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의 진상 - 인생의 비밀을 시로 묻고 에세이로 답하는 엉뚱한 단어사전
최성일 지음 / 성안북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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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았을 때에는 평범한 느낌이었다. 표지를 보고 단어들을 바라본다. 정수기, 김치, 거울, 우산, 고구마, 코로나, 길고양이, 커피, 마데카솔… 우리의 일상에서 숱하게 접하는 단어들에 대해 이 책에서 어떻게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했다.

그런데 이 책을 보니 조금은 독특한 책이다. 인생의 비밀을 시로 묻고 에세이로 답하는 엉뚱한 단어사전이라고 한다. 일종의 수수께끼라고 생각해도 좋겠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접하는 단어들을 좀 더 특별하게 만나보는 시간을 갖고 싶어서 이 책 『단어의 진상』을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최성일. KBS TV 프로듀서다. <이웃집 찰스>, <수상한 휴가>, <속보이는 TV 인사이드>, <재난탈출 생존왕> 등을 기획·제작하였다. (책날개 발췌)

이 책은 그냥 느낌대로 읽어나가면 된다. 그런데 순서대로 읽어야 한다. 먼저 제목이 없는 시 (#숫자)가 나오면 천천히 읽으면서 연상되는 단어를 추리해 본다. 다음 장을 넘겨 내가 떠올린 단어와 같은지 확인하며 에세이를 읽는다. 그다음으로는 시와 에세이를 아우르는 작가의 한 줄 인생 문장과 일러스트를 읽는다. 마지막으로 작가가 제시한 단어에 대해 나만의 이야기를 적어본다.

아, 사실은 표지나 목차에서 단어를 알려주지 않았다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종의 스포일러인 셈이다. 스쳐 지나갔지만 눈에 들어온 몇몇 단어들은 이미 정답이 되어 피식 김빠진 콜라처럼 되어버렸다. 하지만 큰 상관은 없다. 본격적으로 하나씩 읽어나가다 보면 어느새 무슨 단어들이었는지 잊어버리기도 하니 말이다.

한 가지만 예로 들어봐야겠다.

#3

거친 거리에서 살아 돌아와

짧은 봄 햇살에 몸을 뉘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팔 다리 가슴 발

젖은 몸을 뒤척이다

잠이 들었나

아니면

울고 있나

나는

.

.

.

.

.

.

바로 뒷장에 보면 빨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미세먼지 없는 맑은 날, 빨래를 널었다.

지난 일주일을 씻어서 널었다. 나를 널었다.

지나온 시간들이 후회스럽고 초라하더라도 어쩔 수가 없다.

부정할 수 없는 나의 시간들이었다.

그저 그 후회들을 꾸역꾸역 씻어내고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

땀과 눈물을 닦아내고 다시 일어서는 수밖에 없다.

그동안 잘 버텼다. 수고했다 토닥토닥. 다시 시작하면 되지. 그게 인생이지. (147쪽)

그러고 보면 우리는 싹 다 갈아치우고 살 수는 없다. 내 스타일이 있고 내 옷이 있고, 그리고 빨래를 해야 한다. 지난 일주일을 씻어서 널었다, 나를 널었다, 부정할 수 없는 나의 시간들, 후회들을 꾸역꾸역 씻어내고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는 그 말에 인생 참, 생각이 많아진다.

그다음 장에는 일러스트와 함께 한 마디 강렬한 말이 여운으로 남고, 바로 그다음 장에는 '나에게 oo란'으로 마무리된다. 내 생각이 이 책을 함께 완성해나가는 것이다.

가볍게 집어 들었다가 생각보다 깊고 풍성하게 단어들을 채워나간다. 한꺼번에 읽는 것보다 조금씩 음미하기를, 단어 하나씩 곱씹으며 나만의 언어로 채워나가기를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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