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인물이 매력적이면 처음부터 호기심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다. 처음에 등장하는 인물이 유리. 여섯 살 될락 말락 한 다섯 살이라고 한다. "여섯 살이 될락 말락 하잖아요. 될락 말락. 그게 막 간지러워요." 까르륵 웃는 유리의 모습이 상상되면서 소설의 흐름에 자연스레 따라가본다.
유리는 오베르주 애비로드에 살았다. 오베르주는 Auberge. 숙박 시설을 갖춘 레스토랑을 프랑스 말로 그렇게 부른다는데, 아무려나 유리의 엄마 난주 씨의 주장이 그랬다. 애비로드는 Abbey Road. 비틀스의 정규 음반. 레스토랑은 커피 향과 비틀스의 음반으로 가득했고, 한쪽 벽에는 비틀스가 런던의 실제 애비로드 횡단보도를 줄지어 건너는 커다란 사진(어쩌면 길을 건너는 네 사람의 다리 각도가 저리도 같을까 싶은)이 걸려 있었다. 유리 엄마 난주 씨가 오베르주 애비로드의 주인이었다. (11쪽)
제주도 여행을 하면서 간판을 보았을 때, 해외의 별의별 장소가 다 보였다. 소렌토, 알프스산장 등등 지나가면서 해외명소를 찾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런데 그렇게 이름 짓고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궁금해한 적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이렇게 특정 인물이 등장하니 그때 그 장면들과 오버랩되면서 소설 속 이야기에 더 쉽게 몰입할 수 있었다. 등장인물들이 그림처럼 그려질 때, 그리고 그들의 개성 넘치는 모습과 앞으로의 일들이 궁금해질 때 몰입도는 뛰어나다. 런던의 길 이름을 딴 프랑스식 레스토랑이 한국의 산속에 콕 박혀 있는 셈이었는데, 그것이 오베르주 애비로드였다니 그 뒷이야기가 궁금해진다.
평창군 방림면 계촌리 2383. 앞에도 산 뒤에도 산이었다. (12쪽)
결론적으로 말해 애비로드는 '프랑스식 레스토랑'이 아닌 것인데 난주 씨가 그렇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하는 것이다. 애비로드에서는 프랑스 요리나 음식을 맛볼 수 없다. 호박고지, 시래기무침, 돼지고기활활 두루치기, 곰취막뜯어먹은닭찜 같은 것이 있을 뿐이다.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객줏집이라는 이름과는 어딘지 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니 유리 어머니의 바람대로 레스토랑이라 해주자. 레스토랑이라고 해도 아마 애비로드에 한 번이라도 들렀던 사람이라면 아무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애비로드가 유리에겐 집이었다. 아빠는 없었다. (1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