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카르두 헤이스가 죽은 해
주제 사라마구 지음, 김승욱 옮김 / 해냄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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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주제 사라마구의 장편소설 『히카르두 헤이스가 죽은 해』이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또 하나의 대표작이라는 데에서 호기심이 더했다. 그의 초기작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 소설은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이라는 점 말고는 내가 선택하기 힘든 낯선 소설이다. 1930년대 포르투갈을 배경으로 했다는 것도, 마흔여덟 살 포르투갈 태생 의사가 주인공이라는 것도, 사실 알든 모르든 나에게는 생소하게 다가왔다.

언제나 그렇듯 소설을 읽을 때에는 최소한의 정보가 최대의 효과를 느끼게 해준다.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이라는 정도만 알고 이 책 『히카르두 헤이스가 죽은 해』를 읽어나가기로 했다. 그리고 '인디펜던트 외국소설상 수상작'이라는 것 하나 더 알고 소설 속 세상을 들여다보기로 한다.



이 책의 저자는 주제 사라마구. 1922년 포르투갈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용접공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947년 『죄악의 땅』을 발표하면서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 후 19년간 단 한 편의 소설도 쓰지 않고 공산당 활동에만 전념하다가, 1968년 시집 『가능한 시』를 펴낸 후에야 문단의 주목을 받는다. 사라마구 문학의 전성기를 연 작품은 1982년작 『수도원의 비망록』으로, 그는 이 작품으로 유럽 최고의 작가로 떠올랐으며 1998년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2010년 여든일곱의 나이로 타계했다. (책날개 발췌)



여기서 바다가 끝나고 땅이 시작된다. 무채색 도시에 비가 내린다. 강물은 진흙탕으로 더러워지고, 강둑에는 물이 넘친다. 검은 배 하일랜드 브리게이드호가 어두운 강을 올라와 알칸타라 부두에 닻을 내리기 직전이다. (7쪽)

이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지금 밖에는 때마침 비가 내리고 있다. 소설을 읽는 배경을 잘 깔아준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만큼은 음산한 분위기에 비까지 내려주니 이 소설을 읽기에 제격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제법 두께감이 있지만 이 소설을 읽는다면 고민은 뒤로하고 일단 첫 문장을 읽기 시작하면 된다. 그리고 그다음, 그다음, 읽어나가다 보면, 어느새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영화를 보듯이 장면이 펼쳐진다. 비 오는 날에 배에서 사람들이 내리며 흑백영화 필름이 돌아간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머뭇거리는 대답으로 "호텔로 갑시다"라며 십육 년 만에 포르투갈에 돌아온 주인공을 클로즈업한다. 이름, 히카르두 헤이스, 나이, 마흔여덟 살, 출생지, 포르투, 결혼 여부, 독신, 직업, 의사, 가장 최근의 거주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그렇게 '히카르두 헤이스'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며, 그리고 이어지는 세세한 심리묘사에 집중하며, 이 소설을 읽어나간다.



나이 마흔여덟 살, 포르투갈 태생, 독신의 의사.

히카르두 헤이스는 브라질에서 16년 동안 정치적 망명자로 살다가 포르투갈이 전쟁으로 나아가고 있던 시기인 1935년 12월 말 고향으로 돌아온다. 최악의 시기를 겪고 있는 포르투갈로 돌아와 몇 달간 묵게 된 리스본의 브라간사 호텔에서 히카르두 헤이스는 페소아의 유령과 함께 다양한 주제의 대화를 나누며 기묘한 우정을 다진다. (책 뒤표지 중에서)

이 정도의 내용은 알고 시작하는 것이 좋다. 어쩌면 그 이상을 알고 시작하는 편이 낫겠다. 이 소설을 읽어나가다가 갑자기 난데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출판사 책소개를 찾아보았다. 나는 이 정보를 알고 나서야 읽는 속도가 빨라졌고 더 생생하게 다가왔다.

『히카르두 헤이스가 죽은 해』는 시를 쓰는 의사인 히카르두 헤이스(페르난두 페소아의 또 다른 이름 중 하나로, 이는 소설의 주요 모티프가 된다)가 페소아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듣고, 이민을 떠났던 브라질에서 고향인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16년 만에 돌아와 9개월간 겪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소설 속에는 아마도 죽기 위해 고향에 돌아온 염세주의자 히카르두 헤이스, 세계대전이라는 최악의 시기를 겪기 직전의 노후한 유럽, 이미 죽은 사람이지만 헤이스를 종종 찾아와 함께 대화를 나누는 포르투갈의 위대한 작가 페르난두 페소아의 세 층위가 겹쳐져 있다. 작가는 분신인 헤이스가 창조자인 페소아보다 9개월을 더 살면서 무덤 속의 페소아를 불러내 새로이 우정을 다진다는 내용을 통해 이 둘의 관계를 독창적으로 활용한다. (출판사 책소개)

주제 사라마구의 다른 소설과 마찬가지로 이 소설도 어두침침한 분위기에 지독하게도 상세한 묘사에 기분이 가라앉는다. 그런데 그 글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놓치지 않고 따라가게 되는 묘한 힘이 있다.



"사라마구가 왜 위대한 소설가인지를 보여준다. 세련된 관조적 지성, 위대한 철학적 무게를 지닌 극적인 작품이다."

_《인디펜던트》

뭐지, 뭐지, 어, 헉, … 소설을 이렇게도 쓰는구나, 처음에는 익숙한 소설이 아니어서 낯설었지만, 다 읽고 보니 오히려 독자가 예측할 수 없는 글을 써주어 이 소설을 읽은 보람이 느껴진다. '사라마구가 왜 위대한 소설가인지를 보여준다'라는 말에 동의한다. 분명 같은 말을 읽었지만 다시 읽어보니 전혀 다른 의미로 쿵 다가오는 그런 소설이다. 독특하고 묘한 여운을 준다. '주제 사라마구'의 작품이라면 『눈먼 자들의 도시』가 먼저이지만, 이 소설 『히카르두 헤이스가 죽은 해』도 그의 초기작으로서 무게감 있는 작품이기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읽어보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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