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인문학 : 틀 밖에서 생각하는 법 - 현대미술의 거장들에게서 혁신과 창조의 노하우를 배우다
김태진 지음 / 카시오페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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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듯한 책에서 '이 책 꼭 읽고 싶어'라며 호기심이 마구 생기는 데에는 계기가 필요하다. 수많은 책 중에 '이 책이 이런 거였어?!'라는 끌림이 생기는 데에도 책 속 문장 하나가 큰 역할을 한다.

이 책에 이런 말이 있었고, 이 말은 나를 단숨에 사로잡았다.

어느 날 한 예술가가 깨닫는다.

그간 남들 뒤만 따라왔다는 것을.

그는 벽을 기어올라 홈에서 탈출한다.

드넓은 세상과 마주해 감격한 그는

영감에 휩싸여 과거에 없던 미술을 창조한다.

이로써 미술의 지평을 넓힌 그는

미술의 지도에서 빛나는 하나의 점이 되었다.

(11쪽)

예술을 한다는 것은 이미 사람들이 이루어온 틀 안에서 보다 나은 모습을 보이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어느 순간에는 그 틀을 뛰어넘는 무언가를 창조해내야 하는 것일 테다. 수많은 사람들이 시대 안에서 비슷비슷한 작품을 만들어냈겠지만, 어떤 사람들은 시대를 뛰어넘는 점이 되었으니 그들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했다. 또한 단순한 지식의 나열이 아니라 인문학적으로 살펴볼 수 있으리라 기대되어 이 책 《아트 인문학 : 틀 밖에서 생각하는 법》을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김태진. 문학적 감성으로 예술 이야기에 인문학을 녹여내는 작가이자 강연가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파리 예술혁명, 그리고 스페인 문화예술을 다룬 세 권의 《아트인문학 여행》과 서양미술의 역사를 독창적 시각으로 다룬 《아트인문학: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법》을 통해 선보인 '김태진 식의 문화예술 감상법'으로 많은 독자들의 사랑과 호응을 받았다. (책날개 발췌)

이 책의 화두는 '틀 밖에서 생각하기'다. 앞으로 경로선들을 따라 모두 25개의 생성점을 찾아갈 텐데, 그곳에서 이 화두를 다시 떠올리게 될 것이다. 각 장이 끝날 때마다 내용을 보완하는 세 개의 꼭지들을 덧붙였다. '틀 밖에서 생각하라'에서는 하나의 경로선이 갖는 의미를 정리했고, '시대를 보는 한 컷'에서는 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20세기의 주요 사건을 통해 문화 전반에까지 이해의 폭을 넓혀보았으며, '현대미술 돋보기'에서는 본문에서 다루지 못한 내용을 심도 있게 조명하며 미술사의 전체 흐름을 따라갈 수 있도록 했다.

자, 모든 준비가 끝났다. 이제 제법 긴 이야기를 해야 한다. (10쪽, 프롤로그 중에서)

이 책은 총 5장으로 구성된다. 1부 '미술, 홈에서 빠져나오다'에는 1장 '그림, 다시 평면이 되다 : 공간의 붕괴', 2장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 : 지각의 해체', 2부 '미술, 드넓은 세상에 펼쳐지다'에는 3장 '처음부터 옳았던 것은 없다 : 권위 너머로', 4장 '그 무엇을 가져와도 예술이 된다 : 형식 너머로', 5장 '결과물로서 작품은 없어도 된다 : 물질 너머로'가 수록되어 있다.

먼저 이 책에서는 20세기 미술 지도로 크게 다섯 개의 선을 다섯 개의 장으로 나누고 있다. 또한 이들은 다시 두 그룹으로 나뉘어 2부 5장으로 구성하고 있다. 이것부터 신선했다. 미술사에서 의미 있는 큰 점을 짚어보는 느낌으로 머릿속에 지도를 그리고 이 책을 읽어나갔다. 20쪽에 있는 20세기 미술 지도는 이 책 전체를 아우르는 지도가 되니 일단 표시해두고 이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한다.

이 책을 읽는 데에는 거창한 무언가가 필요하지 않다. 일단 펼쳐들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는 듯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줄줄 들려주고 있으니 말이다. 작가가 잘 짚어주면서 훤히 들여다볼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미술의 발전사를 다 들여다볼 수 있도록 상당히 상세하게 잘 짚어주었다.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할 수 있도록 짚어주니 내가 꽤나 박식해진 것처럼 느껴진다. 미술 지식이 풍부해진 듯한 느낌은 덤이다.

앞부분은 워밍업 느낌으로 그 과정을 슬슬 짚어보는 심정으로 읽어나갔고, 뒤로 갈수록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나야 뭐, 현대미술은 이게 도대체 무엇인지 누가 짚어주지 않으면 그 의미를 알기 버거워서 그런지, 이렇게 굵직굵직하게 흐름을 점과 선으로 짚어주는 것이 여간 흥미로운 것이 아니었다. 현대미술이 이렇게 재미있었다니, '아, 이런 것도 있구나!' 알아가는 시간이다.

강의를 듣는 듯, 아니 그냥 '이런 것도 있는데 몰랐죠?'라면서 슬슬 이야기를 풀어나가니 호기심을 채워주는 느낌으로 이 책을 읽어나갔다. 다 비슷비슷한 미술 책이거니 생각했다가 의외로 허를 찔리는 느낌이랄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은 책이다.


"이제 더 없습니까? 그렇다면 54번째 캔은 18만 250파운드에 낙찰되었습니다!"

2015년 크리스티 경매장. 작은 캔 하나가 엄청난 금액에 낙찰되자 장내가 술렁거렸다. 이에 대해 두 친구가 이야기를 나눈다.

"설명을 못 들었는데, 저 캔 안에 들은 건 뭐지?"

"똥이야. 예술가가 싼 똥."

"뭐라고! 똥이 들었어? 그런데 그게 미술품처럼 거래가 되고, 또 저 금액에 사는 사람이 있다는 거야?"

"응. 저건 그래도 제법 유명한 작품이야. 1961년에 제조(?)되었으니 벌써 60년이 넘은 건데, 꾸준히 가격이 오르고 있지. 7,8년 전에 15만 달러 정도 했는데 이제 25만 달러를 훌쩍 넘겼네."

"뭐라고! 60년이 넘었어? 그럼 안에 내용물은 완전… 아냐, 이제 밥 먹어야 하니 말하지 않는 게 좋겠어."

"그래, 상상하기도 싫다. 그런데 놀라운 게 뭐냐면 당시 90개가 한꺼번에 만들어졌는데, 다 팔렸다는 거야. 그게 요즘 경매에 나오는 거고. 그중 하나는 열어보기까지 했다더군."

"우엑! 토 나온다. 밥 먹긴 다 글렀어. 그런데 정말 이해가 안 돼. 저게 왜 미술인 거야?"

(출처: 343쪽)

피에로 만초니의 작품 <예술가의 똥>은 제조 및 밀봉이 1961년 5월이고, 또한 만초니가 이 캔의 가격을 당시 금값과 동일하게 책정했다는 것이다. 당시 금값이 1그램에 1달러를 조금 넘었다고 하는데 이 캔의 정량이 30그램이니 대략 35달러 정도의 금액을 책정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재미 삼아 하나둘씩 이 작품을 사기 시작했고, 이어 미술관에서도 구입을 시작하더니 몇 개 안 남았을 땐 그야말로 엄청난 경쟁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1989년 한 소유자가 이 캔을 땄다는 것이다. 그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었을까. 그런데 캔 안에 더 작은 캔이 들어있었다는 것이다. 그 상황에서 그는 거기서 그냥 멈추기로 한 것이다. 그 작은 캔 안에는 정말로 무엇이 들어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별게 다 예술이네, 생각되다가도, 남들이 안 한 것을 해내야 하는 그들의 심정은 오죽할까, 하는 생각도 든다. 여기에 예를 든 것은 빙산의 일각. 이런 재미난 이야기들이 계속 쏟아지니 지루한 줄 모르고 흥미롭게 읽어나갔다.



이 책을 읽어보면 알 것이다. 모르는 내용은 궁금하게 만들고, 아는 내용도 더 재미있게 이야기해 주어, 저자가 타고난 이야기꾼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런 게 다 있었어?'라며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스물다섯 개의 생성점을 지나는 다섯 개의 경로선! 이 책을 읽으며 예술의 발전사를 한 권의 책으로 짚어본다. 한눈에 미술이 지나온 경로를 들여다보는 듯했다. 그 시대에 화가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훤히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해준 책이니, 누구든지 볼 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울러 21세기의 미술은 어떻게 갈지 그 흐름도 궁금해진다.

이 책이 주는 여운은 크다. 무엇보다 현대미술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니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었고, 마무리까지 알차게 읽어나가고 나서는 생각에 잠긴다.

그대는 예술가다.

그리고 그대의 삶은 예술이어야 한다.

그러니 무작정 남의 뒤만 따르지 말라.

이제 그대가 가는 곳이 곧 길이다. (408쪽)

예술이 남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이 예술이어야 한다는 점까지, 이 책이 건네주는 메시지가 가득하다. 자기만의 미술을 선보인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이 궁금하다면 이 책이 흥미롭게 다가올 것이다. 미술에 별다른 관심이 없더라도 이 책만큼은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리라 짐작한다. 내가 그랬던 만큼, 아니 그 이상 말이다. 매력적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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