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하는 일 - 지난 시간이 알려 준 나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마음가짐에 대하여
권미선 지음 / 허밍버드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권미선 에세이 『시간이 하는 일』이다. 아, '시간'이라! 시간이 점점 빠르게 흐르고 있다. 하루가 지루하다는 생각을 하던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후다닥 흘러간다. 조급한가 보다. 그래서일까. 이 책의 뒤표지에 있는 이 말에 눈에 들어온다.

"조급한 마음이 들 때면 시간의 힘을 믿어 보기로 한다.

시간에서만큼은 낙관주의자가 되어보기로 한다." (책 뒤표지 중에서)

저자가 라디오방송 작가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 책의 느낌이 어느 정도 예상되었다. 그리고 그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라디오를 틀면 조곤조곤 이야기를 들려주며 음악을 틀어준다. 그 몇 마디 말속에서 '아하!' 하며 마음에 훅 들어오는 메시지가 있다.

그 말들을 건져내기 위해 얼마나 세세하게 세상을 바라보며 거르고 골라서 마음에 담아두었을까. 그 이야기들을 이 책에서 펼쳐내고 있으니 즐겨 듣는 라디오방송의 DJ 목소리를 떠올리며 이 책을 읽어나갔다.



이 책의 저자는 권미선. 라디오 작가다. <푸른밤 정엽입니다>, <오후의 발견 스윗소로우입니다>, <오늘 아침 정지영입니다> 등에서 글을 썼다. (책날개 발췌)

이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된다. 1장 '누구에게나 각자의 속도가 있다', 2장 '먹고사는 일의 기쁨과 슬픔', 3장 '누군가에게 지옥이 되지 않도록', 4장 '중요한 것은 내 안에 있다'로 나뉜다. 삶에 대한 태도의 문제, 세상이 끝나는 줄 알던 때가 있었지, 한때 소중했던 것들이 사라져도 나는 여전히 나, 모든 일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나는 나를 덜 불행하게 만드는 선택을 했다, 돈 받는 만큼 일한다는 것에 대하여, 말도 마음도 가난해지지 말 것, 누군가에게 지옥이 되지 않도록, 나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다, 몸과 마음의 소리, 잃어버린 것들이 사는 마을 등의 글이 담겨 있다.



살다 보면 언제든 힘든 시간을 지날 수 있다. 멀미가 나도록 굴곡진 하루하루를 지날 때는 알지 못한다. 최악의 날들은 영원히 계속될 것 같고, 다시는 좋은 시간도, 웃게될 날들도 오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지나간 시간과 경험으로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를 울게 하고 힘들게 하던 일들도 결국은 흐릿해진다는 것을. 너무 달라져 길에서 만나면 모르고 지나쳐 버릴 학창 시절 동창처럼, 그 일이 어떤 일이었는지도 잊게 된다는 것을. 지금 보내는 힘든 시간들도 길고 긴 인생 그래프에서 보면 봐줄 만한 하루라는 것을.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것처럼 덜컹거리는 굴곡은 조금씩이지만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할 거라는 것을. 이 모든 게 삶에 대한 태도의 문제라는 것을. (25쪽)

생각해보면 그렇다. 산다는 것은 항상 버겁고 힘든 일이었지만, 어찌 보면 그렇게까지 힘들었는지 떠올려보면 아닌 것도 같고, 무엇 때문이었는지도 가물가물하다. 좋았던 일이든 안 좋았던 일이든, 그 시간에서 멀어지며 희미해진다. 그럴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그렇게 또 하루를 열심히 살아낼 수 있으니 말이다. 앞으로의 날들이 지난날보다 더 좋을 거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으니까.



이 책을 읽다가 한참을 생각에 잠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 감정을 되새김질하기 싫어 마음으로만 공감하며 다음으로 넘어간다.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비슷한 감정들이 얽히고설키며 내 마음이 동요한다. '그래, 내가 누군가의 지옥이 되지는 말아야지'라며 이 책의 소제목으로 나름 결론도 짓는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밖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 자꾸 들여다봐야지. 물어봐야지. 살펴봐야지. 어디 잘못 꽂힌 마음은 없는지. 잃어버리고 사는 마음은 없는지. 잘 살고 있는지. (243쪽)

엄마가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 나는 보호자로 함께 있으면서 병문안 오는 사람들을 대하고, 엄마의 안부를 묻는 사람들의 전화에 답변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누군가가 물었다. "괜찮으세요?" 나는 "조금씩 나아지고 계세요."라며 엄마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지만, 다시 물었다. 엄마가 아니라 나의 안부를 묻는 거였다.

나는 내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내 마음은 어떤지 들여다본지 정말 오래되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이 말이 지금 다시 나의 마음을 건드린다. 잊지 말고 나에게 자꾸 안부를 물어주어야겠다. 자꾸 들여다보고 물어보고 살펴봐야겠다.

이 책은 미처 내가 인식하지 못했던 무언가를 슬슬 건드려주며 언어로 규정지어준다. '맞아, 그때 그 기분이 바로 그거였어.'라며 무릎을 탁 치며 읽어나간다. 자신만의 시간에, 고요한 때에, 몰래 라디오방송을 듣던 어느 날처럼, 라디오 DJ가 들려주는 사연이 마치 내 이야기인 것만 같은 생각이 들던 그 마음으로 이 책을 읽어나가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