 숟가락은 바로 내 몸의 피와 신경이 통하는 아바타인 것입니다. 사람과 도구 사이만이 아닙니다. 저희끼리도 가락이라는 돌림자로 형제처럼 짝을 만들어 수저가 됩니다. 숟가락은 음으로 국물을 떠먹고, 젓가락은 양으로 그 속에 있는 건더기를 집습니다. 그 어려운 주역의 괘는 젓가락이 되고, 태극의 원은 숟가락의 동그라미가 됩니다. (17쪽)



이 책에 담긴 이야기는 짤막한 문단으로 끊어서 번호를 붙여서 들려주니 긴 이야기인 줄도 모르고 읽어나가게 된다. 다 읽고 보면 상당히 두꺼운 분량의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게다가 이 한 권에 젓가락 이야기만 가득한 것이니 생각하면 할수록 신기하다. 그것도 이렇게 연결되는 것도 신기하고, 이런 이야기로 흘러가는 것도 신기하고, 죄다 신기한 것투성이라는 점에서 놀랍게도 재미있다.



그러고 보면 '젓가락' 하면 '젓가락 행진곡'을 떠올릴 수 있겠다. 그런데 젓가락 행진곡의 원제목은 <The Celebrated Chop Waltz>이며,1877년 영국에서 16살 소녀 유페미아 앨렌이 아르투르 데 륄리라는 가명으로 발표한 곡이라고 한다. 여기서 이어령 선생님의 이야기는 이어진다.

우리는 몇천 년 동안 사용해왔고, 지금도 매일 젓가락으로 식사를 한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젓가락 행진곡이 작곡된 것처럼, 젓가락을 문화로 만들지 못했을까? 엉뚱하게 젓가락질도 못 하는 서양 사람이 만든 찹스틱 왈츠라는 곡을, 그걸 어쩌다 우리가 치고 있는지 한 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젓가락 문화권에서 젓가락 왈츠 같은 음악이 작곡되지 않은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것도 등잔밑이 어둡다고 하면서 그냥 지나칠 것인가. 흔하게 보는 하찮고 작은 것에 문화의 단초를 끌어내, 응용하고 창조하는 힘을 기르지 못한다면 앞으로 우리가 21세기를 살아가는 일이 만만치 않을 거다. (47쪽)




이 책을 읽다 보면 그야말로 젓가락에 관한 거의 모든 이야기를 담았다고 보면 되겠다. 주역과 젓가락이라든가, 한중일 3국의 젓가락 문화 등등 읽을거리가 풍성하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비싼 젓가락의 가격은 얼마인지에 관한 이야기도 들려주니 저절로 시선이 집중된다.

그래서 그 답은 무엇일까? 이건 살짝 언급해야겠다. 사진은 그다음다음 페이지에 있으니 참고할 것.

세계에서 가장 비싼 젓가락의 가격은 얼마일까? 무려 1억 원에 달한다. 일본 최대의 젓가락 제조회사 효자에몽에서 베이징올림픽을 맞아, 동아시아의 젓가락 문화를 알리겠다는 취지로 만들었다고 한다. 흑단나무에 금과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것인데, 그 호사스러움에 입이 벌어진다. 그래도 이 젓가락을 만든 사람이 한국인이라니 그나마 위안으로 삼아야 하나. 일본은 젓가락 관련 '특허 기술'만도 2,000여 종이 넘는다. 효자에몽에서 운영하는 젓가락 전문 판매점도 500여 곳이다. 이처럼 일본은 젓가락에 있어선 가히 독보적이다. (277쪽)



이 책을 펼쳐들면 이야기보따리가 큰 것 하나 뚝 떨어진다. 젓가락에 관한 것이라고 한다. 아무 생각 없이 보따리를 풀어보니 갖가지 이야기가 오색찬란하게 방안 가득 펼쳐진다. 아니, 이 책의 뒤표지에 있는 사진처럼 생각하면 되겠다. 젓가락과 이 세상이다. 지구를 들어 올리고 있는 젓가락이다. 이렇게 보면 이 한 권으로도 사실 모자란 셈이다. 고르고 골라서 담아낸 것이라 보면 된다.

이어령 선생님의 책 중 특히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는 앞으로도 출간되는 대로 다 볼 것이며, 모두 소장해둘 것이다. 꺼내들어 아무 데나 펼쳐들고 읽어도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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