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우지 않아도 삶에 스며드는 축복
정애리 지음 / 놀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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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정애리의 에세이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어보고 싶었다. 무언가 마음을 사르르 어루만져 주는 사랑의 힘을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세상은 여전히 따뜻하고, 포근하고, 밝은 면을 볼 수 있는 곳이라고 느낄 수 있을 듯했다. 배우 정애리는 가끔은 악역도 척척해내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일은 일이니 배역에도 충실한 것일 테다. 연기를 잘 하니 그 모습도 자연스럽다. 하지만 인간 정애리를 떠올리면 '위로와 희망, 나눔과 봉사'가 먼저 떠오르니, 이 책 『채우지 않아도 삶에 스며드는 축복』을 읽으며 어떤 메시지를 전달해 줄지 들어보고 싶었다.



이 책의 저자는 정애리. 삶의 고비를 여러 번 넘으면서도 여전히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 위로와 희망, 나눔과 봉사가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린 배우. (책날개 발췌)

몇 년 전에 큰 수술을 했습니다. 배에 수술 자국이 생겼지요. 그때는 회복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감사해 나의 흉터가 누군가에게 힘과 용기를 준다면 얼마든지 보이겠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 조금씩 옅어지는 흉터처럼 그 마음도 옅어지는 걸 느낍니다. 사람 마음이란 얼마나 간사한지요. 어쩌면 이 책은 나의 흉터를 내보이는 작업입니다. 이제는 흉도 가진 여자, 그가 전보단 조금은 더 진실되고 싶어진 시선을 가지게 됐기를 그저 바랍니다. (12쪽)

이 책은 총 5장으로 구성된다. '다시, 그대에게 쓰는 편지'를 시작으로, 1장 '매일, 시를 쓰는 마음으로', 2장 '깊이를 더해가는 삶', 3장 '실패로 쌓은 지혜', 4장 '다시 새기는 희망', 5장 '비워야 내가 되는 나눔'으로 이어지며, '긴 편지의 끝에서'로 마무리된다. 끝내 살아냈다는 흔적, 삶을 되감을 수 있다면, 일상이라는 작품, 이 순간을 나눕니다, 잃어버린 골목길의 추억, 날마다 배움, 사는 날이 다 공부, 기다려주고 믿어주기, 빈 의자가 주는 위로, 개망초의 속사정, 어디서든 빛나는 벚꽃처럼, 비바람이 건넨 선물, 온 우주를 담아 너에게, 위로의 번호, 그러면 안 되는 거였습니다 등의 글이 담겨 있다.



이 책에는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글을 써 내려간 조각들이 담겨 있다. 매일 시를 쓰는 마음으로 담아낸 것이라고 한다. 어찌 보면 무언가 대단한 소재로 글을 써야 하고, 사진도 마찬가지로 거창한 무언가를 담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았나 보다. 하지만 이 책을 보니 역시 중요한 것은 소재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듯한 소소한 소재를 사진에 담고 거기에 대한 글을 썼는데, 이 글은 정애리만의 시선으로 독자에게 메시지를 전달해 준다.



빈 의자.

내가 꼭 저기 앉지 않아도

빈 의자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벌써 안심이 됩니다.

……(중략)……

누구나 다 가야 하는 길.

이왕이면 너무 척지고 가지는 말아야겠습니다.

아등바등 아웅다웅하지 말고

미소 한 번 날려주며 가면 어떨까요.

여행을 가면 마음이 들뜨기도 하지만

왠지 좀 넉넉해지기도 하잖아요.

뾰족함도 덜 하고요.

보기만 해도 안심이 되는 의자.

그런 빈 의자 하나쯤은 마련하고 싶습니다.

(146~147쪽, 빈 의자가 주는 위로 중에서)

문득 읽어나가다가 내 마음에 들어오는 글귀를 발견한다. 때로는 아무렇지도 않게 의미 없이 바라보던 무언가에 온기를 불어넣고 뜻을 건져낸다. 사진만 보아서는 내가 읽어낼 수 없는 사소함을 글을 읽고 나서야 '아!' 깨닫는다. 이 책을 읽으며 무미건조한 내 감성을 채우는 듯한 시간을 보낸다.



스러져가는 시간들이 서럽기도 하겠지요.

아직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도 찬란했는데….

하지만 그것이 인생입니다.

때가 되면 내려오는 것.

한없이 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내가 더 이상 푸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받아들이는 일.

그것이 붉게 물들어가는 나의 잎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이겠다 싶습니다.

나를 반짝이게 해주는.

이왕 단풍으로 사는 것, 절정의 단풍으로 살고 싶습니다.

지금이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라고

그렇게 다독이고 토닥이면서요.

붉게 붉게 살다가

가볍게 내려앉아

또 새로운 밑거름을 꿈꾸면서요.

(194쪽, 단풍의 시간 중에서)



잔잔하고 부드럽다가 울컥하다가, 또 그 감정을 어루만져 주면서 일상을 풀어나간다. 이런 느낌 좋다. 놓치고 있던 무언가를 건네주는 듯한 느낌, 그것이 마음을 충만하게 채워주는 듯한 느낌말이다. 이 책의 뒤표지에 보면 '사랑의 힘을 믿는 사람, 정애리가 온 마음을 다해 눌러 쓴 일상의 기적들'이라는 글이 있다. 그 말이 맞는 듯하다. 어쩌면 우리가 인식조차 하지 못했던 것도 이렇게 일러주니 일상의 기적이라고 알 수 있는 것이다. 일상에 아무렇지도 않게 존재하던 것들을 하나씩 꺼내들어 의미를 찾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이끌어주는 글이니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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