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그랬던 게 아냐
멍작가(강지명) 지음 / 북스토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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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 책의 표지를 보며 큭큭 웃는다. '멍작가'라는 이름과 쇼파에 앉아서 멍때리고 있는 캐릭터가 정말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그 '멍'이 그 '멍'인가 궁금해하며 책장을 넘긴다. 이 책은 '멍작가의 소소하지만 맛있는 행복 에세이' 『나만 그랬던 게 아냐』이다.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하고 푸근한 의미를 건져내고 싶어서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멍작가(강지명). 스물아홉의 여름,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훌쩍 유럽으로 떠나왔다. 지금은 독일 서쪽 도시에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면서 살고 있다. (책날개 발췌)

요즘 들어 가장 절실하게 느끼는 감정은 바로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사라졌을 때의 상실감과 공허함인 것 같다. 언제든 함께할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떠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삶에 치여 어쩔 수 없이 우선순위에서 밀려 미래의 어느 날로 기약해야 했던 숱한 계획들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그 소중함을 더욱 느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지금 이 순간을 즐길 작은 여유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게 훌쩍 떠나는 여행의 형태이든 집 안 가장 편안한 자리에서 즐기는 한 잔의 행복이든 간에. 앞으로 또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우리를 버티게 해줄 힘은 바로 이런 단순하고 사사로운 기억들일 테니까. (7쪽)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된다. 프롤로그 '이 순간을 즐길 작은 여유'를 시작으로, 1부 '바다 건너의 일상', 2부 '그래도 여행을 떠나야 하는 이유', 3부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하여'로 나뉜다. 맛있는 빵집을 찾는 법, 낡고 오래된 것들의 이야기, 노란 벽돌집 옆 작은 동네 책방, 일상 어디에든 예술은 있다, 안달하지 않아도 어른이 돼, 그곳에 남아 있떤 건, 의무적으로 하는 여행은, 오로라는 그렇게 사라졌다, 달그락달그락, 나만 알고 싶은 비밀의 정원, 그 시간 그 장소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게 있다 등의 글이 담겨 있다.

'뭐야뭐야, 그림이 넘 귀엽고 앙증맞잖아!' 이 책을 읽으면서 첫 느낌이 그랬다. 그러면서 읽어나가다가 문득 먹어본 적 없는 책 속의 음식들을 상상하며 입맛 다시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러면서 조각조각 추억도 떠올려본다.

사람들은 때때로 달콤한 맛을 찾는다. 화가 나고 스트레스가 쌓일 때, 여기저기 상처 난 마음에 작은 위로가 필요할 때, 그리고 마치 이 넓은 세상에 나 혼자인 것같이 외롭고 슬플 때. 나이를 한 살씩 먹는다는 건 그만큼 그리워할 것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 문득 어떤 음식을 먹다가 잊고 있던 과거의 그때의 기억으로 돌아갈 때가 있다. 음식이란 매개체로 갑작스럽게 떠오른 그 기억이 참으로 반갑다. 그립고 보고 싶지만 다시 오지 않을 그 시간을 달콤한 케이크 한 입으로 기억할 수 있다는 건 참 근사한 일이다. 나이들수록 유독 달짝지근한 맛을 찾는 건 지나간 달콤한 시간을 기억하고 싶은 건 아닐까. (20쪽)



엄마한테 요리 레시피를 물어볼 때면 어김없이 엄마 입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말, 이상하게 난 이 말이 참 좋다. "달그락달그락." 이 두 단어 안에는 소복한 정성과 기다림의 시간이 담겨 있다. 스토브에 불을 켜고 기름을 두른 뒤 프라이팬이 적당히 달궈졌을 때 고소한 냄새가 날 때까지, 혹은 윤기가 자르르 나는 색으로 변할 때까지 충분히 주걱으로 볶아준다. 이 표현이 가장 적절히 사용되는 요리가 바로 카레가 아닐까 싶다. 버터를 두른 냄비에 네모 모양으로 썬 양파를 가득 넣고 '달그락달그락' 캐러멜색이 날 때까지 약불에 계속 휘저어주는 것. 이게 카레 맛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과정이다. (205쪽)

문득 "달그락달그락" 요리에 집중하는 것을 한동안 귀찮아하고 미루었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일이든 기분 좋게 그 시간을 즐겨야 의미가 있지,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보면 청소도 요리도 재미 없는 법이다. 세상 하기 싫은 일로 둔갑해버린다. 이 책을 읽다보면 일상의 소소한 시간들이 푸근하게 다가와 마냥 행복해진다. 혹시 잊고 있던 것은 없는지 자꾸만 떠올리며 생각에 잠긴다.



무엇보다 이 책의 그림이 귀엽다. 일상에서 의미를 잘 찾으며 살아가다보면 "우리도 저렇게 나이 들어가자. 저기 할머니들처럼."의 그 할머니가 되어 있겠지. 어렸을 때는 어른이 될 거라 생각 못했으니, 그리 먼 시간만은 아니리라.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 야속하면서도 거스를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 마음이 따듯해지고 행복을 느꼈던 순간이 언제였을까? 하나씩 떠올려보니 결코 거창하거나 대단한 사건이 일어났던 때가 아니었다. 가장 아끼는 찻잔에 달콤한 꿀이 들어간 차를 담아 후후 불며 마실 때. 오랜만에 볼로네즈 파스타를 끓이는 맛있는 냄새가 온 집 안에 가득 찰 때. 마트에 갔다가 노란 튤립 다발을 2유로 주고 사 올 때. 그리고 간밤에 내린 눈에 신나서 향이 좋은 커피를 보온병에 담고는 새하얀 눈을 뽀드득뽀드득 밟을 때. (181쪽)

이제 겨울이 다가온다. 추워졌다고 따뜻한 계절을 그리워하지 말고, 온전히 지금을 즐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거창하지 않아도 우리 일상에서 충분히 행복을 건져낼 수 있으니 말이다. 잘 모르겠다면 멍작가의 소소하지만 맛있는 행복 에세이를 들춰보기를 권한다. 따듯하고 푸근하고 행복한 느낌이 마음 가득해질 테니 말이다. 글을 마치고 어서 "달그락달그락" 기름을 두르고 요리를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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