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지 않아도 사랑이 된다
나민애 지음 / &(앤드)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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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펼쳐들자마자 이런 글이 있다. 어느 날의 내 마음이고, 누구든 그런 순간이 있지 않을까.

열심히 살아왔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그럴 때는……

잠시 쉬었다 가면 어떨까요? 그렇게 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까요.

아무것도 아닌 날들이 나를 만듭니다. 반짝이지 않아도 사랑이 됩니다. (책 속에서)

여기서부터 내 마음은 달라졌다. 그냥 수많은 책들 중 한 권에 불과한 책에서 내 마음에 들어올 문장을 건져낼 수 있는 책이리라 기대되었기 때문이다. 어떤 내용을 들려줄지 궁금해서 이 책 『반짝이지 않아도 사랑이 된다』를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나민애. 현재 서울대학교 글쓰기 담당 교수로 지내고 있다. 2015년부터 동아일보 주간 시평 코너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을 연재하고 있으며, 때때로 강연을 나가 많은 사람을 만나고 있다. (책날개 발췌)

이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된다. 1장 '잠시 쉬어 가도 괜찮다', 2장 '애쓰지 않아도 충분하다', 3장 '아픔도 때론 힘이 된다', 4장 '반짝이지 않아도 사랑이 된다'로 나뉜다.

알고 보니 이 책의 저자는 나태주 시인의 딸이다. 예전에 나태주 시인이 딸에게 보내는 시를 묶은 시집 『너의 햇볕에 마음을 말린다』를 읽어서 그런지 무언가 한치 건너 아는 분인 듯한 느낌, 친근한 느낌으로 이 책을 읽어나갔다.

「힘들면 쉬어도 돼」에 이런 일화가 있다. 대학생 때 청첩장을 들고 교수님을 뵈러간 적이 있는데, 교수님은 편지와 축의금과 함께 덕담이 아닌 말을 불쑥 던져주셨다는 것이다.

"민애야, 너무 열심히 하지 마라."

의아했다.

"밥도, 청소도, 살림도 너무 열심히 하지 마라."

울컥했다.

"적당히 해도 된다. 집 안이 좀 더러워도 되고, 그걸 네가 다 안 치워도 된다. 애 낳고 열심히 키우지 마라. 너 하고 싶은 거 하나만 열심히 하고, 나머지는 좀 못해도 된다." (30쪽)

그런데 20년이 지나고 보니 저자는 교수님의 말과 반대로 살고 있다는 것이다. 하고 싶은 것 하나만 하지 못했고, 나머지는 다 열심히 했다는 것이다. 어떤 날은 하기 싫은지도 모르고 그냥 했고, 어떤 날은 앞뒤 가리지 않고 했으며, 숨을 헐떡이면서 남들이 요구하는 일에 우선순위를 내주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문득 그 교수님의 말씀, "괜찮다, 안 해도 된다, 못해도 된다." 그 이야기가 나에게도 토닥토닥 위로를 건넨다.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고, 그렇게 하지 못하는 데에 미안함과 아쉬움이 있었다면, 오늘은 잠깐이나마 놓아버리자. 물론 내일부터 내 맘이 다시 달라질지라도 말이다.



"잘하지 못해도 괜찮아. 오래 하다 보면 그럭저럭 하게 된다."

이 말을 해준 건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걸 좋아하셨다. 어느 날 내가 친정집에서 지친 표정으로 앉아 있을 때였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이름표가 너무 많아서 신물이 났을 때였다. 당시 아버지는 발톱을 깎으며 무심하게 이야기하셨다.

"내가 어렸을 적에 6.25전쟁이 났거든. 그때 사람들이 죄다 피난 가고 난리도 아니었어. 너도 배웠지? 피난을 가는데 먹을 게 제대로 있었겠니. 못 먹고 못살던 시절인데 전쟁까지 나니까 더했지. 그때 어떤 아비가 있었는데, 그 아비가 음식을 구하면 배곯는 자식한테 먼저 먹였대. 음식을 아주 조금 얻으면 그 아비는 먹지 않고 자식한테 다 먹였다더라. 눈앞에서 자식이 배고프다고 하니 아비가 참은 거지. 한편 또 다른 아비는 음식을 구하면 자식이랑 반씩 나눠 먹었대. 두 아비 모두 배불리 먹지 못한 건 똑같지. 그런데 나중에 그 둘이 어떻게 된 줄 알아? 자식만 먹인 아비는 굶어서 죽어버렸대. 그다음에 자식은 어떻게 됐겠어? 반면 음식을 나눠 먹었던 아비와 자식은 살아서 고향 마을로 돌아갔대. 둘이 오랫동안 잘 살았대."

여기까지 이야기하셨을 때, 아버지는 이미 발톱을 다 깎으신 후였다. 나는 내 쪽으로 튕겨 나온 발톱을 손바닥으로 쓸어 담아 아버지에게 넘겨줬다. 아버지는 그걸 화장지에 잘 감싸서 휴지통에 버리셨다. 아버지가 발톱을 버릴 때, 나는 내 죄책감도 함께 버렸다. 알파걸의 강박도, 전 세계 대신 집을 선택했다는 피해의식도 버렸다. 집을 잘 돌봐야 한다는 생각도 버렸다.

그러고도 한참 동안 삐걱거리는 것들을 버렸다. 친정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의무감을 가지고 '해야만 했던 것들'을 하나둘씩 버렸다. 그렇게 다 버리고 집에 돌아오니 깊이 잠들 수 있었다. (93~94쪽)



괜히 읽었다. 꼭 내 마음을 들킨 듯싶다. 어쩌지? 이 사람이 내 딸이고 이 글들이 내 딸의 것인데. 몹시 추운 겨울밤, 나는 딸의 글을 읽으며 떨기도 하고 울먹이기도 했다. 딸아이의 떨림이 나의 떨림이기도 해서 그랬다.

_나태주 (시인, 나민애 교수의 아버지)

우리는 갖가지 역할을 해내며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의 딸이자 엄마이자 교수에 평론가 등등 이 시대를 힘차게 살아가고 있는 저자의 모습을 보면서 독자는 각자 자신의 생각에 잠기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 각자의 인생을 열심히, 때로는 버겁게 잘 살아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위로의 말을 건넬 것이다. "괜찮아. 하고 싶은 거 하나만 열심히 하고 나머지는 적당히 해. 그래도 된다. 그럼, 되고 말고."

문득 쥐기만 하며 안달복달하던 시간에서 쉼표 하나 찍는 듯 짐을 덜어낸다. 에세이로 마음을 달래 보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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