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첫 문장을 기다렸다
문태준 지음 / 마음의숲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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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문태준 산문집이라고 하여 읽어보고 싶었다. 저자의 말 첫 문장부터 마음에 다가온다.

문장을 얻는다는 것은 새로운 마음을 얻는다는 뜻이다. 잔물결처럼 흔들리거나 안개처럼 흐릿하던 어떤 것이 마침내 형상을 얻는다는 뜻이다. 마치 눈 뭉치를 굴려서 눈사람을 만들어 세우듯이. 마치 흙 속에 숨 쉬던 검은 빛의 씨앗이 발아를 통해 흙 위의 푸른 빛으로 바뀌어 나타나듯이. 문장을 얻으려는 때에는 좋은 예감이 있고, 흥이 있다. 건반이나 현을 통해 음악이 세상으로 나오려는 순간처럼. 그러므로 문장을 얻는 일을 기쁘게 여겨 계속하게 된다. (4쪽)

저자가 제주 애월읍 장전리에 이사 와서 살고 있다고 해서 더 반가웠다. 돌밭과 해안과 오름과 숲은 그들의 고유한 빛을 비춰주었다고 하며, 해녀와 대양의 어부, 귤밭의 농부, 산인, 이웃도 비춰주었고, 은빛 비행기, 오가는 여객선, 섬들도 문장을 주었다니, 어떤 문장들이 이 책에 담겨있을지 더욱 궁금해져서 이 책 『나는 첫 문장을 기다렸다』를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문태준. 섬세한 감각으로 매 시절에 깃든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서정 시인이다. 그가 접한 부드러운 자연과 고유한 사물, 사람과의 교감, 책 읽기에서 길어 올린 샘물 같은 사유를 엮었다. 책속에 담긴 맑은 생각과 따스한 정서, 상큼한 상상력은 지적 갈증을 달래주고, 마음의 허기를 채워줄 것이다. (책날개 발췌)

이 책은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뉜다. '봄'에는 연잎 같은 마음, 시인의 일, 부드러운 자연, 산같이 물같이, 매화나무의 보람, 겨울에서 봄으로, 그대는 여름보다 더 아름답고 부드러워라 등이, '여름'에는 달과 같은 환한 얼굴, 소박한 행복, 우주적 율동, 제주 밭담, 바다와 올레길, 장마와 폭염 등이, '가을'에는 가을빛이 쌓여간다, 달과 귀뚜라미, 자연산 가을 상품, 가슴속에 새겨지는 별과 시, 시골 버스를 기다리며, '겨울'에는 은하 건너 별을 두고 살듯, 첫 마음, 수선화와 매화, 어머니의 만학, 마음의 보호자, 덕담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에는 문태준 시인이 다른 이들의 글도 골라 담고 자신의 생각도 풀어나가면서 글을 썼다. '책 읽기에서 길어 올린 샘물 같은 사유'라는 표현이 잘 맞아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제주의 사계절을 떠올리며, 돌담, 바다 등의 자연도 생각하며 맛있게 읽어나갔다. 그리고 시인의 마음도 짐작해본다.

나는 시를 써온지 30년이 넘었지만 시를 쓰는 일이 매번 어렵다. 언어는 아주 예민하다. 그래서 언어를 다루는 시인도 극도로 예민해야 한다. 언어는 금방 도마뱀처럼 달아나고, 깎아놓은 사과처럼 색감이 변한다. 그래서 시인은 늘 마음이 조금 고양된 상태에 있도록 자신을 관리해야 한다. 다른 생활을 단순하게 해서 오직 시에만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성냥불처럼 잠깐 점화된 생각을 수첩에 얼른 적어서 보관해야 하고, 구상하고 있는 시를 마치 바지 주머니에 넣어다니듯이 늘 생각하며 마음에 지녀야 한다. 버스 정류장에서도,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도, 잠들기 전에도 시에 대한 관심이 사라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관심이 사라지는 순간, 시는 줄행랑을 쳐 도망가고 마는 까닭이다. (192쪽)




봄,여름,가을,겨울! 문태준 시인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다 보니, 일 년 사계절의 시간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면서 지금 내 마음을 위로해주고 해결책도 찾아본다.

호젓한 시골길을 느릿느릿 걷다 보면 마치 약을 먹은 듯 아프고 슬픈 구석이 말끔하게 낫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이 길은 문명의 길이 아니라 자연의 길에 가깝다. 쾌속의 길이 아니라 완행의 길에 가깝다. 이런 길을 걷다 보면 자신을 가만히 돌아보게 되고 그리하여 근심이 조금은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치유의 힘일 것이다.

힘이 들 때에는 몸과 마음을 쉬게 해야 한다. 몸만 지치는 게 아니라 마음도 지치고 다치기 때문이다. 복잡한 마음을, 조급한 마음을 좀 쉬게도 해야 한다. 장작불을 보며 멍하게 있는 '불멍'과도 같이, 어떤 대상을 가만히 바라보는 일로도 우리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잠시 쉬게 할 수 있다. 잠시 쉬다 보면 우리는 몸과 마음도 다시 신록처럼 푸릇푸릇해질 것이다. (276쪽)

몸만 지치는 게 아니라 마음도 지치고 다친다는 말 만으로도 무언가 위로를 건네받는다.

섬세하게 다독여주는 문장들이 담겨 있어서 따사로운 느낌이 든다. 거기에 더해 책 속 문장이나 시구도 다양하게 접할 수 있으니, 풍성한 독서를 원한다면 읽어보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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