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1922년생으로 이 소설이 세상에 나온 당시가 2007년이다. 그 당시 이미 여든이 훨씬 넘었다지만 그런 느낌이 소설 속에서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게다가 이 소설에는 대화에 당연시되는 따옴표조차 없다. 글자 자체로는 가독성이 뛰어나지 않은데, 내용은 놓치기 싫어서 집중하게 된다. 그러면서 인간 본성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듯, 차근히 바라보며 읽어나간다.
선거인 100명당 83명이 백지를 냈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백지 몇 장 나온 것이라고 할까, 하나의 현상인 것인가. 투표를 무효로 하고 재선거를 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또? 이 책을 읽는 독자도 지금껏 없었던 그 도시의 백지 사건에 자신의 생각을 더해가며 읽어나간다. 특히 소설에서 보여주는 이야기에 '그럴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면서 말이다.
며칠이 지나면서 백지라는 말이 갑자기 외설적이거나 무례한 말이라도 된 것처럼 입에 오르지 않게 되었다. 처음에는 감지하기 힘든 정도였지만 곧 누구나 느낄 정도가 되었다. 사람들은 온갖 종류의 방법으로 그 말을 피해 가거나 에둘러갔다. 예를 들어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백지는 빈 종이라고 불렀고, 얼굴이 백지장 같다는 표현은 그냥 얼굴이 창백하다고 표현해버렸으며, 액수가 적히지 않은 수표는 백지수표가 아니라 자유수표라고 불렀다. 학생들은 자신이 어떤 문제에 대해 백지상태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냥 그 주제에 대해 모른다고 말해버렸다. 가장 흥미로운 사실은 여러 세대에 걸쳐, 부모, 조부모, 숙모, 숙부, 이웃이 어린아이들의 지력과 연역력을 자극하려고 내던 수수께끼가 갑자기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나는 채울 수 있지, 내 위에 그릴 수도 있지, 나한테 불을 붙일 수도 있지, 자, 나는 누구일까. 사람들은 순진한 아이들에게서 백지라는 말을 끄집어내는 것이 망설여지자, 이 수수께끼가 세상 경험이 제한된 아이들에게는 너무 어렵다는 말로 없애는 것을 정당화해버렸다. (67쪽)
이들은 거짓말 탐지기를 활용해 진실을 파악하려고도 한다. 하지만 그것도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복잡한 일이다. 거기에 대해서는 불꽃 튀는 설전이 벌어지지만, 이 책의 띠지에도 발췌되어 있는 문장이면서 본문 중에 있는 이 말이 논란의 종지부를 찍는다.
우리는 진실을 말할 때도 계속 거짓말을 하고, 거짓말을 할 때도 계속 진실을 말한다고요, 바로 장관님처럼, 바로 댁처럼 말이에요, 생각해보세요, 내가 댁한테 나하고 같이 자고 싶으냐고 물었다면 댁은 뭐라고 말했겠어요, 저 기계는 뭐라고 말했을까요. (7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