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의 포식자들
장지웅 지음 / 여의도책방 / 2021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제목을 볼 때에만 해도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하지만 내 눈길을 사로잡은 글은 바로 뒤표지에 있었다.

엘시티를 샀다.

다시는 이런 물건이 등장하지 못할 게 확실하기 때문이다.

엘시티의 희소가치는 합법적으로는 건설이 불가능한,

다시 말해 대한민국에 다시는 들어설 수 없는 건물이라는데 있다.

피식자들은 엘시티의 불법적 요소에 대해 말하지만,

포식자들은 다시는 허가받을 수 없는 101층 높이의 상품성을 본다.

불법적 약점이 오히려 상품으로써 유일무이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투자자에게 필요한 건 어떤 상황에서도 기회를 발견하는 포식자의 눈이다.

기업의 가장 큰 죄는 부도덕이 아니라 이윤을 못 내는 것이다. (책 뒤표지 중에서)

그러고 보면 세상에 돈 벌 기회는 많지만 포식자의 눈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하는 게 낫겠고……. 그런데 이 책에서는 말한다. 투자에 실패한 이들이 가장 먼저 찾는 건 정의라는 위선이라고 말이다.

금융시장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달라야 하는가 보다. 그렇다면 내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무엇이 있는지 이 책 『금융시장의 포식자들』을 읽어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이 책의 저자는 장지웅. 15년간 다수의 상장사와 자산운용사, 창업투자회사, 벤처캐피털 등 기업의 인수합병(M&A)을 주도하며 실무와 운영을 모두 거쳤다. 현장에서 기업가치 평가, 기업 상황에 맞는 메자닌 채권 발행, 최종 계약 성사까지 M&A 전 과정을 총괄해왔고, 인수합병 분야에서 기업 CEO가 믿고 맡기는 전문가로 알려졌다. M&A 업계를 떠난 후 컨설팅펌과 투자은행에 자문을 제공했고, 주식교육 전문 채널 투공의 대표강사, 미디어 커머스 기업 미래용역의 대표를 맡고 있다. 투자와 관련된 전문지식을 일반 투자자들에게도 쉽게 공유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책날개 발췌)

이 책은 총 5장으로 구성된다. 프롤로그 '시장에 대해서는 낙관하되 현실에서는 냉철해져라'를 시작으로, 1장 '첫 번째 포식자, 대기업', 2장 '포식자 행세하는 피식자, 노조', 3장 '두 번째 포식자, 기관', 4장 '세 번째 포식자, 글로벌 기업', 5장 '네 번째 포식자, 이웃나라 일본과 중국'으로 이어지며, 에필로그 '우울증의 일본, 조증의 중국 사이에 낀 화병의 대한민국'으로 마무리된다.

먼저 이 책의 소제목들을 살펴보자.

당신이 삼성을 보는 시각은 틀렸다.

재벌 개혁? 웃기지 마. 목적은 돈이잖아.

분식회계 좀 했는데 왜요? 그게 뭐 잘못인가요?

기업의 가장 큰 죄는 부도덕이 아니라 이윤을 못 내는 것이다.

단타 치는 기관 관계자들이 왜 밖에서는 장기 투자를 추천할까?

ESG는 미래가 아니라 지독한 이기주의다

한국을 미워하는 건 일본이 열등하다는 증거다.

4차 산업혁명은 장인정신이 통하지 않는다.

서민을 위한 금융은 없다.

문화가 정치의 노예가 되는 건 망국의 전조다.

등등 무언가 불편하기도 하고, 숨겨진 진실을 들춰내는 것도 같으며, 나름 솔직한 직언인 듯도 하다. 수상한 것투성이다. 시작부터 달그락거리며 마음을 뒤흔든다. 보통 이런 책이 의외로 마음을 흔들다가 더 기억에 남기도 한다. 그래서 이 책에 시선을 집중해본다.



이 책은 처음부터 무언가 껄끄러우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느낌으로 마음을 요동치게 만든다. 과연 우리는 정의와 양심을 택할 것인가, 그렇지 않고 실리를 선택할 것인가, 과연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거기서부터 마음이 복잡해진다. 돈을 버는 선택이 아닌 아무짝에 쓸모없는 양심이나 정의를 선택할 것 같아서 말이다.

전쟁에서도 금융시장에서도 사람들은 양심이나 정의라는 명분으로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재산을 희생시키는 선택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곤 한다(9쪽)고 강조한다. 이 정도가 되면 공과 사의 구분처럼,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기 전에 수익이라는 기준만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며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것이다.

투자는 셰익스피어의 희극이 아니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으며 정의와 수익 모두를 지키겠다는 이들은 투자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런 순진한 생각은 투자 실패와 함께 당신 가족의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게 할 것이다. 출혈 없이 승리할 수 있다는 이들은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 (13쪽)

이상적인 가치나 허례허식은 살짝 접어두고 정신 줄 붙들어매고 이 책을 읽어나간다.



피식자가 있기에 포식자가 존재한다. 금융시장의 피식자가 잃는 돈에는 늘 사연이 있다. 딸의 결혼 자금, 전세 보증금, 대학 등록금, 가불받은 퇴직금, 영끌한 마이너스 통장 등 저마다 사연이 애틋하다. 하지만 금융시장에서 애틋한 사연을 참작하여 환불해 주며 손실을 보전해 주는 일은 없다. 욕심과 무지에 사로잡힌 이들은 '현금도 투자 종목이다'라는 투자 구루의 말을 무시한 채 가진 돈 모두를 건다. 모든 걸 걸었기에 모든 걸 잃은 후 그들은 말한다. 나라는 대체 뭐 했냐고. 정부는 이런 사달이 날 때까지 왜 지켜보고만 있었냐고. 금감원은 하는 게 없는 세금 도둑이라고. 단 한 명도 평범한 수익률을 넘어서는 큰돈을 벌려 했던 자신의 욕심과 무지를 탓하지 않는다. 피식자는 늘 남 탓을 한다. 그러고서 만회를 위해 성급한 베팅을 하다 또다시 잃는다. 그리고 결국 투자판을 떠나고 만다. 포식자들은 그런 피식자들 덕분에 수익을 낸다. 그들은 피식자들이 시장을 떠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바보들은 금융시장에 끊임없이 공급되기 때문이다. (18쪽)

맞는 말인데 영 불편하다. 그런 생각이 들 즈음 이 책에서는 아예 쐐기를 박는다.

혹시 여기까지 읽고 마음이 불편한가? 목숨값을 사기당한 것에 대해 당시의 세전 이율을 따지는 게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냉혈한으로 보이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금융시장의 포식자가 아니라 피식자에 가깝다. (18쪽)



이 책에서는 철저히 포식자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진술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 입장에서 나는 피식자의 입장이기에 영 불편하고 껄끄러운 마음을 감내하고 읽어나가야 했다. 그리고 그것은 비밀문서를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만 몰랐던 세상을 말이다.

이 책에서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점이 있다. 서민을 위한 금융은 없다. 피식자가 먹을 돈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저금리 상황에서도 어차피 있는 놈들이 다 가져간다. 그렇다고 있는 자를 욕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있는 자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는지 그들의 프레임으로 세상을 봐야 한다. (296쪽)



이 책은 불편한 감이 있다. 저자는 독자의 그러한 마음을 노리고 이 책을 집필했음을 고백한다. 이 책이 독자의 관점을 흔들고 주먹으로 정수리를 갈겨서 끝내 독자를 흔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의도가 성공했음을 이야기하고 싶다.

그리고 이 책은 프레임 자체를 바꿔볼 필요가 있기에 신선하게 다가왔다.

프롤로그에서 내적 변화를 종용하고 포식자의 프레임으로 환승할 것을 얘기했다면, 책의 후반으로 가면서 개인에서 대기업으로, 대기업을 넘어 주변 강대국을 바라보는 새로운 프레임을 제시하고자 했다. (358쪽)

많은 부분에서 지금까지 내가 갖고 있던 프레임을 벗어던지고 새로이 판을 짜보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금융시장을 바라보는 포식자의 시선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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