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백년식당에서 배운 것들 - 세월과 내공이 빚은 오리진의 힘
박찬일 지음, 노중훈 사진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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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띠지에 있는 글이 눈에 들어온다. '대를 이어 탕이 끓고 국자질을 멈추지 않는 집'이라는 말을 보며 생각에 잠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자식들 중에서 부모의 뜻을 이어받아 계속 같은 일을 해나간다는 것이 요즘 세상에서는 쉽게 찾을 수 없는 일이라 짐작된다. 그런데 그 자체가 무언가 교훈적일 듯하고 뻔한 느낌을 주어서 솔직히 이 책을 펼쳐드는 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하지만 이 책의 프롤로그를 읽자마자 내 마음이 흔들렸다. '아, 그렇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말이다.

우리나라는 식당 수가 많기로 세계에서 일등을 다툰다. 그 때문인지 '식당이나 해볼까' 하는 말을 흔하게 한다. '~이나'라는 말에는 식당업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함축되어 있다. 음식 솜씨가 좀 있으면 주위에서 식당 해보라는 말을 농반진반으로 한다. 또 실제로 그렇게 열기도 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을 닫는다. 그러고는 음식은 맛있는데 경영에 어두웠다고 진단한다.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안 되는 식당은 음식이 맛없기 때문이다. 경영 못한 것은 창피한 일이 아니지만, 음식 맛이 없었다는 평가는 죽어도 싫어한다. 불행히도 그것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맛있는 식당은 안 망한다. 욕쟁이 할머니 식당이 살아남는 이유다. 손님에게 욕하고 불친절해도 맛있으면 잘 된다. 물론 나는 욕쟁이 할머니 식당은 좋아하지 않는다. 맛있어서 오래된 식당, 그것을 우리는 노포라고 부른다. 그야말로 세계에서 식당 제일 많고 그만큼 제일 잘 망하고 그만큼 맛없는 식당이 많은 대한민국에서 수십 년을 버틴 식당이다. 그 세월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14-15쪽)

일단 프롤로그에서 내 생각을 바꾸어주었다. 그러니까 '노포'하면 오래된 식당, 즉 맛있는 집이라도 주방이 좀 찌들어 있고 위생은 보장 못 하는 그런 느낌의 점포를 떠올렸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말한다. '대개의 노포가 깨끗한 편인데, 특별히 몇 곳은 그중에서도 각별하다(17쪽)'라고 말이다. 하긴 내가 맛집을 일부러 찾아다니는 스타일은 아닌 데다가 방송 타는 곳들이 다 맛집은 아니라는 선입견도 있었고, 음식을 입에 넣자마자 맛 표현을 하는 사람들을 믿지 못한 부분도 있었으니, 그동안 너무나 몰랐다는 생각이 든다. 박찬일 주방장의 소신을 담은 노포 탐사 프로젝트 《내가 백년식당에서 배운 것들》을 읽으며 그동안의 생각을 바꿔보는 시간을 갖는다.



이 책의 저자는 박찬일. 누군가는 '글 쓰는 셰프'라고 하지만 본인은 '주방장'이라는 말을 가장 아낀다. '노포(老鋪)'라는 단어가 생소하던 시절부터 오래된 식당을 찾아다니며 주인장들의 생생한 증언과 장사 철학을 글로 써왔다. 세계에서 인구당 식당 수가 제일 많고, 그만큼 식당이 쉬이 폐업하는 나라, 대한민국. 그럼에도 격동의 현대사를 고스란히 버티고 이겨낸 노포의 민중사적 가치를 발견하고 기록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아무도 하지 않으면 우리가 하자'며 후배 노중훈과 의기투합해 전국의 '백년식당'에 근접한 노포들을 찾아 취재하기로 했다. 그렇게 2012년 '노포 탐사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전국의 '밥장사의 신'들을 찾아 발로 뛰며 취재한 지 어언 10년 가까이 흘렀다. 그들의 숭고한 노동과 벅찬 인심과 변치 않는 맛을 정리해 《백년식당》(2014년), 《노포의 장사법》(2018) 두 권의 책을 펴냈다. (책날개 중에서)

이 책은 저자가 2012년부터 취재해 2014년 출간한 《백년식당》의 원고를 토대로, 네 곳은 제하고 여섯 곳의 노포를 새로이 취재하여 재단장한 책입니다. (일러두기 중에서)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된다. 1부 '단순한 원칙을 변함없이 지킨다: 오래된 식당에서 배우는 업의 본질', 2부 '결국 사람의 일, 신뢰가 기본이다: 오래된 식당을 지탱하는 관계의 힘', 3부 '맛에 대한 집념이 최고를 만든다: 오래된 식당을 만드는 궁극의 솜씨'로 나뉜다. 욕심은 버리고 변함없는 맛을 내다, 최고의 레시피는 몸으로 체득하는 것, 주인은 그 음식을 가장 많이 먹어본 사람이어야 한다, 50년 전 시작된 고객 중심 영업, 주인의 성품이 고스란히 업력으로 이어지다, 수만 번의 국자질에 주방장의 명예를 걸다, 좋은 음식은 가장 본질적인 맛을 낸다, 40년 넘은 육수가 내는 궁극의 맛, 타국에서도 명맥을 잃지 않은 우리식 냉면 등의 글이 담겨 있다.



이 책을 읽다 보니 박찬일 셰프의 노포 탐사 프로젝트의 가치가 더욱 대단하게 느껴진다. 오랜 세월, 그러니까 사람들이 "노포가 뭐예요?"라고 질문할 정도로 생소하게 생각할 때부터, 지금껏 전국 곳곳의 노포를 찾아 발로 뛰고 취재하며 우직하게 진행해온 일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 더욱 대단하다. 이 기록들은 노포의 가치를 알리고 역사로 기록되는 의미 있는 작업이라 생각된다.

게다가 박찬일 셰프는 요리를 업으로 하는 사람이면서 글재주까지 있어서 그의 이전 책도 그렇고 이 책도 그렇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어나갔다. 일단 책을 펼쳐들면 알게 될 것이다. 전국 각지에 자리 잡은 노포를 잘 발굴해서 보여준다. 그곳의 특징, 음식에 관한 지식, 역사적인 기록, 개인적인 고찰 등등 그 모든 것이 일단 박찬일 셰프를 통해 코스요리처럼 적절한 순간에 풀어져 나온다.



노포의 기준을 따로 정해놓지 않았으나 우리 실정에서 대략 50년가량이면 그렇게 부를 수 있겠다. 세월이 흐르면서 새로운 노포들이 속속 생겨날 것이다. 그런 집들을 애정 어린 마음으로 응원해주기 바란다. 또한 이미 세월을 쌓은 노포들이 진짜 '백년식당'이 되는 날까지 지지를 보내주기 바란다. (344쪽)

이 책의 에필로그를 보니 노포를 취재하고 기록물로 남기는 데에 어려움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꿋꿋하게 취재하고 글을 적어나갔고 이렇게 결과물이 알려지고 사람들의 노포에 대한 인식도 개선되면 노포의 역사는 달라지리라 생각된다. 조용히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니라, 전통을 가치 있게 생각하며 역사를 만들어나가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으리라. 이 책을 읽고 나니 세월을 쌓아가는 노포들을 응원하고 싶어진다. 또한 노포들에 대한 기록이 계속될 수 있도록 지지의 마음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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