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살 레이나와 열일곱 이츠카는 여행을 떠난다. 메모 한 장 달랑 남겨놓고 말이다.
"이츠카짱이랑 여행을 떠납니다. 가출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시고요. 전화도 하고 편지도 쓸게요. 여행이 끝나면 돌아올 거예요. 러브 Love. 레이나." (상권 16쪽)
집 근처 말고는 혼자 나다니게 한 적도 없는 딸이 여행을 떠났다니 리오나는 걱정이 한가득이다.
옮긴이의 표현에 의하면 이렇다. '자발적 아웃사이더인 17살의 이츠카와 천진하고 붙임성 좋은 14살의 레이나는 어느 날 미국을 '보기 위한' 여행길에 나섭니다'로 긴 이야기가 시작된다.
나도 어렸을 때 어디든 내 맘대로 가지 못하고 허락을 받아야 했다. 그래서 레이나가 메모 한 장 남기고 이츠카와 여행을 떠나는 장면에서 대리만족이랄까. 신나는 모험이 시작되는 느낌으로 읽어나갔다. 그 시절 그 마음으로, 그때는 하지 못했던 여행을 해보는 느낌으로 말이다.
소설 속 인물들이 낯설지 않은 느낌이 들 즈음, 그들의 마음속까지 스며들어 소설 속 이야기에 몰입하게 된다. 그건 아마 에쿠니 가오리의 청아한 문체와 세련된 감성 화법의 영향일 것이다.
에쿠니 가오리는 사소한 일상에서, 어찌 보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던 무미건조한 어느 시점의 일상을 엿가락처럼 길게 늘여서 소설 속에 녹여낸다. 어쩌면 몇 마디로 끝날 우리의 일상 속 사소함이 에쿠니 가오리를 거치면 한 권의 책으로 탄생하는 느낌이랄까. 이 소설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