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린 왕자 - 갱상도 (Gyeongsang-do Dialect) 이팝 어린 왕자 시리즈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저자, 최현애 역자 / 이팝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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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애린 왕자'다. '엥?'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어린 왕자 아니고?' 그렇다. 이 책은 '애린 왕자'다. 어린 왕자의 경상도 버전이다. '애린 왕자'라는 점에서 이 책의 매력이 뿜뿜 돋는다. 나 또한 알라딘 스누피 북엔드에 눈이 멀어 더 살 책 없나 살펴보다가 발견했다. 억수로 참신하데이.

사실 '어린 왕자'는 예전에 다른 나라에서 여행하다가 서점에서 발견하면 주르륵 넘겨보곤 했다. 나라마다 번역된 아는 이야기이니 말이다. 그런데 막상 우리나라의 사투리 버전은 처음이다. 왜 이제야 나왔나 하는 생각도 들고, 지금이라도 나와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번에 갱상도 버전을 시작으로 전국 팔도의 언어로 어린 왕자를 만나보면 좋겠다. 이번에 그 시작으로 『애린 왕자』를 읽어보는 시간을 갖는다.



갱상도 말은 억양도 시고, 독특한 단어도 만코, 정구지가 문지 아나, 쫌- 요런 한마디면 거 머 다 통하는 거 알제. 애교 없고 무뚝뚝해도 뚝심있다 아이가. 뒤끝 없이 솔직하고 머 좀 우스븐기 매력이제. KTX타면 포항서 서울까지 두 시간 반에 끊는 시대에 먼 사투리가 의미있나 싶다가도 실컷 사투리 씨다가 어디서 전화 오면 서울말로 확바까가 말하는 기 현실아이가. 와, 좀 부끄럽나, 촌스럽게 빌까봐 걱정이가. 가가 가가를 표준어로 씨모 그 맛이 사나 함 물아보고 싶노. <애린 왕자>는 골목 띠 댕기믄서 흙 같이 파묵던 시절 그리버가 같이 놀던 얼라들 기억할라꼬 내가 다시 써봤다. (갱상도 사투리각색 최현애가 친구들자테 중에서)



내사 마 가가 철새를 따라 지 별에서 나온기라 생각칸다. (애린 왕자 시작 중에서)

이 책을 읽다 보면 내 머릿속에서 억양이 막 떠오르며 중국어 성조처럼 뛰어다닌다. 물론 그게 맞는지 틀린 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 참신하고 재미있다. 왜 여태 우리나라 각 지방의 언어로 만든 것이 없었을까.

이 책에는 어린 왕자, 아니 '애린 왕자'가 갱상도 버전으로 담겨 있다. 포항에서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짐작하겠지만 따로 해석본은 없다. 그래도 읽으면 다 의미가 다가온다. 신기하게도 말이다.

나는 보아뱀이라 카능 기 정글에서 젤로 무서븐 기라꼬 생각했데이. 여섯 살 땐가 한 번은 <체험담>이라 카는 책을 읽았는데 보아뱀이 지보다 더 큰 짐승을 꿈쩍기리지도 모하게 또아리를 틀어가 꽉 잡아 놓고 입을 쩍 벌리고 있는 그림을 봤다 아이가. 조 우에 그림 있제. 저거데이. (9쪽)



보아뱀이 코끼리 먹는 그림 그린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저기…… 양 한 마리만 기레도."라며 양을 그려달라는 우리들의 '애린' 왕자가 드디어 나타났다. 그러면서 이야기는 진행된다. 처음에는 호기심에 이 책을 읽어보기로 했는데, 살짝 외국어처럼 낯설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다 해석은 되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어린 왕자를 다시 읽는데 이번엔 경상도버전이라는 점이 색다르게 다가왔다.



아무래도 어린 왕자를 읽으며 마음에 남는 글귀를 다 남기는 것은 스포일러가 될 듯하다. 그래도 이 문장 하나만 남겨본다. 이건 책 뒤표지에도 있는 말이니 부담을 덜고 써본다. 경상도에서는 여우를 '미구'라고 하나보다.

"잘 가그래이." 미구가 말해따. "내 비밀은 이기다. 아주 간단테이. 맘으로 바야 잘 빈다카는 거. 중요한 기는 눈에 비지 않는다카이."

"중요한 기는 눈에 비지 않는다쿠네." 애린 왕자는 기억할라꼬 되풀이해따.

"니 장미를 그마이 소중하게 만든 기는 니가 니 장미한테 들인 시간 때문아이가."

"내 장미한테 들인 시간 때문이데이." 애린 왕자는 기억할라꼬 되풀이해따.

"사람들은 이 진실을 이자뿟제." 미구가 말해떼이. "그니까 니는 잊으모 안된데이. 니가 질들인 거에 니는 끝까지 책임이 있으이. 니는 니 장미한테 책임이 있는기라……"

"나는 내 장미한테 책임이 있다카이……" 애린 왕자는 기억할라꼬 되풀이해따. (74쪽)

주기적으로 어린 왕자를 읽고 있는데, 이번에 경상도 버전으로 읽어보니 특별했다. 표준어를 쓰며 살아온 내가 읽어도 해석 없이 이해할 수 있고, 아마 경상도 말을 쓰는 사람이라면 더 재미있게 읽으리라 생각된다.

사실 요즘 지역언어가 사라지고 있지 않은가. 제주도만 해도 연세 좀 있으신 어르신들이 하는 이야기는 정말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다. 그런 언어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시작으로 전국 각지의 언어로 어린 왕자를 만들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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