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토 에디터스 컬렉션 10
장 폴 사르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문예출판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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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의 모든 사유는《구토》에서 흘러나왔고,《구토》로 흘러든다"

20세기 프랑스의 대표적 지성, 사르트르 사상의 출발점

(책 뒤표지 중에서)

'지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 좋겠다. 사실 장 폴 사르트르의 《구토》는 예전에 읽다가 관둔 책이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후였나. 실존주의 철학을 깊이 사유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집어 들었다. 그때의 나는 진지했지만 이 책이 와닿지 않았다. 《구토》는 결국 바쁜 일상의 뒤로 미루고 미뤄지다가 잊게 되었지만 늘 숙제처럼 남아있었다. 지금의 나에게는 다르게 다가오리라 생각되면서 도대체 어떤 내용인지 궁금한 데다가 지금이야말로 적절한 때라는 생각이 들어 이 책을 펼쳐들었다.



장 폴 사르트르(1905~1980). 1938년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구토》를 출간해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작가로서 자리매김했다. 사르트르는 2차대전 전후 시대의 대표적인 사상가로 평가받으며 알베르 카뮈와 더불어 참여하는 지식인의 상징이 된다. 1964년 자서전 《말》을 출간하고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나 수상을 거부했다. (책날개 발췌)

이 소설은 시작이 독특하다. '편집자의 일러두기'로 시작된다. 이 노트들은 앙투안 로캉탱의 서류 가운데에서 발견되었지만 전혀 손대지 않고 발행한다는 것이다. 거기에서부터 누군가의 일기를 있는 그대로 읽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이미 소설 속 세계로 들어가는 시간이 되었다.



물체들은 살아 있지 않기 때문에 다른 것을 만질 수 없어야 마땅하다. 우리는 그것들을 사용하고, 사용한 후에는 제자리에 두고, 그것들 가운데에서 살아간다. 그것들은 유용한 것일 뿐, 그 이상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 내게는 다르다. 그것들은 나를 만지는데, 이게 견딜 수 없이 느껴진다. 난 마치 살아 있는 짐승들과 접촉하듯 그것들과 접촉하는 것이 두렵다.

이제야 알겠다. 내가 언젠가 바닷가에서 그 돌멩이를 들고 있었을 때의 느낌이 분명히 생각난다. 그것은 일종의 달착지근한 욕지기였다. 얼마나 불쾌한 느낌이었던가! 그 느낌은 분명히 돌멩이로부터 왔다. 돌멩이에서 내 손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그래, 그거였다. 바로 그거였다. 손안에서 느껴지는 일종의 구토증이었다. (34쪽)

지금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예전에는 다가오지 못했던 느낌을 전달받는다. 지금껏 살면서 나는 내가 아직 어리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초등학생 때도, 고등학생 때도, 그 이후에 어느 순간에도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한다. 그때의 나는 아마 이 글을 읽으며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면서 덮어버렸겠구나. 책과의 인연은 어느 순간에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지금 읽으며 유치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문학작품은 감성이 지금보다는 풍부했던 그 시절에 읽었어야 했고, 그 시절에 감당하지 못했던 작품은 좀 더 묵혀 두어야 했다. 이 작품처럼 지금 만나는 게 훨씬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로캉탱은 구토를 인식하고 체험하며 그 영역이 확장된다. 이렇게까지 생각을 이어간다는 것이 언제나 이해되지는 않는다. 어쩌면 지금, 새벽 시간에 어떤 방해도 받지 않으며 존재에 대해 사색하는 시간에 이해의 문이 열리는지도 모르겠다.

조금 전에 나는 공원에 있었다. 마로니에 나무의 뿌리가 내가 앉은 벤치 바로 아래의 땅에 박혀들고 있었다. 나는 이것이 뿌리라는 사실이 더 이상 생각나지 않았다. 말들은 사라져버렸고, 그것들과 함께 사물들의 의미와 사물들의 사용법, 또 사물들의 표면에 인간이 그어놓은 희미한 표지들도 사라져버렸다. 나는 너무나 생경하고 공포스러운 이 검고 울룩불룩한 덩어리 앞에 머리를 숙이고 약간 구부정하게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퍼뜩, 모든 게 분명해진 것이다.

나는 숨이 멎었다. 지난 며칠 동안의 일들이 있기 전에는, 나는 '존재한다'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몰랐다. 난 다른 사람들 같았다. 봄옷을 입고 해변을 산책하는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나는 그들처럼 "바다는 녹색이야"라고 말했다. 또 "저 위에 있는 하얀 점은 갈매기야"라고 말했지만, 그것이 존재함을, 갈매기는 '존재하는 갈매기'라는 사실을 느끼지 못했으니, 평소에 존재는 숨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여기에 있다. 우리 주위에, 우리 안에 있고, 그것은 바로 우리다. 우리는 무슨 말을 하든 항상 그것에 대해 얘기하지만, 그것에 접촉하지는 못한다. 나는 그것에 대해 생각한다고 믿었지만, 장담하건대 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고, 내 머릿속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머릿속에 딱 하나가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이다'라는 단어였다. (296쪽)



이 책의 마지막에는 변광배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의 작품 해설이 수록되어 있다. 사르트르와 그의 작품을 여러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특히 《구토》에 제시된 인간 삶의 조건에 대한 성찰은 오늘날에도 유의미한 보편성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시간이 갈수록 더욱더 빛나는 작품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이런저런 의미를 다 제쳐두고라도 사르트르 사상의 출발점이라는 점만으로도 이 책을 한번 읽어보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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