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나에게 안부를 묻다
칼 윌슨 베이커 외 지음 / 마카롱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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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리를 쓴 지 꽤 오래되었다. 그냥 그날 있었던 일을 부담 없이 적는 게 은근 부담되는 거다. 게다가 나중에 내가 읽고 선별해서 버릴지 말지 판가름해야 하는 그 시간과 노력도 귀찮은 거다. 그래서 그냥 흘려보내는 일상 속 상념이 조금 아깝긴 했다.

그런데 질문이 주어지면 거기에 대한 답변을 위주로 작성해나가는 것이라면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나중에 보았을 때 쓸 데 없는 이야기도 아니고, 그냥 소소한 나의 생각과 삶이 담긴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이 책에 관심이 갔다.

그때의 나에게 안부를 묻고 싶었다. 예전의 시간을 떠올리고 추억에 잠기고 싶기도 하고, 잊고 있던 무언가를 붙잡아 글로 담아놓고 싶기도 했다. 그냥 나만의 기억을 나만의 글로 담아두는 거다. 그런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이 책 『그때의 나에게 안부를 묻다』를 집어 들게 되었다.



먼저 꾸준히 이 책에 답변을 적기 위해 질문들을 들여다보았다. '나'를 잊고 지낸 순간들, 열심히는 살았지만 그때의 나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이 세상의 '나'들에게 이 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인식하는 데에는 그다지 긴 시간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커피 한 잔 마실 시간과 여유만 있으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짤막한 질문에 답변할 마음가짐과 마음의 여유만 있으면 족하다.

이 책은 책이지만 다이어리이다. 단순히 하얀 종이만 있는 다이어리라면 무엇을 어떻게 적어야 할지 막막하겠지만, 이 책에서는 안내해 준다. 당신의 이름, 생년월일, 태어난 곳부터 차근차근 당신의 이야기를 적어나가라고 말이다. 이 책은 일종의 가이드 같은 역할을 한다. 완성은 독자가 하는 것이다.

이제는 나를 다시 기억할 시간입니다.

이 책은 인생에서 소중한 시간들을 떠올리며

그 순간 주인공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한 나를

기억하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4쪽, 들어가며 중에서)

이 책은 살짝 건드려주는 역할을 한달까. 무언가 사연이 있는 사람을 대할 때 살짝 질문만 던져주어도 이야기보따리가 술술 나오는 것처럼, 이 책은 나를 살짝 건드려준다. '어린 시절 꿈은 무엇이었나요?' 물으면, 바로 답변이 튀어나오지는 않지만,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리며 곰곰 생각에 잠기다 보면 하나씩 떠오른다.

'어린 시절 가장 좋아했던 책은 무엇인가요?' 나는 사실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어린이였다. 우리 집에 위인전 전집이 있었는데 정말 읽기 싫었다. 하지만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는 전래동화 한 권씩 사서 읽는 재미를 느꼈다. 그때 전집으로 사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한 기억도 얼핏 난다. 책 안 읽지 않냐면서. 아무래도 스스로 읽고 싶게 만들려고 그랬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고 보니 나는 옛날이야기 같은 거 좋아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중간중간에 시 한 편씩 나오는 것도 괜찮다. 쉬어가는 코너처럼 느껴진달까. 마음의 여유를 건네준다. 여유를 찾기도 하고, 힘을 얻기도 하며,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내기로 다짐한다.



휴식의 시간에 꺼내들어 조금씩 채워나가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이 책은 나만의 책이고 나를 위한 책이니 말이다. 가끔은 이렇게 지내다가 소멸되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다. 내가 나는 나인데, 나 같지 않은 삶이랄까.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우리가 위로받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단 한 줄의 질문만으로도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게 한 책이다. 채워나가며 힘을 얻을 수 있는 다이어리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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