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은 별을 볼 수 없습니다 - 망원경 뒤에 선 마지막 천문학자들
에밀리 레베스크 지음, 김준한 옮김 / 시공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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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천문학 관련 서적을 읽으면서 문득 '내가 어렸을 때 이 맛을 알았다면 천문학자를 꿈꿨을까?' 생각해 본다. 물론 아니었을지라도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 생각의 연장선상에서 상상을 이어가다가 와장창 깨준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천문학자' 하면 큰 망원경을 들여다보며 지금껏 발견되지 않은 별을 새로 발견하며 내 이름도 갖다 붙이고, 세계 각지의 오지로 찾아다니며 오들오들 떨며 밤하늘을 바라보는 이미지가 있었지만, 요즘은 그거 아니라고 한다.

이 책의 저자 에밀리 레베스크는 말한다.

내가 뛰어든 분야가 세계 다른 분야만큼 빠르게 변화한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책에서 읽고 상상했던 천문학자는 추운 산꼭대기에서 플리스 재킷으로 몸을 감싼 채 어마어마하게 큰 망원경 뒤에 앉아, 별이 머리 위를 지나가는 동안 눈을 가늘게 뜨고 접안렌즈를 들여다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런 이들은 이미 멸종 위기에 처해 있으며 천문학자의 모습은 진화하고 있다. 천문학자의 대열에 합류하면서, 우주의 아름다움에 더욱 깊이 빠져들면서 나는 놀랍게도 지구 곳곳을 탐험하게 되었다. 그리고 믿을 수 없고 희귀하며 빠르게 변화하는, 심지어 '사라지는' 분야의 이야기를 마주하게 되었다. (14쪽)

그 이야기가 궁금해서 이 책 『오늘 밤은 별을 볼 수 없습니다』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이 책의 저자는 에밀리 레베스크. 미국 워싱턴 대학교 천문학과 교수다. 우주에서 가장 무거운 별들이 어떻게 진화하고 죽음을 맞는지 연구한다. 연구를 위해 세계에서 가장 큰 여러 망원경에서 50일 밤 이상을 관측했으며 비행기에 망원경을 싣고 날면서 관측하는 소피아 프로젝트에 참여해 남극 대륙 위 성층권을 날기도 했다. 2014년 미국 천문학회에서 뛰어난 여성 연구자에게 수여하는 애니 점프 캐넌 상, 2017년 알프레드 P.슬로안 펠로십, 2019년 코트렐스칼러 상, 2020년 뉴턴 레이시 피어스 상 등을 받았다. (책날개 발췌)

이 책은 총 13장으로 구성된다. 1장 '퍼스트 라이트', 2장 '프라임 포커스', 3장 '오늘 콘도르 본 사람?', 4장 '관측 손실 이유는 화산 폭발', 5장 '총알이 낸 작은 상처', 6장 '자기만의 산', 7장 '망원경 썰매와 허리케인', 8장 '성층권 비행', 9장 '아르헨티나에서의 3초', 10장 '시험 질량', 11장 '사전에 계획하지 않은 관측', 12장 '받은편지함 속 초신성', 13장 '천문학의 미래'로 나뉜다.




이 책의 느낌은 이렇다. 의학논문 같은 건 어렵고 딱딱하고 재미없다고 하더라도, 의학드라마는 재미있고, 그에 못지않게 현실 의사들의 이야기도 궁금하고 알고 싶고 그런 법이다. 마찬가지로 천문학자에 대해서도 그렇게 다가가는 책이다. 현실 천문학자들의 실제 상황 이야기를 이 책을 통해 들어볼 수 있다. 실감 나게 열정적으로 풀어나가는 글을 읽으며 나도 그 열정에 물들어본다.

11월 어느 추운 밤, 자정쯤 되었을까. 그날 관측은 영원히 잊을 수 없다. 십 대의 혈기왕성한 신진대사를 달래려 땅콩 과자를 한 움큼을 삼키고 망원경의 뷰파인더를 들여다본 바로 그 순간, 내 시야 위에서 아래로 별똥별이 떨어졌다. 밤하늘의 아주 작은 부분을 망원경으로 가리키고 있었는데 별똥별이 그 좁은 공간을, 내가 접안렌즈에 눈을 갖다댄 바로 그 순간에 지나갈 확률은 희박했다. 그때 눈물을 흘렸는지, 어떤 말을 했는지, 움직이기는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사다리 위에 서 있었고, 망원경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내가 본 장면이 무엇인지 알아차리려 애썼다. 그리고 그때 생각했다. '그래, 이건 괜찮은 직업이야.' (44쪽)



이 책은 저자가 처음으로 대중에게 내놓는 과학 저서라고 한다. 그리고 이 책은 저자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동료 연구자들의 이야기가 함께 있어서 풍성해진 것일 테다. 책의 뒷부분에 보면 인터뷰 목록으로 인터뷰에 응해준 친구와 동료 연구자 112명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있다.




천문학에서 기술이 발전할수록, 천문학자들의 작업 방식 역시 진화한다. 어떤 변화는 두말할 나위 없이 좋다. 예를 들어 다음 세대의 천문학자를 길러내기 위한 과학적 자원을 제공할 자료의 양과 그 방대한 접근성은 모두 훌륭하다. 또한 사무실에 앉아 원격으로 망원경을 다루는 일은 직접 출장을 다니던 때보다 확실히 신체적으로 덜 부담이 된다. 자동 망원경에서 얻은 자료를 사용한다면 그곳에는 추락할 플랫폼도, 제어실을 총총 돌아다니는 전갈이나 타란툴라도 없다. 순간의 관측을 위해 아르헨티나나 남극점, 성층권까지 가는 고된 원정도 없다. 하지만 한편으로 우린 관측에서 얻던 경험, 일화, 모험을 잃어간다. 물론 누구도 그리운 옛날에 붙잡혀 있고 싶어 하지 않는다. 우주에 관해 덜 알고, 우주를 연구하는 데 쓸 수 있는 도구도 더 적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직접 관측하던 시대는 과학적 모험의 한 종류를 대표하고, 그 시대가 저물어갈지언정 그때의 흥분은 나름대로의 쓰임이 있었다. (414~415쪽)

배낭여행을 하던 때를 떠올리면 될까. 온갖 생고생을 하고 다녔지만 모험과 일화, 그리고 각양각색의 추억이 가득했던 것 말이다. 하지만 다시 그런 식으로 여행을 하라고 하면 그렇게 하지는 못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부분이 저자의 이야기와 닮았다. 그 시절의 추억은 있지만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은 그런 느낌말이다.

어느 천문학자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책이다. 거기에 열정까지 더해 통통 튀는 매력을 느낀다. 지금껏 천문학에 관한 책을 읽으며 별을 바라보았다면, 이 책은 별을 매개로 사람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해주는 책이어서 인상적이었다.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들여다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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