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은 사랑을 말하지 않는다 - 밤하늘과 함께하는 과학적이고 감성적인 넋 놓기
김동훈 지음 / 어바웃어북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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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바라보자. 밤하늘의 별을 보았던 게 언제던가.' 이런 말을 한다면 금세 목이 아파서 제대로 볼 수 없는 경우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려면 아예 마당에 돗자리 펴고 누워서 바라보는 게 제격이다. 그래야 몸에 무리가 가지 않으면서도 오래 바라볼 수 있어서 쏟아지는 우주를 온전히 내 눈에, 그리고 내 마음에 담아둘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나도 이 책의 저자에 비하면 부족해도 한참 부족하다. 아주 가끔만 밤하늘을 보며 별자리를 찾아보았지 나만의 감성으로 밤하늘에 밑줄을 그을 생각을 하지 못했으니까. 이 책을 보니 정말 값진 경험을 나눠준다는 생각이 들어서 본격적으로 본문에 들어가기도 전에 두근두근 설렜다.

'우주의 시간'을 읽을 수 있게 되면 마음을 온통 하늘에 빼앗기게 된다. 오늘은 금성과 목성이 만나고, 내일은 보름달이 지구 그림자에 숨고, 모레는 국제우주정거장(ISS)이 천정을 가로질러 가고……. 일정표는 일상에서 해야 할 일 대신 밤에 관람할 천체들로 채워진다. (7쪽)

펼쳐들면 멋진 우주 세계를 감성을 더해 보여주어서 함께 넋놓고 바라볼 수 있는 책 『별은 사랑을 말하지 않는다』이다.



이 책의 저자는 김동훈. 초등학생 때 월간지 사은품으로 천체망원경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되어 별과 우주를 동경하기 시작했다. 별이 잘 보이는 곳을 찾아 호주, 몽골, 남미, 북유럽을 여행했다. 2008년 몽골에서 처음 개기일식을 관측한 이후 오로지 일식을 쫓아 일곱 개 나라를 다녀왔다. 2015년에는 2분 25초 동안 일어나는 개기일식을 관측하려고 비행기를 10여 회 갈아타고 북극 스발바르제도에 다녀왔다. 설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개기일식은, 영하 20도 넘는 추위와 북극곰의 위협을 까맣게 잊을 만큼 매혹적이었다. 등산이라면 질색이다. 그러나 이번이 아니면 6800년을 기다려야 볼 수 있는 혜성 때문에 한여름에 해발 1256m 청옥산을 오르는 시간은 기쁨이었다. 칠레 아타카마 사막의 해발 4000m 고원을 찾았을 때 고산병으로 심하게 고생했지만, 천문 이벤트가 있다면 주저하지 않고 비행기표를 끊는다. (책속에서)

절판되어 일반 서점에서는 사라진 책을 중고로 산 적이 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군데군데 그어진 밑줄에 자꾸 눈이 갔다.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전 주인의 안목과 취향이 깃든 밑줄은 친절한 안내자 역할을 했다. 헌 책에 그어져 있던 밑줄처럼 밤하늘에 밑줄을 그어보기로 했다. 떠나보내기 아쉬운 밤, 이야기 나누고 싶은 밤, 기억하고 싶은 밤. 내가 밤하늘에 그은 밑줄을 차곡차곡 모은 것이 이 책이다. (5쪽)

이 책은 001일째밤부터 200일째밤으로 구성된다. 한 번에 밤하늘의 사진 한 장과 밤하늘에 밑줄 그은 저자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별 사진에 감성을 불어넣어준 에세이다.

가장 먼저 1일째밤에는 '일생에 단 한 번'이라는 제목의 글이 담겨 있다. 니오와이즈 혜성처럼 맨눈으로 긴 꼬리를 볼 수 있는 혜성은 몇십 년에 한 번 만날 수 있을 만큼 귀하니, 카메라를 챙겨 강원도 평창 청옥산으로 향했다는 것이다. 이번에 놓치면 자그마치 6800년을 기다려야하니 한여름에 1256m 산을 올랐고 이번 생에 다시 만날 수 없는 혜성을 보았다는 것이다. 이런 설명이 더해지니 사진이 더욱 특별해보였다. 그 사진이 바로 밑의 사진이다.



이 책은 먼저 사진을 눈여겨 보아야 한다. 그리고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보고나서 다시 사진을 보면 이게 또 새롭게 다가온다.

그 사진을 얻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이 사진에서 어떤 것을 볼 수 있는지, 알고 보면 더 의미 있고 귀하다.

스마일 은하(공식 명칭 SDSSJ 1038+4849)에 관한 것도 흥미롭다.

두 눈을 반짝이며 빙그레 미소 짓는 얼굴 형상은 별이 아니라 은하가 만들어낸 것이다. 눈과 코, 그 아래에 웃는 입꼬리를 만든 것도 은하다. 특히 치켜 올라간 입꼬리처럼 보이는 은하는 모양이 아주 특이하다. 은하가 길쭉하게 늘어진 이유는 강한 중력이 멀리서 온 은하의 빛을 휘어져 보이게 했기 때문이다. 중력이 빚은 미소다. (68쪽)



이 책에서는 지금껏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없었던 우주 사진을 저자만의 감성으로 짚어내어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내가 하늘에서 우연히 보았다고 하더라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쳤을 것이다.

나이가 1천만에서 2천만 년밖에 안된 젊은 별들이라든가 초승달 모양의 태양, 국제우주정거장이 태양 앞을 통과하는 순간을 포착한 사진 등은 특별하게 다가왔다. 초긴장 상태에서 침착하게 찰나를 낚아채는 민첩성과 더불어 온 우주가 돕는 행운이 있어야만 찍을 수 있는 사진(114쪽)이라고 하니, 그런 사진을 이 책 한 권으로 접할 수 있다는 것도 나에게는 경이로운 일이었다.

사진을 찍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도 돋보인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의 경우에는 하루의 운행을 마치고 저무는 태양과 운행의 종착점인 공항에 착륙하기 위해 랜딩기어를 내린 비행기를 동시에 잡은 사진인데, 기막힌 우연으로 두 피사체를 한 프레임에 담은 게 아니라는 것이다. 우연처럼 보이는 필연을 기획하고, 때를 기다려 포착한 것. 한 장의 사진을 위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기도 하다는 것을 알게 된 사진이다.




눈부신 결실

가까이 있던 두 은하가 떨어지지 못하고 서로에게 끌려 마침내 하나가 되기 시작했다. 약 9억 년 전에 시작된 이 만남은 현재진행형이다. 격변의 과정을 겪으며, 두 은하는 새로운 별을 폭발적으로 만들어낸다. 파란색으로 빛나는 지역이 아기별들이 태어나는 '별들의 요람'이다. 두 은하는 하트 모양으로 합쳐지며 전 우주에 사랑을 공표한다. (182쪽)



"모든 것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힘이 결정한다.

별, 인간, 식물, 우주의 먼지뿐만 아니라 벌레까지

저 멀리서 보이지 않는 피리가 부르는 신비한 선율에 맞추어

우리 모두 춤출 뿐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226쪽)



설명해주지 않으면 무엇인지 알 수 없고 그냥 밤하늘과 별일 뿐이다. 하지만 설명을 보고 나서야 무엇인지 알게 된다. 그리고 보인다.

갖가지 색깔로 빛나는 별들 사이에 붉은색 꼬리를 길게 늘어뜨린 특이한 별도 알려주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은 웨스터룬드 1성단 안에 있는 수백 개의 별이 뿜어내는 강한 항성풍이 이 별의 물질을 바깥쪽으로 날려버리면서 혜성처럼 꼬리가 생긴 것(236쪽)이라고 한다.



이 사진은 특이한 일식이라고 한다. 왼쪽 아래로 빼꼼히 얼굴을 내민 햇빛을 가린 그믐달 모양의 천체는 달이 아니라 지구라는 것이다. 아폴로 12호 우주선이 달을 탐사하고 지구로 귀환하는 도중에 목격한 흔하지 않은 일식 장면이었는데, 아마도 인류 최초로 목격한 지구 일식이었을 것이라는 거다. 설명을 보면서 사진을 보니 더욱 경이롭게만 느껴진다. 우주에는 별별 일들이 다 일어나고 있다.



대마젤란은하는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은하인데, 빛의 속도로 달려가도 16만 년이나 걸릴 만큼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러나 별빛은 짧은 눈 맞춤 그 하나로도 우리를 헤아릴 수 없이 먼 우주로 데려간다. (416쪽)



이 책에는 밤하늘에 밑줄을 그으며 수집한 사진과 함께 직접 찍은 천체사진을 보여주며 저자의 감동을 건네준다. 알고 보면 더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을 보고 나면 우주의 경이로움과 밤하늘의 낭만을 새롭게 깨닫게 될 것이다.

특히 나는 밤하늘을 좀더 감성을 더해 바라볼 수 있도록 계기를 마련해준 책이어서 사진 하나하나에 설레고 글을 보며 감성에 젖었다. 누군가의 열정과 감성을 이 책 하나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뜻깊은 일이다.

이 책에 담긴 사진은 어느 곳을 펼쳐들든 마음을 훅 건드려주는 힘이 있다. 하긴 이 풍경들은 하루아침에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얼마나 특별한 것이겠는가. 마음을 흔들지 않을 수 없는 작품들만을 모아 질 좋은 종이에 담아낸 노력이 보인다. 소장가치가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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