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의 위로 - 빛을 향한 건축 순례
김종진 지음 / 효형출판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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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만 얼핏 보았을 때에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저자가 건축가라는 사실을 알고 났을 때에도 그냥 건축물에 대한 탐방 정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책이 있지 않은가. 제목과 개요 정도만 보았을 때와 책을 직접 펼쳐들어 읽어보았을 때 느낌이 다른 것 말이다. 읽지 않았으면 아쉬울 뻔했다는 생각이 드는 책들이 있는데 이 책이 그랬다.

그동안 내가 건축을 바라보던 시선이 단지 건축물이라는 좁은 의미였다면, 그 범위를 넓혀 내 안의 세계와 우주까지 시선을 뻗어나가게 해주는 것이다. 빛과 어둠까지 이어지다가 결국은 빛과 어둠 너머의 세계까지 넌지시 짚어볼 수 있도록 나만의 순례를 도와주는 느낌이 든다. 빛을 향한 건축순례 『그림자의 위로』에 대해 이야기해 보아야겠다.



이 책의 저자는 김종진. 2004년부터 건국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공간 설계와 공간 예술을 가르치며 이론 연구와 디자인 실무를 병행하고 있다. (책날개 발췌)

책에는 사례 작품에 대한 소개도 있지만, 방문하고 머물면서 느꼈던 감정과 경험, 그리고 마주쳤던 풍경과 사람들이 색색의 실로 짜인 퀼트처럼 콜라주되어 있다. 답사를 이어 가며 어디론가 계속 들어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처음에는 건축 작품 속에 담긴 빛과 어둠을 오감으로 체험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답사를 진행할수록 눈앞의 현상을 넘어 어딘가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 책은 빛을 향한 여정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곳을 향한 여정의 기록이기도 하다. (9쪽)

이 책은 총 8장으로 구성된다. 1장 '침묵의 빛: 르 토로네 수도원', 2장 '예술의 빛: 인젤 홈브로이히 미술관', 3장 '치유의 빛: 테르메 발스 온천장', 4장 '생명의 빛: 길라르디 주택', 5장 '지혜의 빛: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 도서관', 6장 '기억의 빛: 911 메모리얼', 7장 '구원의 빛: 마멜리스 수도원', 8장 '안식의 빛: 우드랜드 공원묘지'로 나뉜다.

이 책에서 '빛을 향한 건축 순례'라는 글을 보고 나서야 나는 깨달았다. 우리는 빛과 어둠의 변화에 의해서 항상 같은 장소에 있는 것 같으면서도 늘 다른 곳에 있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말이다. 책 속의 사진도 어느 건물만 찍은 것이 아니라 그곳의 빛을 찍고, 그림자를 담아냈으니, 일단 그 부분을 볼 수 있는 눈을 나에게 건네준 듯해서 경이로운 마음으로 읽어나갔다. 나 또한 빛을 향해 순례를 시작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빛이 공간을 조각한다. 사실 이 말은 토로네 수도원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빛은 공간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이게 하는 탁월한 수단이다. 사람과 공간을 어떤 빛으로 어떻게 비추는가는 그 사람과 그 공간을 어떤 세계로 표현하고 싶은가의 문제다. 토로네 예배당에서의 빛은 백색 건축에 어울리는, 쨍쨍하게 내리쬐는 직사광선이 아니다. 좁은 돌 틈으로 들어오는 희미하고 은은한 빛이다. 그 속에는 사람을 고요한 사색으로 이끄는 힘이 있다. (31~32쪽)





문득 다시 이 책의 표지를 보았다. 제목을 다시금 음미해 본다. '그림자의 위로'. 건축 순례를 빛을 향한 순례라고 한 번 시각을 틀어주고, 거기에 더해 제목에서는 아예 그림자를 부각시키면서 한번 더 꺾어주니, 그것만으로 나에게 새로운 눈을 제공해 주는 느낌이다. 그동안 못 보았던 무언가를 바라볼 수 있도록 시야가 넓어지는 느낌이다.

언젠가부터 빛과 어둠의 공간에서 느끼는 감성 체험이 단순한 개인의 경험을 넘어 보편성을 가질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빛은 나와 세계를 통합하는 근원이었다. (7쪽)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독자로서도 그 보편성에 편승하여 이 책의 장소들에서 빛과 어둠을 경험하듯 읽어나가게 되고, 그러면서도 나만의 공간에 대한 감정을 끌어올리면서 풍성하게 이 책을 음미할 수 있었다.

헛간의 문을 열었을 때, 나는 내면의 문을 연 것이다. (327쪽)

이 책을 읽고 나면 이 말의 의미가 더욱 크게 다가올 것이다. 공간과 건축을 달리 보도록 내 생각의 틀을 깨주는 책이니, 이 느낌을 함께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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