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을유사상고전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지음, 홍성광 옮김 / 을유문화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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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데에는 그동안 잘 몰랐던 쇼펜하우어를 재인식해 보고자 한 의도에서였다. 그러니까 『사는 게 고통일 때, 쇼펜하우어』라는 서가명강 책을 읽다가 쇼펜하우어가 흔히 생각하던 염세주의자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난 후 매력을 느꼈다. 게다가 톨스토이, 투르게네프, 도스토옙스키, 에밀 졸라, 모파상, 앙드레 지드, 프루스트, 버나드 쇼, 서머싯 몸, 헤르만 헤세 등의 문학 세계에 폭넓은 영향을 끼쳤다고 하니 더욱 관심이 갔다.

의외로 그렇게까지 어둡고 불만스러운 것은 아니었기에 더 구체적으로 읽어보고 싶었고, 그러던 차에 이 책을 알게 되었다.

'의지가 없으면 표상도 세계도 없다'

프로이트와 니체에게 큰 영향을 준 쇼펜하우어의 대표작 (책 뒤표지 중에서)

하지만 이 책은 다른 책들보다 작은 글씨와 빽빽한 느낌에 나의 도전정신을 불태우게 만들었고, 결국 나는 몇 개월 프로젝트처럼 거창하게 이 책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읽어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1788~1860). 독일의 철학자이자 사상가. 실존 철학은 물론 프로이트와 융의 심리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19세기 서양 철학계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1819년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출간한 후 1820년부터 베를린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았고, 1839년 현상 논문 「인간 의지의 자유에 대하여」로 왕립 노르웨이 학회로부터 상을 받았다. (책날개 발췌)

쇼펜하우어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처음 출간하고 몇 달 후인 1819년 4월 나폴리에서 로마로 가는 여행길에 「부끄러움을 모르는 시」라는 글을 통해 '후세는 내게 기념비를 세워줄 것'이라고 큰 소리를 쳤다. 하지만 사람들은 낭만파 작가 장 파울을 제외하고는 그의 주저主著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후 1844년에야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제2판이 겨우 나왔지만, 쇼펜하우어는 여전히 철학계의 무시와 멸시를 당하는 무명 학자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1851년 『소품과 부록』 출간을 계기로 대중에게 알려졌고, 1854년부터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와 함께 본격적으로 세상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뒤늦은 성공이었다. 마치 눈사태가 난 것처럼 사람들은 쇼펜하우어에게 새삼 열광했다. 그 전에 35년 동안 극단적인 냉대를 당하던 것과는 정반대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그리하여 1858년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제3판이 나왔을 때, 그는 서문에서 "온종일 달린 자가 저녁이 되어 목적지에 이르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라는 페트라르카의 글귀를 인용하며 나름 위안을 얻는다. (옮긴이 서문 중에서)

이 책의 차례는 다음과 같다. 옮긴이 서문에 이어, 제1판 지은이 서문, 제2판 지은이 서문, 제3판 지은이 서문으로 시작된다. '제1권 표상으로서의 세계, 제1고찰', '제2권 의지로서의 세계, 제1고찰', '제3권 표상으로서의 세계, 제2고찰', '제4권 의지로서의 세계, 제2고찰'로 이어지며, 마지막에 부록으로 '칸트 철학 비판'이 수록되어 있다. 해제 '프랑크푸르트의 괴팍한 현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의 고독한 삶과 작품',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연보, 찾아보기 등으로 마무리된다.

쇼펜하우어는 서술된 사상을 깊이 있게 파고들려면 이 책을 두 번 읽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고 언급한다. 강한 인내심을 갖고 읽어야 하고 그런 인내심은 자발적으로 주어진 신념으로만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 책의 글자 크기가 조금만 더 컸더라면, 글자 크기 부분에서 좀 더 가독성 있게 구성했더라면, 그랬다면 내가 이 책을 읽는 시간은 좀 단축될 수 있었을까. 내용보다도 글자 크기에 대한 아쉬움이 커서 한 마디 남긴다. 눈이 아파서 오래 볼 수 없는 책인데 내용을 음미해야 하니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하지만 쇼펜하우어도 제1판 지은이 서문에서 살짝 농담을 남겼다. 머리말까지만 읽고 그만둔 독자는 현금을 주고 이 책을 샀으므로 무엇으로 자신의 손해를 배상할 건지 물을지도 모른다며, 그러면 책이란 읽지 않아도 여러모로 이용할 수 있다고 그에게 일러준다는 것이다. 다른 많은 책과 마찬가지로 이 책은 장서의 빈 곳을 메워 줄 것이고, 장정이 훌륭하면 확실히 보기에도 좋을 것이며, 또는 박식한 여자 친구가 있는 자라면 그녀의 화장대 위나 차 마시는 탁자 위에 놓아도 좋을 것이라는 거다.

인내심을 가지고 이 책을 읽다 보면 흥미로운 부분을 제법 발견한다. 제3판 지은이 서문은 쇼펜하우어가 일흔둘이 되어서 출간했는데, 그의 나이 갓 서른에 이 책이 처음 나왔고, 생애 막바지에 효력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을 보고 만족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그의 일생에 걸쳐 추가되고 서서히 다듬어진 역작이라는 점과 대중의 반응도 좋아서 저자로서의 만족감도 느낀 책이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나는 이 책에서 세계, 삶, 고유한 정서를 볼 수 있는 거울을 만났다. 정말 대단한 만남이었다. 나는 아무런 경향성도 없는 예술의 꽃을 보았고, 질병과 치료, 추방과 도피처, 지옥과 천국을 보았다. 자기 인식에 대한 욕구가 밀려들었다.

_프리드리히 니체

이 책은 부록으로 「칸트 철학 비판」을 국내 최초로 수록하였고 새로운 편집과 보강된 해설이 담긴 개정판이다. 쇼펜하우어의 모든 것을 눈앞에 펼쳐주고 있지만, 정작 내가 떠먹고 소화시키기에는 버거운 느낌이다. 그렇지만 내가 소화시키기에 버겁다고 할지라도 가능한 만큼 읽고 음미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책이다. 이번에는 그냥 이 책을 읽었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다. 이 느낌을 잊을 때쯤에 다시 꺼내들어 읽어나가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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