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보다 나이도 어리고 마음도 여리던 시절, 아버지는 내게 한 가지 충고를 했다. 나는 아직도 그 충고를 마음속 깊이 되새기고 있다.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을 때면 이 점을 꼭 명심하도록 해라. 이 세상 사람이 다 너처럼 좋은 환경에 놓여 있지 않다는 걸 말이다." (13쪽)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보통 처음 나오는 말은 소설 전체에서 메시지를 던져준다. 그리고 이 책은 마지막에 독후감이 실려있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 그 글을 보면 그 의미를 좀 더 폭넓게 파악해볼 수 있다. 그러니까 백민석 소설가에 의하면 이 말은 이 소설이 얼마나 '어른스러운' 관점에서 쓰였는지를 잘 드러내 보여준다는 것이다. 즉, 《위대한 개츠비》는 가장 젊은 목소리로 말해지는 가혹한 어른들의 삶이자 세계의 이야기(297쪽)라는 것이다.
데이지의 먼 친척인 닉의 시선으로 소설 속 이야기는 전개되고 있다. 인간이라면 어느 순간, 물질에 대한 갈망이 정점에 가닿는 때가 있을 것이다. 물질을 채운다고 공허한 마음까지 채워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열등감이 드러나는 느낌이랄까. 이 소설을 읽으며 파티가 화려하게 묘사될수록 무언가 허망한 느낌이 커져만 간다.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삶의 허황한 표정들이 흘러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걸 소설이라는 매개를 통해 현실 속에서 바라보는 듯한 느낌으로 읽어나간다. 마음의 무언가를 끄집어내어 펼쳐 보여주는 힘이 있는 소설이다.
이번에는 이 소설을 읽으니 인간 개츠비
의 일생이 보인다. 제목처럼 '위대하다'라고 이야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고, 그렇다고 안쓰럽거나 처량하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무어라고 규정할 수 없는 한 사람의 일생 말이다. 사람의 심리와 인생에 대해 문득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가슴 한 켠이 뻥 뚫린 듯 공허해진다.
고전은 그렇다. 어느 순간에는 '이게 왜 유명하지?' 의아할 때가 있고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있다. 괜히 명성만 높은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건 그 작품과 내가 적절한 때에 만나지 않아서 그렇다. 어찌 보면, 지금이어서 이 책이 나의 눈에 더 들어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작품 해설에 있는 스콧 피츠제럴드의 생애까지 겹쳐지며 메시지를 던져주는 소설이어서 여운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