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
제니 오델 지음, 김하현 옮김 / 필로우 / 202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이다. 사실 이 책을 읽고 싶었음에도 한참을 읽기 주저한 것은 바빠서였다. 힘차게 이것저것 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을 읽다가 늘어져 버릴까 봐 그랬던 것이다. 물론 이 책이 그런 의미가 아니라는 것은 책을 펼쳐들자마자 바로 깨닫게 된다. 먼저 나의 편견에 한 소리 하고 시작하려고 한다.

그리고 이 책이 궁금했던 것은 버락 오바마 추천 도서라는 점도 한몫했다. 또한 다른 이의 추천사도 호기심을 자아냈다.

인식이 확장되면 더 많은 것들을 온전히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다. 트라이앵글 소리 정도로 들리던 세상이 실은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합주였음을 깨닫게 된다.

_김보라, 영화감독

이 책에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해하며, 이 책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을 집중해서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이 책의 저자는 제니 오델.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를 기반으로 다방면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다. 스탠퍼드 대학교 미술사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일상에서는 새를 바라보며 많은 시간을 보내는 새 관찰자이기도 하다. 새를 알아차리는 행위든, 미술 작품의 소재가 될 스크린숏 수집이든, 제니 오델의 작업은 일반적으로 주의 깊게 관찰하는 행동을 포함한다. 버락 오바마가 '올해의 책'으로 추천하고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릿허브》가 선정한 '지난 10년간 출간된 최고의 논픽션 20'에 오른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은 제니 오델의 첫 책이다. (책날개 발췌)

초현실주의 화가 조르조 데 키리코는 20세기 초에 관찰처럼 '비생산적'인 활동의 지평이 점점 좁아질 것을 예견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점점 더 물질적이고 실용적인 쪽으로 향하는 우리 시대의 방향성 앞에서 정신적 기쁨이 삶의 목표인 사람들이 양지바른 곳을 요구하지 못하는 미래 사회를 상상하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작가와 사상가, 몽상가, 시인, 형이상학자, 관찰자 등 수수께끼를 풀거나 비평을 하려는 사람은 시대에 뒤처진 인물이 되어 어룡이나 매머드처럼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책은 그 양지바른 곳을 지키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끊임없이 우리의 주의를 빼앗으려 하는 관심경제(인간의 관심을 희소자원으로 규정하고 이윤 창출에 활용하는 경제. 소셜미디어가 관심경제의 대표적 사례이며, 이들은 중독을 일으키는 각종 기술을 사용해 최대한의 관심을 끌어내고자 한다-옮긴이)에 맞서는 정치적 저항 행위의 일환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을 제안하는 현장 가이드다. 이 책은 예술가와 작가뿐 아니라 삶을 한낱 도구 이상으로, 다시 말해 최적화할 수 없는 무언가로 여기는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다. (18쪽)

이 책은 총 6장으로 구성된다. 들어가며 '쓸모없음의 쓸모에 관하여'를 시작으로, 1장 '아무것도 하지 않음에 대한 변론', 2장 '단순한 세계의 유령들', 3장 '거부의 기술', 4장 '관심 기울이기 연습', 5장 '낯선 이들의 생태계', 6장 '생각의 토대 복원하기'로 이어지며, 나오며 '명백한 해체'로 마무리된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요즘 내 일상은 좀 정신이 없었다. 무언가 일을 벌여놓고 정신없이 바쁘다가, 썰물처럼 할 일이 빠져나가면 무언가 섭섭하고, 그래서 다시 정신없이 바쁘기를 반복하고 있는 나의 일상에서, 이 책이 뒤통수를 한대 쳐주는 느낌이랄까. 처음부터 세다.

『보물섬』의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1877년에 이미 바쁨을 '활력 부족의 증상'이라 정의하고 "바쁨은 관습적인 일을 할 때를 제외하면 삶을 거의 의식하지 않는 기운 없고 진부한 사람들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어쨌거나 우리의 삶은 한 번뿐이다. 철학자 세네카는 「인생의 짧음에 관하여」라는 글에서 과거를 돌아보다 삶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는 사실을 깨닫는 공포를 묘사한다. 이는 한 시간 동안 페이스북에 푹 빠져 있다가 막 정신을 차린 사람의 모습과 매우 유사하다. (16쪽)

사실 그랬던 것이다. 이 책을 펼쳐들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방법에 무언가 의문을 제기하고 멈춰 서게 하고 마음이 혼란스러울 것이라는 생각에 이 책을 외면하는 시간이 길었던 것이다. 그 예감은 틀리지 않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지금 내가 놓치고 있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상당히 심각하기만 하거나 현대사회를 부정하고 자연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것은 아니니 그 점은 안심해도 된다. 그리고 가끔 너무 진지하지만은 않게 농담도 툭툭 던지며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에는 생각의 지평을 넓히고 진지하게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



이것은 진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눈, 당신의 손, 당신의 숨결, 지금 이 시간, 당신이 이 책을 읽고 있는 장소. 이것들은 진짜다. 나도 진짜다. 나는 아바타가 아니고, 취향의 조합도 아니고, 매끈한 인지적 작용도 아니다. 나는 울퉁불퉁하고 구멍이 많다. 나는 동물이다. 가끔 다치고, 하루하루 달라진다. 다른 생명체가 나를 듣고 보고 냄새 맡는 세계에서 다른 존재들을 듣고 보고 냄새 맡는다. 이 사실을 기억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시간, 그저 귀 기울일 시간, 가장 깊은 감각으로 현재 우리의 모습과 시간, 장소를 기억할 시간 말이다. (63쪽)

이 책은 가장 중요하면서도 잊고 살던 무언가를 떠올릴 수 있도록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지금 이 순간, 존재하는 나, 그것을 인식하는 나…. 이 부분을 그동안 너무도 간과하며 살고 있었다. 특히 코로나 이후에는 더더욱 말이다.

이 책은 제목으로 짐작한 허무주의적인 느낌이 아니라서 약간의 안심과 함께 생각의 지평을 넓혀주었다. 그러니까 저자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주고 다른 체제에서 다른 무언가를 도모하기 위해 현재의 체제(관심경제)에서 빠져나오는 것을 의미(292쪽)한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니 실제 세계의 시공간을 둘러보게 한다. 한 번이라도 더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지금껏 당연한 듯 아무렇지도 않게 여겼던 것을 아닐 수도 있다고 의문을 품는 것부터가 이 책을 읽으며 일보 전진한 것이다. 잊고 있던 무언가를 인식할 수 있도록 재점검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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