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매일매일 - 빵과 책을 굽는 마음
백수린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때로는 소설가의 산문에 더 관심이 간다. 막상 소설은 난해하거나 내 취향이 아니더라도 그 작가의 에세이만큼은 내 맘에 들어오는 그런 작가들이 몇몇 있다. 어떤 작가인지는 살짝 비밀로 하고, 호기심으로 반짝거리며 이 책을 읽어보았다. 왜냐면 그들은 어휘 선택이 풍부하면서도 우리가 일상에서 미처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매의 눈으로 콕 집어내서 글로 풀어내니 읽으면서 깨닫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소설가 백수린의 첫 산문집이다. 소설가가 된 이래 처음으로 소설 아닌 글을 책으로 묶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빵과 책을 굽는 마음'이라는 글을 보자마자 당장 이 책을 마음에 담았다. 그 말에 당장 입안에 침이 고이며 행복해지는 빵순이의 마음으로, 골라 읽은 책이 유난히 마음에 들어 뿌듯해지는 책순이의 마음으로, 이 책 『다정한 매일매일』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이 책의 저자는 백수린. 201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거짓말 연습」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젊은작가상, 문지문학상, 이해조소설문학상,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내게 작은 바람이 있다면 읽고 쓰는 나날을 기록한 소박한 글들이 온기, 라는 단어와 어울렸으면 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고양이가 앉았던 자리만큼의 온기가 되어주었으면. 이상하고 슬픈 일투성이인 세상이지만 당신의 매일매일이 조금은 다정해졌으면. 그래서 당신이 다른 이의 매일매일 또한 다정해지길 진심으로 빌어줄 수 있는 여유를 지녔으면. 세상이 점점 더 나빠지는 것만 같더라도 서로의 안부를 묻고 안녕을 빌어줄 힘만큼은 여전히 우리에게 남아 있을 것이므로. 그런 마음으로 당신에게 이 책을 건넨다. (6쪽)

이 책은 총 5장으로 구성된다. 1장 '당신에게 권하고픈 온도', 2장 '하나씩 구워낸 문장들', 3장 '온기가 남은 오븐 곁에 둘러앉아', 4장 '빈집처럼 쓸쓸하지만 마시멜로처럼 달콤한', 5장 '갓 구운 호밀빵 샌드위치를 들고 숲으로'로 나뉜다. 사랑해서 하는 일,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삶을 살아내게 하는 것들, 진실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정성으로 가꾸는 매일, 상처는 스스로 빛을 낸다, 흔한 빵을 나눠 먹고 싶은 사람, 서툴러 경이로운 당신, 상처를 응시하는 섬세한 눈길, 언제고 다시 이 순간으로, 이해와 노력으로 자라는 마음, 버리지 못하고 모아둔 그리움, 세상에 기적이 존재한다면, 통밀빵을 굽는 온순한 즐거움, 찻집 상상 등의 글이 생일 케이크, 컵케이크, 브라우니즈 쿠키, 마카롱, 팬케이크, 멜론빵, 슈크림빵, 티라미수, 사과머핀, 호빵, 바나나 케이크, 델리만쥬, 생크림 토스트, 롤케이크, 호두과자, 통밀빵, 단팥빵 등과 어우러져 담겨 있다.

* 몇 편의 산문을 추가하긴 했지만 이 책에 실린 글 대부분은 '책 굽는 오븐'이라는 제목으로 한 신문에 책을 소개하기 위해 연재했던 짧은 원고들을 매만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 빵집에서 빵을 하나씩 만나는 듯한 느낌이다. 갓구워낸 빵의 냄새도 나를 설레게 하고, 아는 빵 모르는 빵 모두 맛깔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각양각색의 빵을 보면서 빵 하나에 이야기 하나씩을 담아낸 듯한 느낌이다. 하나씩 꺼내 먹으며 설레는 시간이다.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어떤 힘일까? 나는 삶이 고통스럽거나 누군가의 불행 앞에서 무기력한 마음이 들 때 이 소설 속 빵집 주인이 건넨 한 덩이의 빵을 떠올리곤 한다. 어떤 의미에서 내게 소설 쓰는 일은 누군가에게 건넬 투박하지만 향기로운 빵의 반죽을 빚은 후 그것이 부풀어 오르기를 기다리는 일과 닮은 것도 같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오늘 아들을 잃은 부부에게 빵을 건네는 이의 마음으로 허공에 작은 빵집을 짓는다. 젊은 부부에게 온기를 전하는 빵집 주인의 마음으로. 어딘가 있을 당신에게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책들을 건네기 위해서. (22~23쪽)

저자는 소설을 쓸 때 가장 좋아하는 건 구상과 퇴고의 단계이며, 가장 싫어하는 것은 아무래도 초고를 만드는 단계라고 고백한다. 초고를 쓰다 막히면 습관처럼 두려움이 찾아오기도 하는데, 경계한다고 노력했지만 언젠가 읽은 누군가의 문장이나 표현이 무의식에 남아 글에 섞여 있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 같은 것, 하지만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이전 소설에 드러난 한계가 이번 소설에서도 반복되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라는 것이다. 소설을 쓰지 않으니 초고 단계가 가장 힘들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그런가 싶다가도, 언젠가 읽은 누군가의 문장이나 표현이 무의식에 남아 글에 섞여있을까 두렵다는 것에는 무척이나 공감된다.



 

그럴 줄 알았다. 맛있는 책이다. 글맛 말이다. 착착 감긴다. 실은 이 책에서 인용하고 싶은 문장이 정말 많아서 어느 한 군데 잘라서 넣기가 버거울 정도다. 제목 하나에 이어지는 글이 어느 부분을 잘라서 담아도 글맛이 좋다. 여기를 하자니 저쪽이 아쉽고, 다 넣자니 그건 서평이 아니니, 부디 이 책을 읽는 분들이여. 그냥 맛있는 빵을 통째로 다 먹는 기분으로 이 책을 맛보는 시간을 갖기를 권한다. 어느 부분을 베어물어도 사르르 녹는 그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재료를 아끼지 않고 듬뿍 넣어서 맛있게 구워낸 빵이라는 입소문을 내고 싶어진다.



소설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모르겠고, 나는 매번 백지 앞에서 초심자처럼 두렵고 막막하지만, 한 가지 그래도 지난 시간 동안 바뀐 것이 있다면, 소설을 쓰는 재능에 대한 회의나 의구심이 불쑥불쑥 찾아올 때마다 그것들을 곱게 접어 서랍 한 구석에 넣어둘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71쪽)

이 글을 보며 무슨 이유인지는 잘 모르지만 안도감을 느꼈다. 소설이 잘 안될 때면 일단 서랍 한 구석에 넣어두고 이렇게 산문을 쓰시기를, 빵과 책과 사색이 어우러져 하나하나 작품이 된 이런 글을 더 많이 만들어 주기를 기대한다. 또다시 꺼내들어 한 가지 맛씩 곱씹으며 음미하고 싶은 산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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