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들 - 사물에 관한 散文詩
류성훈 지음 / 시인의 일요일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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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어보고자 생각한 데에는 '책머리에' 첫 문단이 주는 강렬한 느낌 때문이었다.

사물은 선물입니다. 우리는 담요와 따뜻한 물 없이 아이를 혼자 받을 수 없고 공구 없이 집을 지을 수 없으며 필기구 없이 사유를 정리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 처음 온 우리를 가장 오래 감싸고 있던 것은 사실 어머니의 손이 아니라 담요이며 이는 힘든 어머니의 손을 보조하기 위해, 그리고 새로운 이승을 위해 마련된 선물입니다. 우리는 그 담요를 어루만짐으로써 어머니의 의미뿐 아니라 삶 이전까지 추억하는 공감각적 여행이 가능해집니다. (책머리에 중에서)

나는 왜 지금껏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일까. 그리고 이 책이 아니었다면 앞으로도 생각해내지 못했을 그런 생각 하나 발견했다. 거기에 매료되어 이 책 《사물들》을 읽어보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이 책의 저자는 류성훈. 201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문단에 나왔고 대학에서 시창작과 글쓰기를 지도하고 있다. 시집으로 《보이저1호에게》가 있다. (책날개 발췌)

시를 쓰는 마음으로 쓴 책인 만큼 저는 이 글들을 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시로 읽히든 산문으로 읽히든 이 책은 '사물'에 대한 제 고백이자 찬가이며 관점이자 관점에 대한 자성입니다. 동시에 대상에 대한 저의 사물이건 타자이건 모든 대상에 대한 새로운 바라봄은 우리 생의 진정한 긍정임을 저는 믿습니다. 사랑하는 이에게 정성된 사물을 선물하듯, 저는 저의 작은 사물론을 선물하고자 합니다. (책머리에 중에서)

이 책에는 스무 가지 사물에 대한 사색이 담겨 있다. 우산, 자전거, 등, 옷, 칼, 의자, 공구, 노트, 만년필, 도장, 악기, 다기, 식탁, 냉장고, 카메라, 시계, 재봉틀, 이불, 신발, 상자 등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저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사물과 연관되는 기억을 떠올리고 그 사물에 대한 생각을 문자화했다. 이 책을 읽어나가며 자신의 과거와 만나고 예전 생각을 떠올리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느 순간 느꼈을지도 모를 일도 있을 것이고, 저자를 통해 처음 접하게 되는 생각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짚어주어서 인식하게 되는 부분들이 있다. 매미허물을 이야기하며 옷과 수의, 배냇저고리까지 생각을 이어가는 것도 그렇고, 특히 다음 문장에서는 지금까지 나를 감싸고 있던 옷에 대해 재인식하게 되었다. 옷이 나에게 어울리고 안 어울리고를 떠나, 잊어야 버틸 수 있는 것과 잊지 말아야 더해질 수 있는 것을 인식하도록 하는 것은 시인의 시선이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사물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긴다.

당신의 옷이 내게 말해주는 것, 내 옷이 나에게 말해주는 것이 있는 방식으로, 세상엔 잊어야 버틸 수 있는 것과 잊지 말아야 더해질 수 있는 것이 있다. 사람에게 가장 오래, 가장 많이 밀착된 사물은 옷일 테고 그 옷의 의미와 언어의 일부라면, 지금 이 순간에도 그것들은 나를 말하고 있고 내가 허물을 벗은 한참 후에도 계속될 것이다. (62쪽, 옷)

상자에 대한 글도 인상적이다. 저자에 의해 나의 생각은 시야를 넓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사물을 바라본다.

우리가 태반에 싸인 채 이 세상에 도착하듯이, 사물은 대개 상자에 담긴 채 도착한다. 그것은 상자 밖에서 만들어지지만 한번은 상자에 들어갔다가 본격적으로 다시 세상에 나오게 된다. 물론 상자 밖으로 영영 나오지 못하는 사물들도 있다는 점에서 사물과 인간은 모두 씁쓸한 출발선을 가졌고, 우리는 죽어 다시 한 번 상자속에 들어가므로 상자는 모든 시작과 끝에 위치한 사물에 가깝다. (265쪽. 상자)



우리는 누구나 어느 부분에 있어서는 세심하다.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이 책을 읽어나가다가 문득 저자와 비슷한 경험이나 기억을 떠올리며 교집합처럼 겹쳐지는 생각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상대를 외롭게 하는 존재는 더욱 외롭다. 즉 대상이란 '고독의 형상'이다. 의자는 외롭게 기다리는 사람을 오래 그 자리에 있게 한다. 즉, 인칭을 사물화시킨다. 설령 어떤 기다림이 끝나도 의자는 사람을 외로운 객체 그대로 있게 돕는다. 그런 면에서 의자는 사물과 사람 사이에 있고 어떤 사물과 사람보다 외로움에 더 가까운 사물이다. 사람의 외로움이 실체화된다면 의자의 형상에 가장 가까울지도 모른다. (86쪽, 의자)



나는 우리 인간이 사물이나 동물이 아니기 위해 몸부림치는 그 중간쯤에 위치하는 사물이나 동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또한 그러한 노력이 진행형인 때만을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으니 '인간'은 명사형보다는 동사형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마치 자유라는 개념이 완전히 자유로운 불가능한 상태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상태 그 자체의 의미에 가까운 것처럼. 알 속의 새는 아직 온전한 새가 아니고, 상자 속의 냉장고는 아직 온전한 냉장고가 아니듯, 우리가 정신의 태반 속에 정리해 있는 동안은 아직 온전한 인간이 아닐 것. 헤르만 헤세의 껍질을 깨고 날아오르는 새 이야기는 다른 게 아니라 우리가 끊임없이 어떤 진행형의 의지를 가질 때 비로소 고귀해진다는 의미일 테지. 나는 가령 인간이 비록 온전한 인간으로서 거듭날 수 없다 하더라도 누군가에게 대상이 되거나 그 대상을 오롯이 담는 상자가 되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할 순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택하는 과정으로서의 동사적 개념이 곧 인간이라는 생각을 했다.

(267~268쪽)

방송인 서경석은 이 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리 쉽진 않다. 하지만 맛있어서 계속 읽게 된다.'라고 말이다. 이 책을 읽어보면 알 것이다. 맛있다는 그 '맛'은 부드럽게 녹아드는 맛이 아니라 끓일수록 우러나는 진한 곰국 같은 맛이다. 어쩌면 이 책은 질겅질겅 곱씹어야 진정한 맛이 우러나는 글을 보여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패스트푸드가 아니라 제대로 준비된 슬로푸드다. 요리법이 비법인 책이다. 담백한 재료로 지금껏 맛 봐온 글맛과는 다르게 요리된 글들이 담긴 산문집이다.

문득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과 사물들을 이 책 덕분에 되살려보기도 했으며, '아, 이걸 이렇게 생각하기도 하는구나!'라며 감탄해보기도 했다. 이 책은 '시인의 산문집'에 부합하는 책이다. 저자의 표현대로 '사물에 대한 산문시'라고 보아도 좋겠다. 사물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을 건네주는 책이니, 저자가 사물을 바라보는 안경을 건네받아 주변 사물들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아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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