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이 쓰고 바다가 그려주다 - 홀로 먼 길을 가는 이에게 보내는 편지
함민복 지음 / 시공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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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섬이 쓰고 바다가 그려주다』는 시인 함민복의 에세이다. 띠지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 '고독과 가난이 길어 올려준 향기로운 삶의 언어'라고 말이다. 함민복의 글은 그렇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지긋지긋한 가난과 우울에 힘이 빠지는 느낌이 든다. 그의 글은 수더분하고 텁텁한 막걸리 맛이 난다. 그가 들려주는 삶의 민낯이 짐덩이처럼 느껴지다가도, 문득 툭툭 던지는 표현을 건져내는 느낌이 좋아서 '함민복'이라는 이름만으로도 그의 책에 기웃거리게 된다. '김포평야에 아파트들이 잘 자라고 있다'라든가 '식물은 살아온 몸뚱이가 가본 길이다' 같은 표현 말이다. 이 책에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해하며 함민복의 글을 읽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 책의 저자는 함민복. 자본주의와 물질로부터 소외된 인간 존재의 문제를 소박한 문체와 감성적인 시어로 고발하고 환기시켜왔다. 현대인의 삶에 침잠한 욕망과 부조리에 날선 비판을 가하기보다는 낡은 것들을 가까이하는 투박한 일상과 자연의 내밀한 가르침을 보여줌으로써 응수한다. 느리고 가난하게 살며 시로 세상을 그려낸다. (책날개 발췌)

이 책은 총 다섯 장으로 구성된다. 저자의 말 '내 마음을 떠난 마음들 그, 그리운 섬들'을 시작으로, 하나 '바람을 만나니 파도가 더 높아진다', 둘 '추억을 데리고 눈이 내렸다', 셋 '통증도 희망이다', 넷 '읽던 책을 접고 집을 나선다', 다섯 '물컹물컹한 말씀'으로 이어진다. 흔들린다, 텃밭, 늦가을 바닷가 마을의 하루, 달이 쓴 '물때 달력' 벽에 걸고, 섬에서 보내는 편지, 그 샘물줄기는 지금도 솟고 싶을까?, 추억 속의 라디오, 긍정적인 밥, 사람들이 내게 준 희망, 벚꽃이 피면 마음도 따라 핀다, 봄비, 술자리에서의 충고, 폭력 냄새나는 말들, 고욤나무 아래서, 내가 만난 마을 혹은 도시에 관한 기록들 등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아, 먹고사는 게 무엇일까. 우리는 어느 정도의 재산을 소유해야 적당한 것일까. 너무 많이 풀소유하는 분들도 비난받지만, 너무 가난을 강조하는 부분도 마음이 불편하다. 그러면서도 그 마음이 이해가 간다. 이 책에 실린 이런 말들은 꾸밈이 없어서 오히려 와닿지만 아, 삶이란 무엇인지, 뭔가 생각이 많아진다.

1998년 문화관광부에서 주는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받고 문학 담당 기자와 술을 먹었다. IMF 시대라 상금이 없어졌고 하여 동으로 된 조각품을 부상으로 주었는데, "쌀로 한 서 말 주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라고 내가 중얼거린 말이 기사화되었다. 그 기사를 보고 쌀 세 가마니 살 수 있는 돈을 보내주셨던 신농백초 한의원 님들 덕분에 보일러에 기름 두 드럼 넣고 한겨울을 따뜻하게 보냈던 일이 떠오른다. (101쪽)

솔직히 말하면 함민복 시인의 글은 에세이보다는 시가 좋다. 하지만 이 책에는 그런 느낌이 있다. 이 안에 담겨 있는 글 속에서 발굴해내는 느낌이랄까. 시 속의 문장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것들을 접하는 느낌이다. 그냥 이 문장 하나만, 또는 이 시 한 편만 툭 내미는 것보다는 이 안에서 건져내는 것이 낚시하는 손맛처럼 느껴진다.



뱀은 내가 수없이 제 집 위를 밟고 지나도 나를 물지 않았었는데 나는 뱀을 보자마자 공격했으니……. 올여름 내가 죽인 뱀이 내게 시 한 편 써주었습니다. (117쪽)

소스라치다

함민복

뱀을 볼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란다고

말하는 사람들

사람들을 볼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랐을

뱀, 바위, 나무, 하늘

지상 모든

생명들

지난 여름, 뱀을 보고 엄청 놀라서 소리를 있는 대로 지르며 소스라치게 놀랐는데, 생각해 보니 뱀도 엄청 놀랐을 것이다. 조용히 혼자 햇볕이나 쬐며 놀려고 했는데 나에게 딱 걸려서 급하게 도망가느라 애썼겠다. 문득 그때 그 뱀이 생각난다. 그래도 나는 그 뱀을 죽이지는 않았고, 도망가도록 묵인해주었다. 뭐 자랑이라고 쓰는 글은 아니지만, 하여간 그랬다.



전원마을, 푸른마을, 강변마을…… 아파트 단지 이름들은 대부분 예쁘다. 그런데 그 이름들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이름들이 얼마나 폭력적인가를 알 수 있다. 전원마을은 전원을, 푸른마을은 푸름을, 강변마을은 강변의 풍경을 해치고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해안도로를 지나며 만나는 간판들도 폭력적이기는 매한가지다. 노을횟집은 노을을, 갯벌펜션은 갯벌을, 등대편의점은 등대를 대개 가리고 있다. 풍경에 폭력을 가하면서 그 폭력성을 당당히 내세우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191쪽)

섬과 바다, 거기에는 사람이 있다. 사람은 풍경에 폭력을 가하면서 살아가기도 한다는 말에 문득 생각이 많아진다. 이런 말들을 건져내는 시간이 있어서 함민복의 책은 읽을 수밖에 없다. 그냥 읽게 된다. 억지로 세상은 아름답다며 밝은 면만 보여주려고 애쓰는 것보다는 약간 구질구질하고 외면하고 싶더라도 불편함마저도 삶이라는 생각을 하는 편이 때로는 더 와닿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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