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라이트
주제 사라마구 지음, 김승욱 옮김 / 해냄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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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사후에 출간된 유일한 유고작 『스카이라이트』이다.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이라는 점 만으로도 이 책을 읽고자 한 데에는 그의 대표작 『눈먼 자들의 도시』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그 당시 갑자기 모든 것이 둘로 보이는 복시 현상이 나타났고, 그 3주간의 기억은 어쩌면 다시는 글을 읽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나를 바닥까지 끌어내렸다. 그리고 아무 일 없었던 듯 3주 만에 원상복귀되었고, 그때 나는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었다. 그 소설은 처절하고 지저분하고 무겁고 아팠다. 안 그래도 바닥까지 내려간 나를 더 낭떠러지로 밀어버린 후 나는 회복세를 탔다.

그래서 '주제 사라마구'라는 이름만으로도 나는 이 책을 읽고야 말겠다고 생각을 한 것이다. 그의 작품은 절대 술술 읽히지 않는다. 어떤 면에서는 내 기분까지도 잡아끌어 바닥으로 내친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책을 읽어보고 싶었다. 주제 사라마구의 책이니까. 사후에 출간된 유일한 유고작이라고 하니까. 마음 단단히 먹고 그의 필력에 휘둘리고 말겠다는 결심을 한 후 이 책 『스카이라이트』를 읽어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주제 사라마구. 1922년 포르투갈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용접공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라마구는 1947년 『죄악의 땅』을 발표하면서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19년간 단 한 편의 소설도 쓰지 않고 공산당 활동에만 전념하다가, 1968년 시집 『가능한 시』를 펴낸 후에야 문단의 주목을 받는다. 사라마구 문학의 전성기를 연 작품은 1982년작 『수도원의 비망록』으로, 그는 이 작품으로 유럽 최고의 작가로 떠올랐으며 1998년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책날개 발췌)



나는 이 책의 '서문'이 한 편의 소설 같았다. 주제 사라마구 재단 회장 필라르 델 히우가 2012년에 쓴 서문이다. 이 글이 『스카이라이트』라는 소설에 대한 호기심을 극대화시킨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원고가 사라져 찾을 길이 없었는데, 30여 년이 지난 후에 주제 사라마구가 찾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소설을 읽은 사람들은 출판하자고 사라마구를 설득하려 했지만 그는 고집스럽게 거부하면서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출판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나 현재에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스카이라이트』가 출판된 나라들, 즉 그의 모국어를 사용하는 포르투갈과 브라질에서 사람들이 갑자기 이 '새' 작품에 대해 들뜬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래, 사라마구가 새 책을 내놓았다. 우리의 심금을 울리고, 기쁨과 탄성을 자아내는 신선한 책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하다가 우리는 깨닫는다. 이것은 작가가 이미 이곳에 존재하지 않게 된 뒤에도 우리와 계속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남겨둔 선물임을. (11쪽)

초기작이면서 유고작이라는 것이 인상적이다. 세월 속으로 사라졌던 책, 그 책이 지금 시점에서 살아나 우리와 만남을 갖는다는 것만으로도 꺼져가던 불씨를 활활 태우는 듯해서 활화산 같은 존재감을 느끼게 된 책이다.



이 소설의 배경은 1952년 리스본의 봄이다. 구두장이 실베스트르 부부의 평범한 일상 한 장면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그 시절 그 장소를 모르지만 이 소설을 읽어나가다 보면 그곳 사람들의 일상이 그려진다. 약간은 팍팍한 서민들의 일상 말이다. 밑창에 대는 가죽 값이 계속 오르고 있고, 손님들은 비싸다고 불평하지만 어쩔 수 없으니, 세입자를 집에 들이기로 한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두꺼운 무쇠솥을 천천히 달구는 느낌이 든다. 워밍업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는 말이다. 잔잔한, 잔잔하고 평범한 일상이 느린 속도로 눈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하지만 점점 등장인물이 파악되고 씨줄과 날줄처럼 엮어지며 하나의 유기체가 되어 나에게 메시지를 던진다. 주제 사라마구가 그동안 말이나 글로 자주 언급했던 자신의 가장 중요한 인생 원칙이라는 '누구도 다른 사람을 사랑할 의무는 없지만, 우리 모두 서로를 존중할 의무가 있다.'라는 것 말이다.



정말 보석 같은 책이에요. 작가가 나중에 문학적으로 천착했던 것이 모두 여기에 들어 있어요. 그 뒤에 출판된 책들의 지도 같은 책이에요. 그렇게 젊은 나이에 어떻게 이처럼 성숙하고 자신감 넘치는 책을 쓸 수 있었을까요? 그래, 그의 독자들이 계속 품고 있는 의문이 바로 이것이다. 사라마구의 지혜는 어디서 왔을까? 그토록 섬세하고 간결하게 인물을 묘사하는 능력, 무엇보다 진부한 상황에서 심오함과 보편성을 찾아내는 능력, 고요한 폭력을 휘둘러 관습을 짓밟아버리는 능력은 어디서 왔을까? (11쪽)

몰입하게 되거나 속도감 있는 소설은 아니지만 잔잔하게 물들어가는 소설이다. '주제 사라마구의 마지막이자 첫 시작을 여는 입문서'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은근히 스며들게 하는 소설이어서 주제 사라마구의 필력에 젖어들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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