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리 아파트먼트 - 팬데믹을 추억하며
마시모 그라멜리니 지음, 이현경 옮김 / 시월이일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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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팬데믹 시대의 성장소설이라고 해서 읽어보기로 했다. '아홉 살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팬데믹 시대'라는 부제를 보자마자 '아, 이거다!'라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을 받자마자 펼쳐들어 읽어본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팬데믹 시대이지만 세상을 좀 따뜻하게 바라보고 싶어서 아이의 눈으로 그려낸 성장소설을 읽고 싶었다는 이유였고, 또 하나는 그 아이가 먼 훗날 손자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설정이 마음에 들어서였다.

아주 오래전 그때, 우리 모두가 이태리 아파트먼트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마티아는 2080년, 손자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손자들은 할아버지의 시시한 상상 속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시시한 상상 속 그 이야기 속에 여전히 머물고 있는 전, 60년 후 마티아와 같이 이 시간을 보낸 우리의 아이들이 손주들에게 이야기를 전할 때 부디 그 아이들이 믿지 못하기를 바랍니다. 그저 아주 오래전 그날의 이야기일 뿐이길, 간절히 바랍니다. 하지만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분명 힘겨웠지만 우린 그 순간에도 노래했고 춤을 췄다는 것을. 그 시간은 가족이 다시 가족이 되기 위한 순례길이었다는 것을.

_김민주 《로마에 살면 어떨 것 같아?》, 《우리가 우리에게 닿기를》 저자

어떤 내용을 들려줄지 궁금해서 이 책 《이태리 아파트먼트》를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마시모 그라멜리니.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태어났다. 이탈리아 신문 <라 스타파>의 저널리스트이자 부국장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에세이와 소설을 집필한다. (책날개 발췌)

이 책에는 젬마 할머니의 주방, 관리사무실, 주방, 발코니, 차고, 마당, 엘리베이터, 나의 방, 바이러스의 방, 거실과 로사나의 방, 엄마의 방, 출입문 등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프롤로그의 시작부터 몰입도가 높았다. 아마 우리가 지금 이 현실을 지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이 맞기 때문에 더더욱 공감하며 '맞아, 맞아' 생각하며 읽게 된 것이다.

결국은 다 괜찮아 질 거야.

괜찮지 않으면 아직 끝이 아닌 거야.

-존 레논-

나는 바이러스 때문에 내가 끔찍이 싫어하던 사람과 집안에 격리되어 아이에서 어른이 되었다. 영웅들은 대개 자신이 태어나 살던 곳에서 안주하지 않고 미지의 세계로 모험을 떠난다. 그리곤 새로운 세상에서 만난 괴물을 죽이거나 괴물에게 죽임을 당할 때까지 싸운다. 나는 아홉 살에 집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은 채 그런 싸움을 했다. (9쪽)

이 글은 주인공이 2080년 12월 밀라노에서 쓴 기록이다. 기억을 떠올리며 손자들에게 그 이야기를 하면 아이들은 전혀 못 믿겠다는 표정이라고 한다. 아이들은 이 이야기를 시시한 상상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프롤로그부터 본격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펼치게 될지 궁금한 생각이 들어서 다음 장을 읽는 손길이 빨라졌다.



나는 처음에 바이러스가 그리 싫지 않았다. 오히려 귀찮은 생일 파티를 생략할 수 있게 해주어서 고마울 따름이었다. 엄마는 혹시 팝콘 용기에 바이러스가 묻어오기라도 할까 봐 불안해하며 파티를 취소했다. 나는 바이러스보다 초대받고 올 친구들이 더 걱정이었다. 외부인이 내 방에 쳐들어와서 자기 것인 양 내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고 생각하면 견디기 힘들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허락을 구하지 않은 채 내 일상을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악당이었다. (13쪽)

소설의 시작이 마음에 든다. 정말 아이의 눈높이에서 흘러가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은 살짝 내 심정이기도 해서 뜨끔하면서도 공감하며 읽어나갔다.

주인공 마티아의 아홉 번째 생일에서 시작된다. 코로나 시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생일 풍경이다. 그런데 초를 불 시간이 되니 마티아의 엄마는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겨우 피리를 불 수 있을 정도로만 숨을 내쉬어 초를 불게 했다는 것이다. 혹시라도 입에서 침이 튈까 걱정되어서라고. 하긴 요즘에는 생일 케이크에 초를 어떻게 꺼야 할지, 그 부분도 신경을 써야 할 듯하다.

이 소설은 장소별로 나뉜 것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발코니, 발코니에서 노래하는 장면을 뉴스에서 본 적이 있다. 그 소재가 나오니 뭉클한 것은 그 시대를 거쳐갔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격리 생활은 그냥 일상이 되었고, 이제 아무도 발코니에서 노래를 부르지 않고 박수소리도 사라졌다는 평범한 나날도 공감이 갔다.

39.9도.

체온계 숫자가 충격적일 수도 있지만 내가 체감하는 열은 그 온도만큼 심하지 않았다.

엄마는 전화로 의사인 페라리 선생님에게 조언을 구했다. 페라리 선생님은 엄마에게 복용할 약 목록을 길게 말해주었는데 약 이름이 모두 엘프 이름 같았다. 전부 올란, 옥신, 이딜로 끝나는 이름들이었다. 할머니는 내 양말에 양파를 넣으라고 조언해주었지만 열은 그 양파마저 집어삼켜버린 채 계속 올랐다. 바이러스가 거대한 모래 이빨로 나를 씹어 먹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모든 게 흐릿하게 보였다. (201쪽)

응급실 풍경까지 온전히 아이의 시선으로 풀어나간다. 우주인 둘이 들어와 면봉으로 찌르고, 우주인이 <스타워즈>에 나오는 검 같은 것을 꺼내더니 손목에 고정시키는 등의 설명이 이어질 때, 그 장면이 생소하지 않고 생생하게 떠올랐다. 아마 다들 그럴 것이다.



드라마든 영화든 소설이든 코로나 시대를 반영하고 있는 작품이 있던가 생각해본다. 지금 시대의 사람들 모습을 문학작품에서 보고 싶다면 이 소설이 그 배경으로 실감나게 펼쳐내고 있으니 읽어보아도 좋겠다. 게다가 어린아이의 눈이니 너무 무겁지 않게 전개되어 밝고 따뜻하고 흥미로운 느낌이 든다.

물론 이 시기가 빨리 끝나기를 다들 열망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시기도 우리의 삶의 일부이다. 팩트의 기록도 필요한 일이겠지만, 문학 작품으로 길이 남기는 작업도 필요할 것이다. 어쩌면 이미 작가들의 작품으로 구체화되고 있겠지만 말이다.

보다 다양한 시선으로 이 시기의 우리들 모습을 보고 싶다. 문학작품이라는 매개를 통해 우리는 작품 안에서 인간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을 하고 싶으니 말이다. 곧 그들의 작품도 읽을 기회가 오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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