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 수의사의 자연일기
다케타즈 미노루 지음, 김창원 옮김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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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유쾌하고 다정한 숲속 수의사의 자연 교감 에세이라고 한다. 그 점에서 일단 시선을 끌었다.

그러다가 결국 이 한마디 말에 바로 이 책부터 읽어나가게 되었다.

쉴 새 없이 진료소를 찾아오는 야생동물 손님들, 숲속에서 만나는 그립고도 반가운 자연 속 이웃들, 그리고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숲속 수의사의 이야기 (책 뒤표지 중에서)

어떤 야생동물 손님들이 찾아오고 어떤 이야기를 펼쳐줄지 궁금하기도 하고 기대가 되어서 이 책 《숲속 수의사의 자연일기》를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다케타즈 미노루. 1937년 일본 오이타현에서 태어났다. 1963년부터 홋카이도 동부의 고시미즈의 농업공제조합 가축진료소에서 수의사로 근무하다가 1991년 퇴직했다. 1966년 붉은여우의 생태 조사를 시작해, 1972년부터 다친 야생동물의 보호, 치료, 재활 훈련에 전념해오고 있다. 1979년부터 내셔널트러스트인 '오호츠크의 마을'의 건설 운동에 참가했다. 현재는 홋카이도 중앙부의 히가시카와에 살면서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책 속에서)

《숲속 수의사의 자연일기》는 홋카이도 동북부의 작은 마을에서 야생동물의 보호와 치료 그리고 재활 훈련을 천직으로 삼아 온 한 수의사가 40년 동안 자연과 인간에 대해 관찰하고 체험하며 느끼고 얻은 것을 일기체로 피력한 글이다. (288쪽, 옮긴이의 말 중에서)

이 책의 차례는 4월부터 3월까지다. 4월 '우리 집의 한 해는 새끼 바다표범 기르기로 시작된다', 5월 '우리는 헬렌과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6월 '산나물과 함께 찾아온 진료소 손님들', 7월 '자연을 있는 그대로 연출하는 시레토코', 8월 '녹색의 회랑 속에서 드라마는 펼쳐진다', 9월 '낙엽 밑에는 하늘의 별보다 많은 생물이 살고 있다', 10월 '선생님, 야생동물이 그렇게 좋아요?', 11월 '흙을 만들고, 그 흙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12월 '큰곰은 동면 중, 이 고장 사람들은 반동면 중', 1월 '새해에도 우글거리는 식객과 함께', 2월 '지독하게 추워도 사랑은 해야지', 3월 '우리의 평범한 일이 숲을 우거지게 할 거야'로 구성된다.

아무나 쓸 수 없는 이런 책 좋다. 저자는 수의사인 데다가 오랜 세월을 자연과 함께 하여왔기 때문에 그냥 사계절 다달이 있었던 에피소드를 골라서 들려주어도 이렇게 신기한 이야기가 가득 담긴 책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맙소사! 바다표범이 웃는다고? 세상에, 동물들의 식성을 일일이 다 챙겨서 먹이를 마련해준다고? 결국 나는 이 책을 펼쳐들자마자 신기한 마음으로 다 읽어버리고 말았다.

입원하고 있는 동물들의 먹이를 마련하기 위해 돌아다니는 것이 내 일 중의 하나다. 우리 집에 입원해 있는 것은 모두 야생동물이어서 그 먹이는 잡다하고 다양할 수밖에 없다. 큰고니의 먹이는 야채 지스러기나 옥수수, 밀 등이다. 앞을 못 보는 너구리는 과일과 고기도 좀 먹게 해 달란다. 청설모도 '나는 호두랑 소나무 씨!' 하며 조른다. 그런데 모두 상처가 아물거나 앓던 병이 나으면 자기가 원래 살던 자연 속으로 돌아가게 해 줘야 하기 때문에 입원해 있는 동안에도 야생 상태에서 먹던 먹이를 주어야 한다.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슈퍼나 편의점에서 파는 그런 것을 먹이로 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일이 여간 어렵지가 않고 여기저기 돌아다녀야 하기 때문에 결국 중노동이 된다. (31쪽)



이 책을 읽는 느낌은 정말 풍성해서 좋다. 할 말이 정말 풍부해서 짧게 짚고 넘어가도 에피소드가 가득한 느낌이다. 사시사철 어느 순간이든 자연과 함께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니 정말 눈을 뗄 수 없는 책이다.

재미있는 이야기, 슬픈 이야기, 속상한 이야기 등등 종류별로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다. 동물마다 계절마다 특징을 잘 잡아서 들려주니 감탄하면서 읽어나간다. 어떻게 이런 특징들을 다 알 수 있는 건지, 그리고 이런 이야기가 어쩜 이렇게 재미있는지 맛깔스러운 이야기에 푹 빠져들며 읽어나간다. 그대로 스며드는 느낌이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상이다. 개나 고양이 말고도 접할 수 있는 동물들이 이렇게 다양하니 정말 딴 세상이다. 바다표범, 너구리, 여우, 다람쥐 등등 이 책으로 만나는 동물들은 생생하게 살아움직이며 특별한 동물로 자리잡는다.



사진에 대한 설명이 있으니 어떤 상황인지 알겠다. 어린 여우가 춤 연습이라도 하나 했더니 날아다니는 풍뎅이를 잡아먹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책에 담긴 이야기는 재미있고 신기한 것이 많아서 어느 것 하나만 발췌하기에는 아쉬움이 많지만, 그래도 인상적인 것 하나만 고르자면 다람쥐 이야기였다. 그 상황을 상상하며 읽다가 나도 모르게 웃고 있었기 때문에 그 생생함에 기록을 해두어야겠다.

봄에는 숲에 먹을 것이 많다. 새싹과 어린잎들이다. 그리고 작년에 땅속에 묻어 둔 도토리와 풀씨도 있다. 그들은 먹기 바쁘고 사이사이에 양지바른 곳에서 꾸벅거리며 졸기도 한다. 나는 다람쥐를 따라가다가 가끔 추적에 실패한다. 그놈이 졸고 있는 걸 한참 보다가 나도 그만 꾸벅 졸기 때문이다.

이맘때 물참나무 숲에는 여기저기 보라색 꽃밭이 생긴다. 산현호색 군락으로 다람쥐들은 으레 그 꽃밭에 들러 꽃을 먹는다. 뒷다리로 몸을 곧추세우고 앞다리로 꽃을 쥐고 먹는다. 오물오물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입이 귀엽다. 입을 움직일 때마다 귀도 함께 움직인다. 그것에 맞춰 꽃밭도 흔들린다. 흔들리던 꽃밭이 갑자기 멎었다. 다람쥐가 식사를 멈춘 것이다. 쌍안경으로 보니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다.

'왜 저럴까? 뭔가 경계하는 것일까?'

그게 아니었다. 눈을 감고 졸고 있는 것이다. (75쪽)

이 책은 어느 부분을 펼쳐 읽어도 생생하니 재미있다. 그리고 대부분 내가 처음 접하고 잘 알지 못하는 자연의 모습이어서 그 모습을 상상하며 읽는 재미가 있다. 사진도 수준급이어서 중간중간 현장 사진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흥미진진한 세계로 초대받는 듯한 느낌이 든다.




책을 통해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을 만나는 것은 특별한 일이다. 이 책은 숲속 수의사가 들려주는 자연일기다. 에세이다. 계절에 맞게 생생한 현장감과 재미난 글이 나에게도 생명력을 불어넣어주는 느낌이다.

책을 펼쳐들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생명체들이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러면서 책 속의 세상만이 아니라 주변에 살아있는 동식물들이 한꺼번에 존재감을 나타내며 나에게 쫑알쫑알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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