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다는 농담 - 허지웅 에세이
허지웅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허지웅 에세이다. 이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읽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동시에 읽기 싫었다. 읽어보고 싶은 마음은 방송에 나온 그의 이야기를 보며 한동안 많이 아팠고 이제는 회복한 그의 근황에서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깊이 있는 글이 나왔으리라는 생각에서였고, 읽기 싫었던 것은 그만큼 어둡고 힘든 이야기가 깔려있으리라는 생각에 우울해질까봐 그랬다. 그래서 한동안 이 책이 내 책장에 자리잡고 있었음에도 과감하게 손을 뻗지 못했다.

하지만 때가 왔다. 내가 이 책을 꺼내들어 읽는 시간, 이 책을 읽기 적절한 시간을 만난 것이다. 문득 손에 집혀서 들춰보았다가 이 한 마디 말에 그냥 앉은자리에서 읽어나가버린 것이다.

우리의 삶은 남들만큼 비범하고,

남들의 삶은 우리만큼 초라하다. (책속에서)

준비운동없이, 마음을 가다듬을 시간도 없이, 그의 투병 이야기부터 바로 훅 들어가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된다. 1부 '망하려면 아직 멀었다', 2부 '삶의 바닥에서 괜찮다는 말이 필요할 때', 3부 '다시 시작한다는 것'으로 나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결론이 아니라 결심이다, 다시 시작한다는 것, 천장과 바닥, 불행에 대처하는 방법, 믿지 않고 기대하지 않던 나의 셈은 틀렸다, 선한 자들이 거짓말을 할 때, 우리는 언제나 우리끼리 싸운다, 악마는 당신을 망치기 위해 피해의식을 발명했다, 스스로 구제할 방법을 찾는 사람들에게, 삶의 바닥에서 괜찮다는 말이 필요할 때, 바꿀 수 있는 용기와 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한 평정, 가면을 벗어야 하냐는 질문, 순백의 피해자는 없다, 불행을 동기로 바꾼다는 것 등의 글이 담겨 있다.



글을 읽으며 버티고 견디고 살아낸 시간들을 공유한다. 그리고 예상대로 첫부분부터 이어지는 글이 나에게 무척이나 버겁다. 내 시간들도 겹쳐서 떠올랐기 때문이다. 특히 '만약에'를 생각하며 무한도돌이표를 찍었던 어느 순간이 생생하게 떠올라서 나를 괴롭혔다.

이걸 하지 않았으면 그걸 좀 제대로 해주었다면 저게 애초 없었다면, 따위의 말들이 문장부호 없이 어지럽게 뒤섞였다가 뭉개지기를 반복한다. 이 반복이 열 번 이상 계속되고 나면 이성의 소리가 들려온다. 시간을 되돌릴 수도, 주워 담을 수도 없이 이미 벌어져 끝난 일을 두고 왜 새롭게 고통받느냐는 생각이다. 머리를 흔들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쉬어본다. 30초가 지나고 나면 나는 앞선 생각들을 처음부터 되풀이하고 있다. 불행한 일을 겪으면 사람의 머릿속은 그렇게 된다. 그리고 불행의 인과관계를 따져 변수를 하나씩 제거해보며 책임을 돌릴 수 있는 가장 그럴싸한 대상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53~54쪽)

엄마가 병원에 입원하고 병원 보조침대 생활을 하며 하루아침에 병원 생활을 해야했던 나는 모든 게 원망스러웠다. 이웃도, 나도, 친척도, 지인들도 다 싫었다. 나는 그야말로 가장 그럴싸한 대상을 추적하여 모든 것이 그것 때문이라며 원망을 퍼부었던 것이다. 이 책에서 그랬던 내 마음을 발견하는 듯 마음을 뚫고 들어오는 문장 앞에서 움찔한다. 다른 곳에서 나를 들여다보는 느낌이 들었다. 너무 맞는 말이고 뜨끔해서 아프다. 그렇지만 지금 이 글을 읽고 다 지나간 과거의 시간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한 걸음 나아가 있으며, 그것이 꽤나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컨대 불행의 인과관계를 선명하게 규명해보겠다는 집착에는 아무런 요점도 의미도 없다는 것이다. 그건 그저 또 다른 고통에 불과하다. 아니 어쩌면 삶의 가장 큰 고통일 것이다. 그러한 집착은 애초 존재하지 않았던 인과관계를 창조한다. 끊임없이 과거를 소환하고 반추해서 기어이 자기 자신을 피해자로 만들어낸다. 내가 가해자일 가능성은 철저하게 제거한다. (56쪽)

규정하지 못했던, 혹은 인식하지 못했던 내 마음을 인쇄된 글에서 만나니 느낌이 다르다. 누구나 어느 순간에는 엉뚱한 데에 집착하기도 한다. 무한반복되는 고통스런 생각을 끊어내는 데에 나는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도움이 되었다. 지금 뭐하고 있냐는 그 말 한 마디, 누군가를 원망하는 마음은 지금 상황에서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직언 말이다.



그의 전작을 읽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저자는 아프기 전과 후가 많이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듣는다고 한다. 어쨌든 이 책만으로 보았을 때, 독자에게 다양한 감정을 끌어내는 재주가 있다. 평범하게 물 흐르듯 풀어내는 글, 격정적으로 마음을 훅 치고 들어오는 글, 생사의 경계까지 경험한 지극한 고통에서 느껴지는 진정성,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 병문안 간 경험담, 다방면에 다양한 소재로 풀어나가는 글……. 이 책에는 골고루 담겨 있다.



에세이는 자신의 경험을 글에 녹여내어 풀어 써야 한다. 어떤 부분에서는 별 관심 없는 이야기까지 시시콜콜하게 늘어놓으면 피로감을 느끼기도 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더 알고 싶은데 숨기면 약간 짜증이 나기도 한다. 저자는 그 적정선을 잘 지키며 글을 써내려갔다는 생각이 든다. 제발 '재발'은 없기를, 계속 글을 쓰며 버티는 삶을 이어가기를, 진심을 다해 응원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