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영화를 보다가 우당탕탕 정신없이 싸우고 던지고 때리고 복잡한 화면인데, 다른 소리는 전혀 나오지 않으면서 배경음악으로 클래식 음악이 나오던 순간이 떠오른다. 이 소설이 그런 느낌이다. 이런 이야기들을 어찌 그렇게 담담하게 풀어내는지…….
그리고 일상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무언가가 특별한 소재가 되어 비로소 제대로 의미를 담아 바라볼 수 있도록 해준다. 이를테면 웨하스 같은 것 말이다. 그리고 그 소재는 소설 전반을 휘감고 존재감을 강하게 뿜어내는 위력이 있으니, 그 또한 에쿠니 가오리의 필력 아니겠는가.
어렸을 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간식은 웨하스였다.
바삭하고 두툼한 게 아니라, 하얗고 얇고 손바닥에 얹어만 놓아도 눅눅해질 것처럼 허망한 것이다. 잘못 입에 넣으면 입천장에 달라붙어 버리는.
사이에 크림이 살짝 묻어 있지만, 그것은 크림이라기보다 설탕을 녹인 페스토처럼 묽다. 얇고, 애매한 맛이 났다.
나는 그 하얀 웨하스의 반듯한 모양이 마음에 들었다. 약하고 무르지만 반듯한 네모. 그 길쭉한 네모로 나는 의자를 만들었다. 조그맣고 예쁜, 그러나 아무도 앉을 수 없는 의자를.
웨하스 의자는 내게 행복을 상징했다. 눈앞에 있지만-그리고 당연히 의자지만- 절대 앉을 수 없다. (7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