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읽으며 버티고 견디고 살아낸 시간들을 공유한다. 그리고 예상대로 첫부분부터 이어지는 글이 나에게 무척이나 버겁다. 내 시간들도 겹쳐서 떠올랐기 때문이다. 특히 '만약에'를 생각하며 무한도돌이표를 찍었던 어느 순간이 생생하게 떠올라서 나를 괴롭혔다.
이걸 하지 않았으면 그걸 좀 제대로 해주었다면 저게 애초 없었다면, 따위의 말들이 문장부호 없이 어지럽게 뒤섞였다가 뭉개지기를 반복한다. 이 반복이 열 번 이상 계속되고 나면 이성의 소리가 들려온다. 시간을 되돌릴 수도, 주워 담을 수도 없이 이미 벌어져 끝난 일을 두고 왜 새롭게 고통받느냐는 생각이다. 머리를 흔들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쉬어본다. 30초가 지나고 나면 나는 앞선 생각들을 처음부터 되풀이하고 있다. 불행한 일을 겪으면 사람의 머릿속은 그렇게 된다. 그리고 불행의 인과관계를 따져 변수를 하나씩 제거해보며 책임을 돌릴 수 있는 가장 그럴싸한 대상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53~54쪽)
엄마가 병원에 입원하고 병원 보조침대 생활을 하며 하루아침에 병원 생활을 해야했던 나는 모든 게 원망스러웠다. 이웃도, 나도, 친척도, 지인들도 다 싫었다. 나는 그야말로 가장 그럴싸한 대상을 추적하여 모든 것이 그것 때문이라며 원망을 퍼부었던 것이다. 이 책에서 그랬던 내 마음을 발견하는 듯 마음을 뚫고 들어오는 문장 앞에서 움찔한다. 다른 곳에서 나를 들여다보는 느낌이 들었다. 너무 맞는 말이고 뜨끔해서 아프다. 그렇지만 지금 이 글을 읽고 다 지나간 과거의 시간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한 걸음 나아가 있으며, 그것이 꽤나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컨대 불행의 인과관계를 선명하게 규명해보겠다는 집착에는 아무런 요점도 의미도 없다는 것이다. 그건 그저 또 다른 고통에 불과하다. 아니 어쩌면 삶의 가장 큰 고통일 것이다. 그러한 집착은 애초 존재하지 않았던 인과관계를 창조한다. 끊임없이 과거를 소환하고 반추해서 기어이 자기 자신을 피해자로 만들어낸다. 내가 가해자일 가능성은 철저하게 제거한다. (56쪽)
규정하지 못했던, 혹은 인식하지 못했던 내 마음을 인쇄된 글에서 만나니 느낌이 다르다. 누구나 어느 순간에는 엉뚱한 데에 집착하기도 한다. 무한반복되는 고통스런 생각을 끊어내는 데에 나는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도움이 되었다. 지금 뭐하고 있냐는 그 말 한 마디, 누군가를 원망하는 마음은 지금 상황에서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직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