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문장이 찾아오는 순간 - 읽고 쓰기에 대한 다정한 귓속말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티라미수 더북 / 2022년 1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제목이 사랑스러워서 읽어보고 싶었다. 첫 문장이 찾아오는 순간이라니, 그 얼마나 의미 있는 순간인가.

생각해 보면 그렇다. 명작이든 망작이든 첫 문장은 찾아온다. 그것에 대해 글 쓰는 사람이 이야기해 준다니 이 책에 대한 호기심이 급상승한다.

이 책은 사실 제목에 대한 호기심에 읽어보고 싶었던 것인데, 본격적으로 책장을 펼쳐 드니 더욱 사랑스러운 책이었다는 것을 언급하고 싶다. 다소 생소한 이 작가가 내 눈에 훅 들어오는 순간이다. 읽고 쓰기에 대한 흥미로운 책 《첫 문장이 찾아오는 순간》이다.



이 책의 저자는 오가와 요코. 1988년 《상처 입은 호랑나비》로 가인엔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가로 데뷔했다. 1991년 《임신 캘린더》로 일본 최고권위의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2003년 《박사가 사랑한 수식》으로 제55회 요미우리문학상 소설상, 제1회 일본서점대상 등을 수상하며 일본의 대표적인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2004년 《브라흐만의 매장》으로 이즈미교카문학상을, 2006년 《미나의 행진》으로 다니자키준이치로상을, 2012년 《작은 새》로 문부과학대신상을 수상했다. 《약지의 표본》이 프랑스에서 영화로 제작되었고, 《박사가 사랑한 수식》 《호텔 아이리스》 《인질의 낭독회》가 일본에서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됐다. 2007년 프랑스로부터 문화예술공로훈장 슈발리에를 수여받기도 했다. 이외에 《식지 않는 홍차》 《고양이를 안고 코끼리와 헤엄치다》 《안네 프랑크의 기억》 《우연한 축복》 《언제나 그들은 어디엔가》 등의 작품이 있다. (책 속에서)

이 책은 제가 지금까지 다양한 기회를 통해 '이야기'에 대해 해왔던 말을 글로 엮은 것입니다. 과거 위대한 선인들의 강연집을 읽으며 깊은 감명을 받았던 제 경험을 돌아보면, 이 책을 강연집이라며 당당하게 내밀 용기는 도저히 없군요. 소설을 쓰는 사이사이에, 조금씩 마음에 고인 생각을 사람들에게 얘기했을 때의 기록 정도로 생각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5쪽, 들어가는 말 중에서)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된다. 1부 '이야기의 역할', 2부 '이야기가 태어나는 현장', 3부 '이야기와 나'로 나뉜다. 어떤 만남은 이야기로 이어진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의 시작, 누구나 사는 동안 이야기를 짓는다, 이야기는 어디에나 있다, 작가는 소설 뒤를 쫓아간다, 한 줄로는 다 표현할 수 없어서, 작가는 스토리를 짓지 않고 포착한다, 모든 것을 관찰한다, 첫 독서의 감촉, 나를 구원해준 이야기, 전체의 일부이자 유일한 존재, 책으로 같은 생각을 공유하다 등의 글이 담겨 있다.

사실 오가와 요코라는 작가에 대해 잘 생각이 나지 않았는데, 그동안 읽었던 책을 찾아보니 소설 《침묵 박물관》이 있다. '아, 그 소설!' 침묵 박물관은 한때 이 세상에 존재했던 죽은 자들의 유품을 전시하는 곳이다. 별생각 없이 집어 들었다가 그 독특한 소재와 몽환적인 분위기에 한동안 사로잡혔던 기억이 난다. 소설 속 세계로 뛰어드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으니, 그런 소설의 작가가 들려주는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라고 하니 더욱 집중해서 읽어나갔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세상에나, 이런 이야기들이 다 있네.'라는 반응을 보였다. 얇은 책이어서 금세 부담 없이 읽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에 담긴 글 하나하나가 독특한 세상을 보여주고 있어서 생각처럼 훅 지나갈 책이 아니었다. 이야기 하나하나가 하나의 세계다.

사용하는 언어가 정해져 있으니 그 한계로 인해 바라보는 세상도 한정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인 소설가가 들려주는 다양한 이야기는 '나도 그 소설 읽고 싶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궁금하고 독특하고 흥미롭다.

소설을 쓸 때, 저는 때로 인류, 인간의 저 끄트머리에서 걷고 있다는 느낌이 들곤 합니다. 인간이 산을 오르고 있다 치면, 선두에 서서 이끄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작가라는 역할을 하는 인간은 제일 끝에서 걷고 있다는 말이에요. 앞에서 걸어가는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흘린 것, 잃어버린 것, 그런 것들을 주워 모아, 잃어버린 사람조차 자기가 그런 걸 갖고 있었다는 사실마저 잊어버린 것들을 하나하나 주워 모아, 그것이 세상에 확실하게 존재했다는 표시를 소설이라는 형태로 남기는 것이죠. 그런 것 같아요. (94쪽)

옮긴이 김난주가 옮긴이의 말에 이렇게 말했다.

읽는 이를 곧장 그곳으로 데려가는 장소의 설정에서 시작해 비로소 이야기가 확대되는 오가와 요코의 작품을 읽으면서 괴테가 말한 '자유로운 경지'가 어쩌면 '텅빔'이지 않을까 하고 새로운 뜻으로 읽힌 것은, 이 강연집 《첫 문장이 찾아오는 순간》에서 누누이 강조되듯, 다소곳이 두 손을 허공으로 내밀고 이미 있는 이야기가 자신에게 찾아와주기를 겸허히 기다리는 그녀 모습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인간이 까마득히 먼 옛날에 이미 거기에 새겨놓은 이야기가 그녀의 두 손으로 내려오는 순간, 그녀는 한없이 '텅 빈' 자유로운 상태가 아닐까. (156쪽)

이 이야기가 이 책을 한없이 무한대로 만들어주기도 하고 텅 빈 상태로 보여주기도 한다.

본인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다른 작가의 소설을 꺼내들어 거기에서도 이야기를 펼치니 소재가 더욱 풍부해진다.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내리 달릴 수 있는 책이다. 사실 저자 소개만 보아도 그 많은 소설을 출간한 작가이니 들려줄 이야기가 많을 거라 기대하고 읽어도 좋겠다.

지금껏 내가 접한 작품과 내가 바라본 세상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는 책이다. 이 얇은 책에 내가 그동안 접하지 못했던 세계 몇 가지가 담겨 있어서 시야가 넓어지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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