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여행입니다 - 나를 일으켜 세워준 예술가들의 숨결과 하나 된 여정
유지안 지음 / 라온북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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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만 보고 그저 어디어디 여행 다녀왔고 참 좋았다는 정도로 끝나리라 예상하면 안 된다. 더 넓고 더 깊다. 특히 이 책의 프롤로그부터 기대 이상의 문장에 휘청거린다. 저자는 단순히 '여행 가고 싶어'라는 생각으로 짐을 꾸린 것이 아니다. 그 여행길에는 지독한 아픔이 서려있다. 남편과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자신마저 큰 수술을 받은 후, 혹시나 공부를 하다 보면 상실과 육체의 고통을 잊을 수 있을까 싶어, 투병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대학원에 입학해 창작을 공부했고, 공부를 마친 후 완치가 안 된 상태에서 홀연히 세계 여행을 떠났다는 것이다. 남편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간절하게 바람이 되고 싶어 했는데, 소원을 들어주지 못했지만 문득 남편 대신 바람이 되기로 마음먹었고, 그렇게 아들과 세계 여행을 떠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아들과의 동행은 인도와 이집트를 마지막으로 끝내고, 진정한 홀로서기를 해냈다.

'지금 간절히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가슴에 귀를 대고 들어봐.'

길 위에서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했다. 옹이가 되어 박힌 두려움을 가슴팍에서 뽑아내는 일, 어느 길에서든 주저앉아 감각을 줍는 일, 생의 의미를 되찾는 일, 내 안에 잠재되어 있던 그 무언가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6쪽)

그렇게 100여 곳의 예술가의 생가와 작업실 등을 찾아다니며 상실과 육체의 고통을 조금씩 치유받기 시작했고 그 여정이 너무나 행복했으니, 직접 겪은 행복과 치유의 여행 이야기를 이 책을 통해 들려주는 것이다. 프롤로그를 읽고 나니 본문의 구체적인 내용이 궁금한 생각이 들어 이 책 『오늘이 여행입니다』를 읽어나가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유지안. 중·고등학교 교사와 문학 읽기 지도교사로 오랜 세월 아이들과 함께 하며 2011년 아동문학가로 등단했다. 상실의 고통과 투병 중, 홀로서기를 위해 2017년 10월 인도를 시작으로 900일간의 세계 배낭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예순의 나이에 인생을 리셋하면서, 현재 여행하고 글을 쓰며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아가고 있다. (책날개 발췌)

책에 실린 33명의 예술가들은 마치 나라를 구하고자 한 민족대표 33인처럼 생을 놓아버리고 싶었던 순간 나를 구해준 예술인들로 선택했다. 어떤 이유로든 상실의 늪에서 희망을 다시 소환하여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길 위에서 얻게 된 살아 있는 체험을 들려주고 싶다. '상실에 대한 복구'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충분한 애도의 시간을 가진 후에야 가능하며 비로소 새로운 생의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더불어 문학과 예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과 혼자만의 세계여행을 꿈꾸면서도 두려움으로 과감히 시도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내 경험이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8쪽)

이 책은 총 5장으로 구성된다. 프롤로그 '그대, 그토록 간절하게 바라던 바람이 되기를'과 '인류의 별들을 만난 시간, 900일 여행 루트'를 시작으로, 1장 '자유롭게 떠나다', 2장 '위로하고 치유하다', 3장 '긍정의 힘을 가지다', 4장 '용기로 도전하고 극복하다', 5장 '현재 그리고 미래'로 이어진다. 모딜리아니의 집을 방문하다 (이탈리아 리보르노), 저항 시인 나짐 히크메트를 만나다 (터키 앙카라, 러시아 모스크바), 대문호 톨스토이의 기억 (러시아 모스크바, 툴라), 폴 세잔의 물의 도시 (프랑스 엑상프로방스), 샹송의 여왕 에디트 피아프의 음악 세계 (프랑스 파리),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준 감동 (이탈리아 밀라노, 프랑스 앙부아즈), 사랑이 넘쳤던 도스토옙스키의 삶 (러시아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의 역사를 바꾼 전설의 비틀스를 위하여 (영국 리버풀), 헤르만 헤세의 고통으로부터의 치유(독일 칼브, 마울브론), 진정한 사랑을 노래하다 (아일랜드 슬라이고, 골웨이)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의 앞에 보면 '인류의 별들을 만난 시간, 900일 여행 루트'를 소개하고 있다. 900일의 시간 동안 31개의 나라와 160개 도시를 다녀왔다고 한다. 많은 시간과 노력, 공간을 이동하며 생각하고 깨닫고 터득한 그 모든 것을 거르고 추려서 이 책에 담아낸 것이다. 이 책 속에 압축되어 표현되었다.



철학가 쇼펜하우어는 "인생의 고통을 잠시라도 잊게 해주는 것이 '예술이다'"라고 했다. (99쪽)

그래서 예술가들을 찾아 떠난 여행이 상실의 복구와 희망으로 연결되는 걸까. 문득 그 연결고리인 예술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치고 힘들 때 오히려 예술을 떠올려봐야겠다고 이 마음을 기억하기로 한다.

우리는 꽃길만 걷는 인생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누구든 아찔하게 상실의 아픔과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순간이 있다. 하지만 그것을 이겨내는 힘 또한 우리에게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저자는 상실에 대한 복구의 방식으로 여행을 선택했다. 그 과정이 이 책에 담긴 것이다. 온갖 감정을 차곡차곡 다지고 걸러내고 발효시켜 이 책에 담아낸 듯하다. 그런 진심이 느껴져서 진한 향기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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