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볼트 - 지구의 재앙을 대비하는 공간과 사람들
시드볼트운영센터.산림생물자원보전실 생물자원조사팀.야생식물종자연구실 지음 / 시월 / 202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처음 접하고는 나의 반응은 '오호~ 뭣이라?!'였다. '시드볼트'의 존재는 그야말로 나를 훅 치고 들어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러니까 나는 '종자'라는 것은 '종잣돈'할 때의 '종자' 정도만 예전부터 알고 있었고, 그나마 밥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채소가 우리나라에서 나지만 종자 양육에 대한 사용료를 내고 있다는 사실 정도만 최근에 알게 되었다.

그런데 시드볼트라니 눈이 번쩍 뜨이는 호기심으로 이 책을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드볼트는 씨앗을 뜻하는 Seed와 금고를 뜻하는 Vault를 더한 단어로, 종자를 저장하는 일종의 금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생력을 잃어 가는 식물은 물론, 기후 변화나 전쟁, 핵폭발 등 지구 차원의 대재앙에 대비해 야생식물의 멸종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현대판 노아의 방주라고 불리기도 하죠. (17쪽)

그리고 중요한 것. 시드볼트는 전 세계에 단 두 곳밖에 없으며, 그중 한 곳이 바로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인 것이다. 그곳에 대한 이야기를 책으로 만난다고 생각하니 이 책을 읽기 전에 벌써 설렌다.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춘양로 1501

이곳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이하 백두대간수목원) 내에 전 세계에 단 두 곳밖에 없는 시드볼트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노르웨이의 스발바르 글로벌 시드볼트는 주로 작물 종자를 저장하고, 백두대간수목원의 백두대간 글로벌 시드볼트는 야생식물 종자를 보관합니다. 두 시드볼트의 역할이 다른 만큼 이곳은 야생식물 종자 저장고로는 전 세계 유일무이한 곳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16쪽)

현대판 노아의 방주,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시드볼트운영센터 구성원과 그 협력팀이 들려주는 시드볼트와 식물, 그리고 기후 변화 이야기를 이 책 『시드볼트』를 읽으며 들어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이 책은 시드볼트운영센터의 모든 멤버들(이상용, 이하얀, 김진기, 이안도성, 강선아, 채인환), 생물자원조사팀(한준수, 김현정), 야생식물종자연구실(정영호,나채선)이 참여했으며, 취재 및 엮음에 박정우가 참여하여 글을 쓰고 책을 만들고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맨 앞에는 '이 책을 함께 만든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다. 시드볼트운영센터의 이상용 센터장을 비롯하여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시드볼트가 현대판 노아의 방주라면, 이상용은 현대판 노아이자 동시에 시드볼트라는 방주의 선장입니다. 다만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와 현대판 노아의 방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성경 속 노아가 개체 보존이라는 거대한 명분을 혼자의 책임 아래 지켰다면, 시드볼트에는 같은 명분을 이루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6쪽)'

시드볼트운영센터는 시드볼트 운영을 담당하는 부서로서 종자를 기탁받는 것부터, 종자의 검증, 입고, 관리, 국내 및 국외 네트워크 형성, 홍보 등 시드볼트와 관련한 모든 일은 시드볼트운영센터를 통해 진행된다. 생물자원조사팀은 백두대간 권역을 비롯해 대한민국 전 국토를 무대로 식물 분포를 조사하고, 권역별로 흩어져있는 야생식물종자를 수집하는 일을 한다. 이렇게 수집한 종자들은 백두대간수목원의 시드뱅크로 보내 다양한 연구를 하기도 하고, 시드볼트에 저장하기도 한다. 야생식물종자연구실은 생물자원조사팀에서 수집한 종자를 검사하고, 실험하는 부서다. 대한민국 야생식물과 관련한 거의 모든 부분에 대한 연구가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이런 연구를 통해 우리나라 종자 주권 확보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갈 뿐만 아니라 종자를 영구히 보존해야만 하는 시드볼트에 대한 신뢰성을 높인다. (책 속에서 발췌)

이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된다. 1장 '이곳은 시드볼트입니다', 2장 '하나의 종자가 시드볼트로 가기까지_수집과 연구', 3장 '하나의 종자가 시드볼트로 가기까지_기탁', 4장 '기후, 종자 그리고 시드볼트의 미래'로 나뉜다.




이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수집을 어떻게 하는지, 시드볼트의 시작과 현재, 미래까지 이 책을 통해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흥미롭다. 중간중간 나오는 일화도 아찔하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면서 온갖 감정을 더해준다. 이 일도 사람이 하는 일이고 사람들의 일이어서 더욱 가깝게 느껴지나보다.

수집을 할 때 절대적으로 지켜야 하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조사팀은 결국 복원하기 위해 수집하고, 보존하기 위해 수집합니다. 그래서 개체의 수량이 현저하게 적은 경우에는 수집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이때는 그냥 자생지에서 자랄 수 있도록 하되,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면서 관찰합니다. 수량이 많다 하더라도 서식지에 자생 중인 개체의 10퍼센트 정도만 수집해야 한다는 지침도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조사팀이 수집하는 종자는 일 년에 대략 600~900종 정도입니다.

이렇게 식물을 수집하러 다니다 보면 가끔 예기치 않게 재미있는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한준수는 예전 학부 시절 교수님을 비롯해 다른 동료들과 함께 무려 100년 묵은 산삼을 캔 적이 있습니다. 논의 끝에 그래도 우리가 '식물 하는 사람들'인데 이걸 먹어서 되겠냐며 눈물을 머금고 표본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오래 묵은 더덕이나 도라지를 캐는 일도 자주 있습니다. 고생에 비해 지나치게 작은 행운이 아닌가 싶지만요. (69쪽)



식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빨리 사라지고, 과학은 우리가 기대하는 것보다 느리게 나아갑니다. 시드볼트가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것은 건강한 종자를 최대한 확보해 저장하고, 안전하게 보관하는 일뿐입니다. 그 이후는 인류의 지성과 과학의 몫으로 남겨둘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 소개한 시드볼트에서 하는 수많은 일들은 결국 이 분명하고 거대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여정일 것입니다. (214쪽)

이 책을 통해 시드볼트에서 하는 일을 구체적으로 따라다니며 들어본 듯하다. 그냥 단순히 종자를 보관만 하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파악할 수 있다.

특히 나중에 지구재앙의 순간을 위한 대비만이 아니라 현재의 산업체와 기업에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연구 결과와 데이터를 공개한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시간이 지나고, 연구 결과가 더 쌓인다면 관련 산업이 더 발전할 수도 있고, 새로운 일자리가 생길 수도 있고, 치료제를 개발할 수도 있을 거라며, 인간을 위한 연구, 공공의 이익을 위한 연구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이제 여러분은 시드볼트의 하루하루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것이고, 하나의 종자가 시드볼트로 들어가기까지의 여정을 함께 따라갈 것이고, 이 공간을 천천히 둘러볼 것입니다. 일반인들에게는 공개되지 않는 국가보안시설, 수십 미터 깊이에 3중 철판 구조로 이루어진 영하 20도의 춥고, 어두운, 이곳. 13만 7천여 점의 생명을 품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건물 안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책 뒤표지 중에서)

세계 유일의 야생식물 종자 영구 저장 시설, 백두대간 글로벌 시드볼트가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냥 종자만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실로 엄청난 일들을 하고 있는 것을 이 책을 보며 알 수 있었다. 보다 구체적으로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들여다보며 시드볼트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는 책이다.

작은 소망이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시드볼트를 자랑스러워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우리나라에 야생식물 종자를 영구히 보존할 수 있는 세계 유일의 시설이 있습니다. 그 시설을 만들고, 운영하고, 여기까지 끌고 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실을 부디 잊지 말아 주십시오. (220쪽)

이 책이 있어서 그들의 자부심이 고스란히 전해질 수 있으니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고 이 책을 읽어본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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