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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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장편소설 『아버지에게 갔었어』가 출간되었다. 『엄마를 부탁해』이후 이번에는 '아버지'를 이야기하는 소설이니 한번 읽어보고 싶었다. 『엄마를 부탁해』는 소설을 즐겨읽지 않던 내가 소설 작품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던 무렵이기도 했고, 내가 블로그에 서평 남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던 초창기의 작품이어서 기억하고 있다. '엄마'를 이야기하던 그 소설가가 이번에는 '아버지'에 대한 소설을 쓴다고 하니 궁금한 생각이 들어서 이 책 『아버지에게 갔었어』를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신경숙.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서울 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85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중편 「겨울 우화」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래 소설집 『겨울 우화』 『풍금이 있던 자리』 『오래전 집을 떠날 때』 『딸기밭』 『종소리』 『모르는 여인들』, 장편소설 『깊은 슬픔』 『외딴방』 『기차는 7시에 떠나네』 『바이올렛』 『리진』 『엄마를 부탁해』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짧은 소설집 『J이야기』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등을 펴냈다. 『엄마를 부탁해』가 미국을 비롯해 41개국에 번역 출판된 것을 시작으로 다수의 작품들이 영미권을 중심으로 유럽과 아시아 등에 출판되었다. (책날개 발췌)

-언젠가 내가 아버지에게 당신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하자 아버지는 내가 무엇을 했다고? 했다. 아버지가 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내가 응수하자 아버지는 한숨을 쉬듯 내뱉었다.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살아냈을 뿐이다,고. (책 속에서)

소설가가 자신의 경험과 동떨어져서 작품을 창작해내지는 못할 것이다. 작가가 자라온 공간과 시간은 작품 속에 녹아들어 든든한 배경이 되었을 것이다. 예전에 누군가가 자신이 살던 동네가 신경숙 소설가의 작품에 그대로 나와서 눈에 선하다는 이야기를 한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J시가 바로 그곳, 하지만 소설 속 배경으로 창조된 그 공간이리라. 문득 그 생각을 떠올리며 이 책을 읽어나갔다.

엄마가 병원에 입원하기 위해 여동생을 따라나서자 J시의 오래된 집에는 아버지 홀로 남게 되었다. (10쪽)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하지만 내 눈길을 끈 것은 두 번째 문단의 그 느낌이다.

엄마와 함께 집을 떠나올 때 아버지가 대문 앞에서 울었다는 말을 여동생에게서 듣지 않았다면 엄마가 없는 동안 내가 J시에 가 있어야겠다는 생각까지는 못했을 것이다. 오년이 넘도록 나는 J시에 가지 않고 있었다. 그사이에 엄마와 아버지는 점점 더 늙어갔다. (10쪽)

왜 오년이 넘도록 J시에 가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그렇게 금세 이들의 사연에 익숙한 듯 읽어나간다. 다들 비슷한 듯 다르고, 다른 듯하지만 딱히 다를 것도 없는 가족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 아닌가.



이 책을 읽으며 예전에 『엄마를 부탁해』를 읽을 때의 마음을 떠올린다.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책장에 꽂아두고는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고, 다른 책을 먼저 읽어보겠다고 미루고, 여차여차하여 몇 개월의 시간이 그냥 흘러버린 적이 있다. 가족이 그런 존재인지도 모른다. 한때 같은 공간에서 함께 지내왔어도, 그래서 늘 당연하다는 듯 가깝다고 생각되어도, 그래서 오히려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마찬가지로, 이번에는 '아버지'다. 그래도 이번에는 궁금한 마음에 너무 뒤로 미루지 않고 읽어나갔다. 아버지를 비롯하여 가족, 옛 기억, 사람 살이 등등 영역을 넓혀가며 생각에 잠긴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그렇게 된다. 그림을 그리듯 생생하게 펼쳐내어 그려주는데 그 속에서 삶을 견뎌낸 힘을 본다. 생명력이 느껴지는, 잘 견뎌내고 살아낸 그 마음을 바라보며 뭉클해지는 것은 그 시절 그분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어서일 것이다.

그 눈 내리는 겨울밤, 늦게 귀가한 아버지가 엄마가 내놓은 구운김에 밥을 싸서 빙 둘러앉은 우리들의 입에 차례로 넣어주던 순간을 나는 여러번 글로 썼다. 그때그때마다 비유가 달랐겠지만 우리는 무슨 참나무 숲의 딱따구리 새끼들처럼 아버지가 싸준 김밥을 쏙쏙 받아먹었다고. 그때는 입안에 남아 있는 고소한 김의 여운을 느끼며 다시 내 차례가 돌아오길 기다릴 뿐이었으나 언젠가 인터뷰에서 행복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문득 그 겨울밤이 떠올랐고 아버지가 김에 싸준 밥을 받아먹었을 때 참 행복했다고, 대답했다. 큰오빠가 그 글이 실린 지면을 패널로 만들어 내게도 보내주고 여기에도 가져와 작은방 책장 앞에 세워두었다. 아버지가 읽고는 그때 행복했냐?고 물었다.

-예, 아버지.

아버지는 헛헛하게 웃었다. 내가 행복했다는 그때를 두고 아버지는 무서웠다고 했다. 젊은 날에 당신의 새끼들인 우리가 음식을 먹는 걸 보면 무서웠다고.

-무서우셨어요? 뭐가요?

내가 의아해서 묻자 아버지는 얼굴에서 웃음을 지우고 막막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이 설명이 되냐?

아버지가 말을 거두려 하자 엄마가 옆에서 거들었다.

-너그들이 먹성이 얼매나 좋으냐. 양석 걱정 없이 살게 된 지가 얼마나 되간? 오늘 저녁밥 먹음서 내일 끼니 걱정을 하며 살었는디. 밥 지을라고 광으로 쌀 푸러 갈 때 쌀독 바닥이 보이는 때도 있었는디. 그 가슴 철렁함을 누가 알겄냐. 쌀독은 점점 바닥을 보이는디 먹성 좋은 자식 여섯이 마구 달려들어봐라, 안 무서운가……

아버지가 삼킨 말을 대신하는 동안 무거워진 생각을 털어내듯 엄마는 곧 생기를 되찾곤 했다.

-무섭기만 했시믄 어찌 매일을 살겄냐. 무섭기도 하고 살어갈 힘이 되기도 허고 …

(196쪽)

가족이라는 것이 그런가 보다. 부모의 마음이 그런 건 가보다. 이 소설을 읽으며 '무섭기도 하고 살아갈 힘이 되기도 하고…'라는 말에 담긴 갖가지 의미를 하나씩 건져서 꺼내보는 시간을 갖는다.

이 소설에서는 우리가 잘 모르는 시골살이를 눈앞에 상세하게 펼쳐내고 있다. 그래서 읽다 보면 이미 다 알고 있고 경험한 이야기인 듯, 즉 남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생생한 느낌이 들어서 나 또한 동참하는 마음으로 읽어나간다. 영화 속 장면처럼 선명하게 보여주며, 가족들의 심정까지 상세하게 그려냈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교육, 치열한 삶이 너무도 상세하게 기록처럼 담겨있는 소설이다. 한동안 이 소설의 여운이 남아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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