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처음에 바이러스가 그리 싫지 않았다. 오히려 귀찮은 생일 파티를 생략할 수 있게 해주어서 고마울 따름이었다. 엄마는 혹시 팝콘 용기에 바이러스가 묻어오기라도 할까 봐 불안해하며 파티를 취소했다. 나는 바이러스보다 초대받고 올 친구들이 더 걱정이었다. 외부인이 내 방에 쳐들어와서 자기 것인 양 내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고 생각하면 견디기 힘들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허락을 구하지 않은 채 내 일상을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악당이었다. (13쪽)
소설의 시작이 마음에 든다. 정말 아이의 눈높이에서 흘러가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은 살짝 내 심정이기도 해서 뜨끔하면서도 공감하며 읽어나갔다.
주인공 마티아의 아홉 번째 생일에서 시작된다. 코로나 시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생일 풍경이다. 그런데 초를 불 시간이 되니 마티아의 엄마는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겨우 피리를 불 수 있을 정도로만 숨을 내쉬어 초를 불게 했다는 것이다. 혹시라도 입에서 침이 튈까 걱정되어서라고. 하긴 요즘에는 생일 케이크에 초를 어떻게 꺼야 할지, 그 부분도 신경을 써야 할 듯하다.
이 소설은 장소별로 나뉜 것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발코니, 발코니에서 노래하는 장면을 뉴스에서 본 적이 있다. 그 소재가 나오니 뭉클한 것은 그 시대를 거쳐갔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격리 생활은 그냥 일상이 되었고, 이제 아무도 발코니에서 노래를 부르지 않고 박수소리도 사라졌다는 평범한 나날도 공감이 갔다.
39.9도.
체온계 숫자가 충격적일 수도 있지만 내가 체감하는 열은 그 온도만큼 심하지 않았다.
엄마는 전화로 의사인 페라리 선생님에게 조언을 구했다. 페라리 선생님은 엄마에게 복용할 약 목록을 길게 말해주었는데 약 이름이 모두 엘프 이름 같았다. 전부 올란, 옥신, 이딜로 끝나는 이름들이었다. 할머니는 내 양말에 양파를 넣으라고 조언해주었지만 열은 그 양파마저 집어삼켜버린 채 계속 올랐다. 바이러스가 거대한 모래 이빨로 나를 씹어 먹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모든 게 흐릿하게 보였다. (201쪽)
응급실 풍경까지 온전히 아이의 시선으로 풀어나간다. 우주인 둘이 들어와 면봉으로 찌르고, 우주인이 <스타워즈>에 나오는 검 같은 것을 꺼내더니 손목에 고정시키는 등의 설명이 이어질 때, 그 장면이 생소하지 않고 생생하게 떠올랐다. 아마 다들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