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 삶이 불쾌한가 EBS 오늘 읽는 클래식
박은미 지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 EBS BOOKS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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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박찬국 교수의 『사는 게 고통일 때, 쇼펜하우어』를 읽으며 쇼펜하우어에 대해 재인식했다. 쇼펜하우어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던 염세주의자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매력을 느꼈다. 게다가 톨스토이, 투르게네프, 도스토옙스키, 에밀 졸라, 모파상, 앙드레 지드, 프루스트, 버나드 쇼, 서머싯 몸, 헤르만 헤세 등의 문학 세계에 폭넓은 영향을 끼쳤다고 하니 더욱 관심이 갔다.

그동안 잘 모르고 있었고 더 알고 싶다는 호기심이 생겨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 도전했는데, 그 책에서 아쉬운 것이 있다면 글씨가 너무 작고 빽빽해서 눈이 아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 번에 많은 분량을 읽을 수 없으니 몇 개월의 프로젝트처럼 거창하게 그 책을 읽어나간 적이 있다.

그러니 이 책을 보며 어찌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두께도 적당히 얇고 EBS 오늘 읽는 클래식 시리즈 중 한 권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EBS 오늘 읽는 클래식 시리즈는 동서양 철학 고전을 쉽고 입체적으로 읽도록 도와주는 친절한 안내서이자 동반자라고 한다. 자칫 사상의 숲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독자에게 저자는 방향을 찾아주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징검다리를 제공해 준다는 것이다. 한껏 가벼운 마음으로 이 책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박은미. 철학커뮤니케이션 연구소장이다. 이해하기 쉬운 말과 글로 일반인과 철학 사이에 다리를 놓는 철학커뮤니케이터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자 철학커뮤니케이션 연구소를 설립했다.

이 책의 기획은 한국철학사상연구회가 했는데, 자기 성찰과 실천적 모색을 통해 철학의 대중화를 지향하는 철학 연구자들의 모임으로 1989년에 창립했다. '이념'과 '세대'를 아우르는 진보적 철학의 문제를 고민하며, 좁은 아카데미즘에 빠지지 않고 현실과 결합된 의미 있는 문제들을 통해 철학의 대중화에 앞장서고자 한다. (책날개 발췌)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라는 책 제목을 들으면 무언가 알 수 없을 것만 같고 그래서 더 멋있는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히게 된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제목을 이해하면 내용의 절반을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독자들이 이 책을 덮을 때 '책 제목을 왜 이렇게 지었는지 알겠다'라고 한다면 이 책이 해설서로서의 책무는 어느 정도 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4쪽)

그러고 보니 길을 잃기 쉬운 때에는 누군가 안내해주며 꼭 보아야 하고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을 핵심적으로 짚어줄 필요가 있다. 이 책이 그 역할을 한다. 나는 두껍고 빽빽한 책을 겨우겨우 다 읽었다는 성취감보다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쇼펜하우어가 말하고자 하는 바의 핵심을 짚어보고 싶으니 이 책이 제격이었다.

이 책의 저자는 쇼펜하우어와 우리를 이어주는 중간 역할을 잘 해낸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설명이 무슨 의미인지 와닿으니, 쇼펜하우어의 철학도 한껏 가까워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면서 지금 나에게 필요한 철학적 사색을 하도록 이끌어준다.

우리는 갈등이 생길 때 저 사람이 일부러 나를 괴롭힌다고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그 사람은 그저 자기 방식대로 존재했을 뿐이다. 나는 내 방식대로 존재하고 그 사람은 그 사람 방식대로 존재할 뿐인데, 나는 그로 인하여 그는 나로 인하여 불편을 느끼는 것이다. 우리는 불편을 주는 상대방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곤 하지만, 그 사람은 내가 불편한지조차 의식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개별 존재는 모두 자신의 방식으로 존재할 뿐인데, 그것이 다른 존재에게 불편이 되고 고통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인간은 고통 없이 살고 싶어 하지만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그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 (108쪽)




이제 우리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의 마지막 부분에 도달했다. 쇼펜하우어는 자신이 말하는 의지의 부정이 '허무나 공허함에 지나지 않는 무(無)'로 보일 것을 알고 있기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오히려 의지가 완전히 없어진 뒤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이 아직 의지로 충만한 모든 사람에게는 무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거리낌 없이 고백한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의지가 방향을 돌려 스스로를 부정한 사람들에게도, 우리의 그토록 실재적인 이 세계는 모든 태양이나 은하수와 더불어 무인 것이다. (71절)

저자의 해설과 함께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짚어보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생각보다 얇고 쉬운 설명으로 이어지는 책이어서 술술 읽어나갈 수 있다. 그러면서 핵심을 놓치지 않고 파악할 수 있어서 의미가 있다. 제법 멋진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꼭 보아야 할 것을 놓치지 않고 본 듯하여 흐뭇하다.

EBS 오늘 읽는 클래식 시리즈는 플라톤의 국가,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모어의 유토피아, 로크의 정부론, 스미스의 국부론, 홉스의 리바이어던, 베이컨의 신기관,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마르크스의 자본론, 맹자, 순자가 출간되었고, 계속 출간될 예정이다.

고전은 동서고금의 사상가들이 고심해서 쓴 글이며 지금까지 살아남은 값진 글들이지만, 고전 그대로 접하며 읽어나가다가는 자칫 책 읽기에 흥미를 잃거나 고전과 더욱 멀어지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하지만 EBS 오늘 읽는 클래식 시리즈는 사상의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매지 않도록 방향을 찾아주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징검다리를 제공해 준다고 하니, 한껏 부담감을 덜고 가벼운 마음으로 저자의 안내에 따라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리즈의 다른 책들에 대해서도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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