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 철학자 강신주 생각과 말들 EBS 인생문답
강신주.지승호 지음 / EBS BOOKS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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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강신주의 신간이 나와서 반가운 마음에 읽어보았다. 사실 '반갑다'라기보다는 사진을 보고 많이 놀랐다. 몇 년 전 직접 강의에 찾아갔을 때만 해도 이렇지는 않았는데,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걱정스러웠다. 그래도 그 부분에 있어서는 프롤로그를 보며 의문이 조금이나마 풀렸다.

강신주 선생님이나 저에게 생긴 가장 큰 변화는 건강이 나빠졌다는 것이었습니다. 강신주 선생님은 방대한 《역사철학·정치철학》 작업을 하시면서 너무 무리를 한 결과였고, 저는 조울증으로 인한 알코올의존증으로 건강을 해친 것이니, 차이는 있었습니다. 강신주 선생님은 그 과정에서 나이 든 사람과 아픈 사람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씀하셨고, 저 역시 고혈압과 당뇨병, 고지혈증 등의 진단을 받으면서(성인병 3관왕, 이렇게 어른이 되어가나 봅니다) 제 삶을 다시 돌아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잃은 것만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축복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6쪽)

이 책은 철학자 강신주와 인터뷰어 지승호의 열한 번의 만남으로 구성된 책이다.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해서 이 책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를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은 강신주와 지승호의 인터뷰 형식으로 구성된다. 강신주는 철학과 삶을 연결하며 대중과 가슴으로 소통해온 '사랑과 자유의 철학자'. 동서양 철학을 종횡으로 아우르며 냉철하면서도 따뜻한 인문학적 통찰로 우리 삶과 시대를 관통하는 주제들에 다가가고 있다. 지승호는 인터뷰어로 살고 있으며 60여 권의 인터뷰 단행본을 냈다. (책날개 발췌)

이 책은 총 열한 번의 만남으로 구성된다. 프롤로그 '우리 모두 조금만 더 가난해졌으면(지승호)'를 시작으로, 첫 만남 '자유로운 사람만이 사랑할 수 있다', 두 번째 만남 '사람의 문맥을 읽는다는 것', 세 번째 만남 '팬데믹 그리고 언택트', 네 번째 만남 '스마트폰 사회경제학', 다섯 번째 만남 ''작은 자본가'들의 세상', 여섯 번째 만남 '가족공동체와 '기브 앤 테이크'의 세계', 일곱 번째 만남 '진보의 전제는 타인에 대한 애정이다', 여덟 번째 만남 '구경꾼에서 주체로', 아홉 번째 만남 '글, 책, 담론들', 열 번째 만남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열한 번째 만남 '넓은 잎을 가진 철학 나무처럼'으로 이어지며, 에필로그 '두 번의 인터뷰 그리고 두 가지 바람(강신주)'로 마무리된다.

이 책의 제목은 폴 발레리의 시 <해변의 묘지> 중에서 알려진 문장이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세찬 바람이 내 책을 펼쳤다가 닫고,

파도의 포말들이 바위 틈에서 작열한다!

날아 흩어져라, 찬란한 모든 페이지들이여!

_폴 발레리, <해변의 묘지> 중에서

그냥 이 시만을 접했을 때에는 잘 몰랐지만, 철학자 강신주의 최근 삶을 가늠해 보니 그 말의 의미가 더 커다랗게 다가온다.

2021년 여름 전후 내 몸은 최악이었다. 살이 20킬로그램 정도나 빠졌다. 물론 2022년 1월 지금도 완전히 정상을 되찾지는 못했지만. 당시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몸을 돌보는 데 보냈다. 그러나 산책도 버거울 정도로 몸에 기력이 없었다. 걸어야 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기에 나는 걷고 또 걸었다. 걷는 것도 무척 힘들었다. 걸을 때도 왼발이 땅바닥에 스쳐 자주 휘청거리곤 했다. 발을 제대로 들 수 있는 근육량마저 부족했던 탓이다. (367쪽)

그 상황에서 인터뷰를 하고 정리하여 한 권의 책으로 나왔으니 이 책을 꼭 읽어보아야겠다고 생각하며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를 힘껏 펼쳐들었다.




이 책은 인터뷰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현장에서 이들의 대화를 듣는 듯이 읽어나가면 된다. 물론 지승호는 짤막하게 질문을 던지고, 강신주가 길게 대답하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11번의 만남과 3000매의 녹취록을 바탕으로 철학자 강신주의 육성을 온전히 담아냈다고 하는데, 술술 읽을 수 있도록 부드럽게 다듬어 냈다. 말이 아니라 글로 이렇게 현장감을 느낄 수 있어서 2022년 강신주 철학자의 강의를 현장에서 듣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철학자 강신주의 강의는 사람 마음을 좀 불편하게 한다. 그게 철학의 시작인가 보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 마음 자세부터가 다르다. 이 책을 읽으며 수많은 생각이 내 안에서 달그락거리며 격정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강신주의 이야기는 철학적 사유를 하게 만든다. 지금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건지, 우리는 무엇을 한 것이고 어디로 향해 가는 건지, 생각이 많아진다.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살아내기를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며 소통하고 연대할 수 있기를

인간에 대한 사랑과 공동체 의식을 회복하기를

그리하여 폭주하는 기차의 비상 브레이크를 함께 잡아당길 수 있기를… (책 뒤표지 중에서)

이 책은 EBS 인생문답 시리즈 1권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이다. EBS 인생문답은 인터뷰 시리즈로 인생을 묻고 철학을 답하는 기획이다. 자신만의 철학으로 일관된 삶을 살아가면서도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쟁점을 품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것이다.

이 책은 부드럽게 읽어나가다가도 문득 철학자 강신주의 소신 있는 발언에 멈춰 서서 생각에 잠기게 된다. 글만 읽는 것이 아니라 던져준 화두를 받아들고 사유하도록 이끌어준다. 쫙 펼쳐진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보다도 멈춰 서서 사색에 잠길 기회를 많이 주는 책이어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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