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로 읽는 세계사 - 25가지 과일 속에 감춰진 비밀스런 역사
윤덕노 지음 / 타인의사유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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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을 보자마자 호기심이 일었다. 과일로 읽는 세계사라고 한다. 25가지 과일 속에 감춰진 비밀스런 역사를 들려준다고 하니, 어찌 궁금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세계사를 과일로 바라보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궁금했다. 뭐 여기까지에서 별로 호기심이 발동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음 질문 정도면 궁금해지지 않을까?

성군으로 이름난 세종대왕이 수박 도둑에게 대노한 까닭은?

딸기가 스파이 덕에 세상에 등장한 고작 200년 된 과일이라고?

조선 선비들이 코코넛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동양의 과일이었던 다래가 뉴질랜드의 키위로 둔갑한 사연은? (책 뒤표지 중에서)

이 정도 질문이면 막 답을 알고 싶고 그렇지 않을까. 나는 그랬다. 특히 세종대왕이 수박도둑에게 대노한 까닭이 몹시 궁금했다.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해서 이 책 『과일로 읽는 세계사』를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윤덕노. 신문기자를 거쳐 음식 문화 저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25년 동안 신문기자로 생활을 하면서 여러 나라의 요리에 관심이 많아 다양한 음식을 먹어 보고 공부했다. 그동안 모은 방대한 자료조사를 토대로 음식의 기원과 유래, 그리고 관련 스토리를 발굴해 대중에게 소개해왔다. 『음식잡학사전』 출간을 계기로 음식의 역사와 문화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되면서, 조선 시대의 각종 문헌과 중국 고전에서 원문을 확인하고 그리스 로마 고전에서 근거를 찾아 세계의 음식 문화를 연구하고 있다. (책날개 발췌)

저자의 『음식잡학사전』 개정판 『음식이 상식이다』를 본 적이 있다. 그 책을 보며 『음식잡학사전』이라는 제목을 바꿔버린 것에 대해 안타까운 느낌이었는데, 다시 그 이름을 찾았나 보다. 반가운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음식에 대해 모르던 것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는 책이었고, 한동안 '김밥'을 먹으며 '노름꾼이 만든 동양의 샌드위치'를 떠올렸던 기억도 난다. 어떤 내용이든 일단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저자는 방대한 지식을 자신만의 언어로 풀어나가며 독자를 휘어잡는 힘이 있다. 그냥 과일에 대한 궁금한 마음만으로 이 책을 펼쳐들어도 지식의 바다에 빠져들어 흥미롭게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엔 '과일'이다. 음식 중에서도 '과일'을 주제로 한 권의 책이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시작부터 허를 찌른다. 알고 보면 우리의 상식을 뒤집는 꽤 많은 의미와 상징을 품고 있는데, 이를테면 코코넛이 그렇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코코넛은 태양이 작열하는 남국의 휴양지에 가야 맛볼 수 있는 환상의 열매였고, 최근에야 마트에서 구입 가능한 수입 과일이었으며, 현대를 사는 한국인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하지만, 알고 보니 500년 전의 조선 양반들도 코코넛, 즉 야자를 먹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남쪽 나라로 표류해서 어쩌다 구경한 게 아니라 한양 땅에서 여러 사람이 맛봤다는 것이다. 코코넛 껍질로는 술잔을 만들었고 심지어 모자로도 썼다고 하니, 앗, 믿기지 않는 이야기다. 특히 바나나, 멜론, 파인애플까지도 조선의 선비들은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의외성이 이 책을 들춰보자마자 호기심 천국으로 만들고 만다. 일단 집어 들면 기어이 끝까지 읽어보게 만드는 방대한 지식의 세계로 안내한다. 단순히 과일 만으로도 이렇게 풍성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된다. 1부 '과일, 그 천일야화'에는 수박, 참외, 멜론, 파인애플, 딸기, 블루베리, 배, 감, 2부 '과일 이름에 담긴 비밀스런 역사'에는 코코넛, 토마토, 복숭아, 살구, 자두, 매실, 체리, 앵두, 바나나, 3부 '과일이 만든 뜻밖의 역사'에는 오렌지, 레몬, 귤, 석류, 망고, 포도, 다래, 사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책, 읽을수록 탐이 난다. 기대 이상이다. 그동안 과일에 대해 이렇게도 몰랐다니, 그리고 어쩌면 이렇게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지는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어나갔다. 16세기 파인애플 1개 값이 얼마인 줄 아는가? 무려 현재 기준으로 1만 달러, 그러니까 1,100만 원에 거래될 정도였다는 것이다. 유럽의 왕족과 귀족, 부자들조차도 감히 먹을 수 없는 수준으로 비쌌는데, 파인애플은 식용이 아니라 장식용으로 쓰였고, 재력과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파인애플을 렌트했다고 한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지금은 마트에서 구매할 수 있고 바로 먹을 수도 있으니 그 시절에 비하면 세상 좋아진 것이긴 하다.




이 책은 과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왔든 지금까지의 상식을 뒤엎어주는 참신함이 있어서 집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요즘 나는 과일로 키위와 사과를 챙겨 먹고 있는데, 키위의 경우에는 키위의 모체가 된 토종 다래는 한국인에게 거의 잊혀진 과일이며,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라는 고려가요에서 보던 그 '다래'를 듣고 키위를 떠올리지 않았다는 것도 이 책을 읽으며 이제야 새삼스럽다. 게다가 사과는 또 어떤가. 지금과 같은 사과를 먹게 된 것은 조선 후기가 시작되는 병자호란 이후부터(296쪽)라고 하니, 생각보다 그리 길지는 않다.

이 책은 목차를 살펴보다가 궁금한 생각이 드는 부분을 발췌해서 읽어도 좋다. 어느 부분을 읽어도 기대 이상의 방대한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다. 처음부터 차례대로 읽어보아도 물론 과일에 대한 몰랐던 사실들을 알아가며 감탄하게 될 것이다. '어머, 어머' 하면서 읽어나갔는데, 하나하나 다 적기에도 모자랄 정도로 흥미롭고 만족스러운 책이다.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 새로운 지식을 많이 알고 싶은 사람 등 이 책을 보면 흥미로워할 사람들이 많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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