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서 시작 페이지를 펼치면, '엥?' 이라는 반응을 이끌어낸다. '새벽 2시 15분. 원룸의 천장으로부터 눈부신 원통형의 광선이 밀려 내려온다.'라고 시작하니 말이다. 무언가 강렬하지만 낯선 시작이다. 다소 생소해서 내 취향이 아닐지 모르겠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이내 '이보리'라는 등장 인물의 캐릭터에 빠져들고 만다. 이보리가 조필규의 전화를 받고, 어르신을 만나며 대화를 나누고, 그렇게 이 소설에 빠져드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소설가의 이야기가 담긴 글도 매력적이다. 소설이 새롭게 창조되는 우주라니, 소설 속 주인공을 창조한 창조주라니. 신선한 접근이다. 그렇게 소설 속 이야기에 푹 빠져들게 된다.
나는 이 소설의 주인공 이보리를 창조한 소설가이다. 이보리만 창조한 게 아니라 이 소설의 전체 시공간을 만들어낸 창조주이다. 이치상 구약성서의 창세기에 등장하는 하나님과 다를 게 없다. 하나님이 엿새 동안 온 세상과 만물과 생물과 인간을 창조하고 이레째 되는 날 안식을 했다는 걸 기억하면 될 것이다. 다만 창조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이고 소설도 그와 같은 과정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비유적으로 말하는 것이니 오해 없기를 바란다. 일개 소설가가 전지전능한 창조주를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이보리라는 인물이 나의 분신이고 내가 그의 창조주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걸 독자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함이다. (1권, 48쪽)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소설이 아닌 철학을 하는 느낌이랄까. 심오하고 방대하다. 스르륵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멈춰서서 인간의 근원적인 무언가에 대해 집요하게 질문을 던지고 사색에 잠긴다. 몰입도가 뛰어난 소설이다. 소설가가 창조한 우주에서 펼쳐지는 거대한 서사시이며, 그 안에서 '하나'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