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학자의 정원 산책 - 사람, 식물, 지구! 모두를 위한 정원의 과학
레나토 브루니 지음, 장혜경 옮김 / 초사흘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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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호기심을 갖고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한 데에는 다음 글의 영향이 크다.

이토록 고마운 식물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때마다 물을 주고, 영양제나 비료를 부어 주고, 토양 개선제를 섞어 주기도 하며, 해충 제거제를 뿌려 식물을 괴롭히는 벌레도 없애 준다. 이만하면 식물도 인간의 서비스에 만족할까?

슬프게도 이런 생각은 식물을 잘 모르는 데서 비롯한 우리만의 착각이다. 우리가 식물을 '잘 돌보기 위해' 하는 행위들이 사실은 식물에 별 도움이 안 되고, 지구 온난화를 가속하며, 물을 오염시키고, 생태계에 혼란을 일으킨다면? 맙소사! 그렇다고 너무 자책하지는 말자. 이제라도 식물의 복잡한 속사정을 알고 제대로 돌보면 된다. 식물학자 레나토 브루니가 들려주는 식물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 (책 뒤표지 중에서)

어쨌든 '식물학자 레나토 브루니가 들려주는 식물 이야기'라는 점에서 호기심을 가지고 이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 책이 이렇게 흥미로울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평범한 제목과 식물학자가 들려주는 식물 이야기라는 데에서 기대하지 못했던 어마어마한 이야기들을 대방출해 주는 책이다. 어찌 되었든 일단 이 책을 펼쳐들고 읽을 기회를 얻어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펼쳐들면 식물에 대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려주는 책 『식물학자의 정원 산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레나토 브루니. 이탈리아 파르마 대학교의 식물학 교수로, 영양학 연구소에서 식물을 연구하며 약학생물학을 가르친다. 식물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썼고, 2017년에 이탈리아 과학도서상을 받았다. (책날개 발췌)

이 책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총 4부로 구성된다. 들어가는 글 '식물학자의 자연 결핍 증후군'을 시작으로, 열여섯 번의 산책으로 이어진다. 옮긴이의 말 '자연을 그리워하는 나와 당신에게 식물학자가 건네는 위로'로 마무리된다.

이런 거 좋다.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는 것 말이다.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는 듯하여 집중해서 읽어나간다.

꽃은 개점 시간이 저마다 다른 '임시 가게'다. 딱 한 번만 문을 열지만 일단 열었다 하면 며칠씩 영업하는 종이 있는가 하면, 주기적으로 문을 여닫는 종도 있다. 아침 일찍 열었다가 해가 지면 퇴근하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야간 근무를 좋아하는 녀석도 있고, 24시간 영업하는 녀석, 불과 몇 시간만 문을 여는 녀석도 있다. 그래도 가게의 고객들은 고르고 고른 우수 단골들이어서 수요를 예측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가게 문을 열자면 쇼윈도와 블라인드는 기본이고 셔터를 걷어 올릴 모터도 준비해야 하며 제때제때 모터를 작동할 센서도 갖춰야 한다. 이렇게 개점 준비에 걸리는 시간은 식물마다 모두 다르다. 백합은 네 시간이면 봉오리를 열어젖히지만, 칼랑코에는 꽃송이가 훨씬 작은데도 다섯 시간이나 걸린다. 부지런한 달맞이꽃은 20분 동안 활짝 피어 있는데, 날쌘돌이 담쟁이의 꽃은 10분도 채 안 피고 문을 닫는다. (21쪽)



꽃가루와 꽃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꼭 이런 말을 듣게 된다.

"꿀벌이 사라지면 인간도 기껏해야 4년밖에는 더 못 산대."

인터넷에 떠도는 주장과 달리 이 말을 한 주인공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아니다. 아인슈타인이 세상을 떠나고도 무려 40년이 더 지난 1994년에 양봉업 지원 행사에서 나온 말이다. 나아가 이 말은 생물학적 관점에서도 100% 옳은 말은 아니다. 정원을 유심히 관찰해 보면 누구나 알겠지만, 식물들이 꽃가루받이 도우미로 벌만 이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벌이 가장 널리 알려진 도우미인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벌이 지구 생태계를 통틀어 유일한 꽃가루받이 도우미라는 주장은 꽃을 망원경으로 보는 것과 같은 근시안적인 생각이다. 양봉꿀벌을 제외하고도 꽃가루받이를 해 줄 수 있는 동물 종은 10만~30만 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가루받이를 양봉꿀벌에 의존하는 식물 종은 전체의 15%가량에 불과하며 그마저도 꿀벌에만 기대지는 않는다. (75쪽)

꿀벌이 사라지면 인간도 기껏해야 4년밖에는 더 못 산다는 이야기를 온갖 곳에서 많이 들어보았는데 사실이 아니었다니! 정신 바짝 차리고 기억해두어야겠다.

사실 우리는 자연과 그다지 가깝지 않은 생활을 하고 살아간다. 어쩌다가 산책을 하면서 바라보아도 사실 뭔지 잘 모른다. 그런데 이 책을 읽어보면 '어, 그래?'라면서 흥미로워질 것이다.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은 기본이고, 그것도 쏙쏙 와닿게 풀어내어 읽는 재미가 있으니 말이다.

이 책을 읽고 식물을 보면 또 다르게 다가올 것이며, 식물을 보고 온 후 이 책을 읽어도 또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이래저래 식물과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 것이다.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그게 아니었다고?'라는 생각도 하며, 다양한 반응을 내보이며 읽어나간 책이다. 기대 이상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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