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시대의 지성 이어령과 ‘인터스텔라’ 김지수의 ‘라스트 인터뷰’
김지수 지음, 이어령 / 열림원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시대의 지성 이어령과 '인터스텔라' 김지수의 '라스트 인터뷰'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이다. 예전에 김지수의 인터스텔라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담은 책 『일터의 문장들』을 읽은 적이 있다. 그때 알게 되었다. '김지수의 인터스텔라'는 '유명 인사'라는 거대한 행성을 탐사한다는 취지로 2015년 7월부터 연재 중인 심층 인터뷰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인터뷰집인 그 책을 읽은 후라서 그런지 이 책에 더욱 특별한 기대를 하게 되었다.

선생님이 암에 걸려 투병 중이던 2년 전 가을, 나는 당신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 그때 선생님은 말했다.

"내가 느끼는 죽음은 마른 대지를 적시는 소낙비나 조용히 떨어지는 단풍잎이에요. 때가 되었구나. 겨울이 오고 있구나…… 죽음이 계절처럼 오고 있구나. 그러니 내가 받았던 빛나는 선물을 나는 돌려주려고 해요."

선생님은 '라스트 인터뷰'라는 형식으로 당신의 지혜를 '선물'로 남겨주려 했고, 나는 그의 곁에서 재앙이 아닌 생의 수용으로서 아름답고 불가피한 죽음에 대해 배우고 싶어 했다. 그렇게 매주 화요일, '삶 속의 죽음' 혹은 '죽음 곁의 삶'이라는 커리큘럼의 독특한 과외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사전에 대화의 디테일한 주제를 정해두지 않았고, 그날그날 각자의 머리를 사로잡았던 상념을 꺼내놓았다. 하루치의 대화는 우연과 필연의 황금분할로 고난, 행복, 사랑, 용서, 꿈, 돈, 종교, 죽음, 과학, 영성 등의 주제를 타고 변화무쌍하게 흘러갔다.

(5~6쪽, 프롤로그 중에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해서 이 책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의 인터뷰어는 김지수. 2015년부터 진행한 인터뷰 시리즈 '김지수의 인터스텔라'는 누적 조회수 1,000만을 돌파하며 독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인터뷰이는 이어령. 1934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났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이화여대 석좌교수, 동아시아 문화도시 조직위원회 명예위원장이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교육대회조직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서울 올림픽 개폐회식을 주관했으며 초대 문화부장관을 지냈다. 2021년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문화예술 발전 유공자로 선정되어 금관문화훈장을 수상했다. (책날개 발췌)

궁극적으로 이 책은 죽음 혹은 삶에 대해 묻는 이 애잔한 질문의 아름다운 답이다. 더불어 고백건대 내가 인터뷰어로서 꿀 수 있었던 가장 달콤한 꿈이었다. (9쪽)

이 책은 총 16번의 last lesson으로 구성된다. '다시, 라스트 인터뷰', '큰 질문을 경계하라', '진실의 반대말은 망각', '그래서 외로웠네', '고아의 감각이 우리를 나아가게 한다', '손잡이 달린 인간, 손잡이가 없는 인간', '파 뿌리의 지옥, 파 뿌리의 천국', '죽음의 자리는 낭떠러지가 아니라 고향', '바보의 쓸모', '고통에 대해서 듣고 싶나?', '스승의 눈물 한 방울', '눈부신 하루', '지혜를 가진 죽는 자', '또 한 번의 봄', '또 한 번의 여름-생육하고 번성하라', '작별인사' 가 수록되어 있다. 에필로그와 라스트 인터뷰 "죽음을 기다리며 나는 탄생의 신비를 배웠네"로 마무리된다.



"나는 곧 죽을 거라네. 그것도 오래 지나지 않아. 그러니 지금 할 수 있는 모든 이야기를 쏟아놓을 참이야. 하지만 내 말은 듣는 귀가 필요하네. 왜냐하면 나는 은유와 비유로 말할 참이거든." (43쪽)

단단히 마음 붙들어매고 읽기 시작하기를 권한다. "이보게. 사람들이 죽을 때는 진실을 얘기할 것 같지? 아니라네. 유언은 다 거짓말이야."(49쪽) 같은 말에 당황하며 듣다가도, 죽기 전에 냇가에 묻어달라고 거꾸로 유언했다는 청개구리 이야기나, 삼형제 과수원 얘기도 마찬가지라고 이야기를 이어간다. 밭에 금은보화를 묻어뒀다며 열심히 파면 나온다던 그 이야기 말이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술술 풀어나가며 이어가니 정신 바짝 차리고 들어야 한다.

그러니 당신의 유언을 들을 때는 있는 그대로의 정직을 기대하지 말라고 했다. 듣는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얘기를 할 작정이라고. 과연 이어령다웠다. 죽음 앞에서조차 쉬운 진실보다 수사학으로 가르치겠다니! '덮어놓고 무슨 말이든 듣고 싶었던' 나는 찬물로 세수하듯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51쪽)

사실 이 책에서 발췌해두고 싶은 이야기가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정말 풍성한 이야기에 빠져들고 말았다. 어떤 곳을 보든 마음에 훅 파고들어오는 문장들을 발견하는 시간이다.

이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선생님은 그럼 책을 어떻게 읽으셨나요?"

"의무감으로 책을 읽지 않았네. 재미없는 데는 뛰어넘고, 눈에 띄고 재미있는 곳만 찾아 읽지. 나비가 꿀을 딸 때처럼. 나비는 이 꽃 저 꽃 가서 따지, 1번 2번 순서대로 돌지 않아. 목장에서 소가 풀 뜯는 걸 봐도 여기저기 드문드문 뜯어. 풀 난 순서대로 가지런히 뜯어 먹지 않는다고. 그런데 책을 무조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는다? 그 책이 법전인가? 원자 주기율 외울 일 있나? 재미없으면 던져버려. 반대로 재미있는 책은 닳도록 읽고 또 읽어." (41쪽)

풀 뜯어먹는 소처럼, 나비가 꿀을 딸 때처럼, 그렇게 독서하라는 말이다. 반갑다. 맞다. 의무감으로 읽으면 책이 재미 없어진다. 재미있게 빠져들어 읽을 수 있는 책을 찾아 읽어야 한다. 아니면 어떤 책을 읽든 그런 부분을 건져내야 하고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은 정말 재미있다. 어떤 부분을 펼쳐들어도 재미있어서 자꾸 브레이크가 걸린다. 마음에 와닿는 부분이 나타나면 '맞아, 맞아'하면서 격하게 공감하며 책을 파고든다.



그러고 보니 『한국인 이야기』를 읽을 때에도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는 듯 흥미로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는데, 이 책도 마찬가지다. 책장을 열면 어느 부분을 펼쳐들어도 타닥타닥, 글자들이 불꽃처럼 튀어 오르는 듯하다. 그러면서 불꽃놀이처럼 내 마음에 번지며 흔적을 남긴다. 멋진 말들이 정말 많다.

-뒤늦게 깨달은 생의 진실은 무엇인가요?

"모든 게 선물이었다는 거죠. 마이 라이프는 기프트였어요. 내 집도 내 자녀도 내 책도, 내 지성도…… 분명히 내 것인줄 알았는데 다 기프트였어.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처음 받았던 가방, 알코올 냄새가 나던 말랑말랑한 지우개처럼. 내가 울면 다가와서 등을 두드려주던 어른들처럼. 내가 벌어서 내 돈으로 산 것이 아니었어요. 우주에서 선물로 받은 이 생명처럼, 내가 내 힘으로 이뤘다고 생각한 게 다 선물이더라고." (312쪽)

문득 '선물'이라는 말에 내 주위를 다시 둘러본다. 투덜거리기도 하고 만족스럽지 못해 불만이기도 하고, 그런 나의 일상 속 모든 것들을 선물로 생각하고 소중하게 여기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다. 한동안 생의 진실에 대한 깨달음이 내 마음속에 여운처럼 남아있을 듯하다.

이 책은 일단 재미있다.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듯 흥이 나게 술술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면서도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 깨달음을 군데군데 심어놓아서 집중해서 읽지 않을 수 없게 구성해놓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