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 - 광화문글판 30년 기념집, 개정증보판
광화문글판 문안선정위원회 엮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전에 '겨울 들판을 거닐며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을 거라고 함부로 말하지 않기로 했다'는 문장을 보고 정말 마음에 와닿았던 기억이 난다. 검색해보니 광화문글판에 적힌 허형만의 시 '겨울 들판을 거닐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다음에는 광화문글판에 오른 싯귀를 찾아보았는데 하나같이 다 마음에 쏙 드는 것이었다. 마음에 드는 글을 찾기 힘들 때에는 '광화문글판'의 글귀만 보아도 그 안에서 글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을 보고 나서야 '광화문글판 문안선정위원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2010년에 초판 발행된 책이 2015년에 개정판으로 출간되었고, 이번 2020년에 개정증보판으로 다시 선보인 것이다. 이렇게 마음에 쏙 들어오는 문장들을 뽑아내서 광화문글판에 계절마다 바꿔 단다면 당연히 꼼꼼하게 선정되는 것일텐데, 그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알고 나니 이 책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가 더욱 값지게 다가왔다.



이 책을 엮은이는 광화문글판 문안선정위원회이다. 1년에 4차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새 옷을 입는 광화문글판의 아름다운 글귀는 시인, 소설가, 교수, 문학평론가, 언론인, 광고인 등으로 구성된 광화문글판 문안선정위원회를 통해 선정된다. 선정위원들은 교보생명 홈페이지에 올라온 시민들의 공모작과 각 선정위원들이 발굴한 추천작을 놓고 여러 차례 투표와 토론을 거쳐 최종작을 결정한다. (책날개 중에서)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된다. 1부 '우리가 사랑한 시인들 _ 광화문에서 만나다'에는 나태주, 정현종, 백무산, 장석주, 천양희, 이준관, 정호승, 허형만, 김사인 시인과의 Q&A가 수록되어 있다. 2부 '우리가 사랑한 글판들 _광화문에서 보다'에는 '봄, 차오르다', '여름, 달리다', '가을, 영글다', 겨울, 기다리다'로 구성되어 있다. 3부 '우리가 사랑한 이야기들 _ 광화문에서 쓰다'에는 광화문에세이 공모전 수상작이 수록되어 있다.



사실 문학 속 문장, 좋은 글귀, 특히 시는 바쁘게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게 왠지 거리감이 있을 수 있다. 스스로 작품을 선택해서 책을 찾아서 본다는 것이 번거로운 작업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출퇴근 길에 오며가며 볼 수 있는 광화문글판에 글귀를 올린다는 생각은 누가 맨처음 한 것일까.

도심에 예술적인 글판을 만들어 사계절 새롭게 한다는 것은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일이다. 이 책을 읽다보니 보다 많은 시민들이 위안을 얻고 공감할 수 있도록 시인, 소설가, 문학평론가, 언론인 등으로 구성된 '광화문글판 문안선정위원회'가 어떤 노력을 하며 문안선정을 해냈는지 그 과정까지 엿볼 수 있었다.



최종후보작 선정을 위해 여러 차례 투표와 토론이 이루어지고, 그렇게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거쳐 가장 많은 지지를 얻은 글귀가 낙점된다. 그 과정을 알고 보니 선정작들이 더 귀하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어떤 글귀가 광화문글판에 걸리는 것일까? 사실 특별히 명문화된 규정은 없다. 시, 소설, 수필 등의 문학작품부터 영화대사, 명언, 노래가사에 이르기까지 '좋은 글'이라면 광화문글판을 장식할 수 있다. 다만 길 건너편에서도 한눈에 들어올 만큼 큰 글자여야 하므로, 25자 안팎이라는 분량의 제한이 있다. 마음의 휴식과 생활의 자양이 되는 정감 어린 내용에 길어야 30자 이내여야 하는 글귀를 찾다 보니 아무래도 시가 자주 선정된다. (273쪽)



광화문글판에 올랐던 주옥같은 글귀들을 이 한 권의 책에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읽어나가면서 그 맛이 깊이 우러나는 느낌이었다. 특히 광화문글판에 올랐다는 결과 말고도 선정과정과 함께 많은 이들의 마음에 울림을 준 글귀들이 모여있으니 그냥 허투루 넘어가지 않고 꼼꼼히 읽어나가게 된다. 사실 예전에 검색을 통해서는 몇 편밖에 못 찾아보았는데, 이렇게 한꺼번에 만날 수 있으니 정말 마음에 드는 책이다. 글에서 힘을 얻고 싶을 때에는 이 책을 스르르 넘겨보아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