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모든 것은 불현듯이었다. 사랑이 찾아오는 것도 사랑이 떠나가는 것도, 다리가 끊어지는 것도, 억수같이 쏟아지던 비가 그치는 것도. 막무가내로 쓸쓸했던 마음에 웃음이 차오르는 것도 모두 불현듯이었다. 그 불현듯이 웃음을 불러내고, 눈물을 불러낸다. (17쪽)
'새벽 2시, 뎅그랑 뎅그랑 울리는 내 마음의 소리를 들으며 컴퓨터 앞에 앉았다(17쪽)' 이 문장에 울컥한다. 내가 지금 그러고 있으니 말이다. 지나온 시간들이 그랬고, 앞으로 다가올 시간 또한 내게 '불현듯' 다가올 것이다. 너무 놀라 숨이 쉬어지지 않기도 했고, 너무 기뻐 소리지르는 걸로는 부족했던 그런 순간들. 모두 '불현듯'이었다.
마음에 훅 들어오는 문장이 많아서 자꾸 멈춰선다. 내 마음을 대변해주는 글들이 많았다. 아니, 이 책을 읽으며 그냥 내 마음을 보는 듯한 글을 건져낸다. 이 새벽이 이 책을 읽는 데에 알맞은 배경이 되어주는 것일까, 자꾸만 눈에 들어오는 어휘에 생각이 많아지고 밤은 깊어만 한다.
까만 하늘이 환해진다. 보름달이 건너가도록 밤이 깊었다. 톡톡 행간을 두드리는 소리가 편안하다. 살면서 너무 많은 소리를 내려고 애썼다. 빛의 화려함에 끌리고, 색의 유희에 끌리며 세상의 모든 소리와 색을 흉내 냈다. 그 소리가 하나 둘 빠져나갈 때마다 나는 아팠다. 몸에도 구멍이 숭숭 나서 만지면 부서질 것 같았따. 어느 때는 구멍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이 심장을 관통했다. 감당하기 버거운 날들, 나는 살아가는 방법을 몰랐다. 여전히 살아가는 방법을 잘 모르지만 돌아보니 시간이 모든 것을 정리해 주더라. 견디니까 흘러가더라. 흘러가며 괜찮아지더라. 더러는 좋은 날도 있더라. 하던 일을 하며 기다리니까 곹오의 조각들이 새 주인을 찾아 뿔뿔이 흩어지더라. 죽도록 한 계절만 있던 나에게도 새로운 계절이 찾아오더라. (2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