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의 냉장고 -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의 차이로 우주를 설명하다
폴 센 지음, 박병철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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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열역학 법칙으로 세상을 바꾼 13명의 과학 영웅들의 빛나는 탐구여정을 담은 『아인슈타인의 냉장고』이다. '열역학'이라는 점에서 어려울 것이라 짐작되면서도 어떤 내용일지 궁금해서 결국 읽게 된 것은 제목 덕분이다. '아인슈타인과 냉장고가 무슨 관계인가?' 호기심이 생겼다.

아인슈타인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열역학은 범우주적으로 통용되는 유일한 이론이다. 다른 이론이 모두 사라진다 해도, 열역학만은 우주의 섭리를 담은 이론으로 끝까지 살아남을 것이다.(11쪽)" 그리고 이 책에서는 말한다. 아인슈타인이 열역학에 관심을 가진 것은 자신의 주 전공 분야인 이론물리학 때문만은 아니었다고 말이다.

그는 열역학의 실용적인 활용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1920년대 후반에 아인슈타인은 당시 시판되던 냉장고의 가격을 낮추고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새로운 냉장고를 설계한 적이 있다. 이 작업에 수년 동안 매달리면서 아에게 사와 일렉트로룩스 사로부터 적지 않은 후원금까지 받았으니 단순한 여가활동은 아니었다. 그런데 왜 하필 냉장고였을까? 여기에는 그럴 만한 사연이 있다. 1926년에 베를린의 한 가정집에서 냉장고의 파이프를 타고 흐르던 유독가스가 새어나와 어린아이를 포함한 여러 명이 사망했다. 이 사고는 베를린의 한 일간지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고, 비극적 뉴스를 접한 아인슈타인은 안전한 냉장고를 만들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열역학은 위대한 과학일 뿐만 아니라 위대한 역사이기도 하다. (11쪽)

제목에 대한 호기심은 일단 프롤로그를 보며 해소된다.

그다음으로는 '열역학'이라는 데에서 오는 부담감인데, 그건 저자의 필력으로 해결이 되니 겁먹지 말고 일단 펼쳐들어 읽으면 된다. 이 책에서는 열세 명의 과학영웅들을 이야기한다. 사디 카르노, 윌리엄 톰슨, 제임스 줄, 헤르만 폰 헬름홀츠, 루돌프 클라우지우스,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루트비히 볼츠만,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에미 뇌터, 클로드 섀넌, 앨런 튜링, 제이콥 베켄슈타인, 스티븐 호킹… 유명한 이름도 있고 낯선이름도 있을 것이다. 상관 없다.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지식의 세계가 확장되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폴 센. 과학 저널리스트이자 과학 TV프로그램 제작자다.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공학을 배울 때 열역학을 처음 접하고, 그 매력에 빠졌다. 과학을 대중화하겠다는 꿈을 안고 방송국에 입사해 다큐멘터리 제작자가 되었다. 다큐멘터리 제작 중 우연히 발견한 사디 카르노의 《불의 동력에 관한 소고》를 접하고는, '과학의 역사가 모든 역사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신념으로 이 책을 집필했다. (책날개 발췌)

이 책은 총 19장으로 구성된다. 1장 '영국으로 가다', 2장 '불을 이용한 동력', 3장 '창조주의 포고령', 4장 '뜨거운 곳에서 차가운 곳으로', 5장 '물리학의 최대 현안', 6장 '열의 흐름과 시간의 끝', 7장 '엔트로피', 8장 '열의 운동', 9장 '확률의 법칙', 10장 '경우의 수 헤아리기', 11장 '파괴적인 후광', 12장 '볼츠만 두뇌', 13장 '양자', 14장 '설탕과 꽃가루', 14장 '대칭', 16장 '정보는 물리적이다', 17장 '맥스웰과 실라르드의 도깨비', 18장 '생명체의 수학', 19장 '사건 지평선'으로 나뉜다.

이 책은 이야기를 들려주듯 낯선 것도 익숙하고 편안하게 풀어서 들려준다. 그냥 결론만 당연한 듯 외우던 것들도 그 당시의 상황 등 설명을 통해 생생하게 다가오도록 한다. 그 장면이 그려지며 생동감 있게 다가오니 이 책을 읽으며 보다 풍성한 지식을 쌓는다.

예를 들어 알코올 1리터를 끓이는 것보다 물 1리터를 끓이는 데 더 많은 열이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그 차이를 수치로 나타낼 생각을 하지 않던 차에, 클레망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방법을 개발한 것이다. 작성자가 누구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클레망의 강의를 정리한 한 학생의 노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클레망 선생님께서 열량을 수치로 표현하기 위해 칼로리라는 단어를 창안했다. 1칼로리는 물 1킬로그램의 온도를 1℃ 높이는 데 필요한 열량이다." 그렇다. 현대인들이 음식에 함유된 에너지의 양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바로 그 '칼로리'다. 예를 들어 100그램짜리 감자칩 한 봉지에 500칼로리의 열량이 함유되어 있다면, 이 감자칩이 우리 몸에 들어갔을 때 발휘되는 열량으로 물 500킬로그램의 온도를 1℃ 높일 수 있다(그로부터 수십 년 후, 과학자들은 '물 1킬로그램의 온도를…'로 정의된 칼로리 단위를 '물 1그램의 온도를…'로 수정했다. 그러므로 클레망이 정의했던 1칼로리는 현재의 단위로 1000칼로리 또는 1킬로칼로리에 해당한다) (35쪽)




루트비히 볼츠만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 1년 전인 1905년, 그의 아이디어를 완벽하게 입증하여 과학의 주 무대에 올려놓은 논문이 발표되었다. 원자론을 믿지 않았던 과학자들도 이 논문을 접한 후로는 원자의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으며, 원자의 거동을 통계적으로 분석하면 열역학 제2법칙이 성립하는 이유까지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만일 이 논문이 2~3년 일찍 발표되었다면 현상론자들의 지독한 비난에 시달리면서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친 볼츠만을 구원해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볼츠만은 가뭄 끝의 단비 같은 논문이 발표되었다는 사실도 모르는 채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다.

문제의 논문을 쓴 사람은 20대 중반의 젊은 물리학자로서, 1898년에 《기체 이론 강의》라는 책을 통해 볼츠만의 이론을 접하고 깊은 감명을 받아 같은 학교 학생인 약혼녀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볼츠만은 최고의 물리학자이자 만능 해결사였습니다. 저는 그의 이론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문제는 특정한 조건하에서 원자가 거동하는 방식인데, 볼츠만은 이 부분을 정확하게 짚은 것 같습니다. 그 젊은이의 이름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었다. (266쪽)

세기의 이론이 어느 날 번쩍 하고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영향을 주고받으며 나타나는데, 아인슈타인이 루트비히 볼츠만의 영향을 받은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아인슈타인의 이야기를 읽기에 앞서 루트비히 볼츠만에 대한 글을 읽었기에 '오, 그랬어?!'라는 반응을 더 크게 하게 되었다. 이 책에는 아인슈타인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그렇게 영향을 주고받은 이야기가 담겨 있으니, 이 책에서 논하는 13명의 이야기를 차례차례 읽어나가기를 권하는 바다.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우리에게 가장 유익한 발견은 무엇이었을까? 누군가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면, 나는 주저 없이 열역학 법칙을 꼽을 것이다. (434쪽)

흥미로운 책이다. 여기에 실린 과학자들이 현재로 살아와서 격렬한 토론을 벌였으면 좋겠다. 또 다른 역사가 쓰일 테니 말이다. 그만큼 이 책이 생동감 있게 다가와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건 전적으로 저자의 필력 덕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열역학 법칙 발전을 물리학자의 삶으로 녹여낸 흔치 않은 책이다. "열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이 통계역학으로 발전하고, 엔트로피의 발견이 아인슈타인과 스티븐 호킹의 블랙홀 우주론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 얼마나 멋진 이야기인가. 열역학이 교과서의 딱딱한 공식이 아니라 인간적인 학문이라는 사실을 밝히는 이 책을, 물리학과에서 열역학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일독을 권한다.

_이기진 서강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열역학에 대해서 막연히 어렵다고 생각하거나 그다지 관심이 생기지 않는다고 하면, '열역학'이라는 단어 빼고 일단 이 책을 읽어보면 좋겠다. 단순히 아인슈타인과 냉장고에 대한 호기심으로라도 좋다. 일단 이 책을 펼쳐들면 기대 이상의 흥미로운 지식의 세계로 초대받는 듯한 느낌이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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