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죽기 전에 꿈을 꾼다 - 호스피스 의사가 만난 1,400명의 죽음
크리스토퍼 커 외 지음, 이정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생사를 오가며 몇 개월을 섬망 상태로 지내신 어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그때 난 꿈만 꿨어"라고 하신다. 사람은 죽기 전에도 귀는 열려서 좋은 말씀 많이 해드려야한다(앗, 어머니 지금은 살아나셨다. 나랑 잘 지내고 계신다. 혹시 오해가 있을까봐 언급함)는 이야기가 있어서, 그때 나는 힘이 되는 말, 좋은 말, 웃으면서 해드리려고 무진장 애썼다. 하지만 내가 옆에 있었는지, 무슨 말을 했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신다. 어떤 부분에서는 실컷 좋은 말 많이 해드렸는데 내가 옆에 있었는지조차 모르셨다는 게 조금은 서운하기도 하다.

어쩌면 '누구나 죽기 전에 꿈을 꾼다'는 이 책의 제목처럼 사람은 죽기 전에 꿈을 꾸다가 자신의 죽음을 인식하지 못한 채 떠나가는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인간은 누구나 한 번 죽음을 맞이하니 그에 대해 틈틈이 사색에 잠길 시간을 마련해두어야 할 것이다. 이번에는 『누구나 죽기 전에 꿈을 꾼다』를 읽으며 호스피스 의사가 만난 1,400명의 꿈과 죽음에 대해 살펴보는 시간을 갖는다.



이 책의 저자는 크리스토퍼 커. 호스피스 의사다. 커 박사는 수천 명의 환자를 보살피면서 죽음의 과정에는 일반적인 꿈과는 다른 꿈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한다. 1,400명이 넘는 환자와의 인터뷰와 10여 년에 걸쳐 정량화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임종몽과 임종시가 임종 과정을 보다 인간답게 만들어 주는 특별한 경험이라는 것을 밝힌다. (책날개 발췌)

나는 다른 의사들과 마찬가지로 죽음을 맞서 싸워야 할 적 그 이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사람들이 의식과 호흡을 유지하도록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하는 맹목적인 의료 개입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어떤 한 개인이 원하는 죽음의 방식이나 결국 죽음은 피할 수 없다는 그 명백한 사실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랬던 내가 임종몽과 임종시(말기 환자가 생을 마감하기 수일전이나 수주 전부터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꿈이나 환시를 말한다-옮긴이)를 경험하는 말기 환자들을 자주 목격하게 되면서, 그들의 경험이 임상적으로나 인간적으로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임종 현상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됐다. (17쪽)

이 책은 총 10장으로 구성된다. 1장 '그곳은 이곳으로: 병원은 죽음을 모른다', 2장 '서투른 시작: 죽어 가는 이들의 목소리', 3장 '병상에서 바라본 세상: 인생의 마지막에 찾아오는 꿈', 4장 '마지막 유예: 악몽을 꾸는 사람들', 5장 '사는 대로 죽는다: 좋은 죽음은 없다', 6장 '사랑은 한계를 모른다: 오랜 부부가 헤어질 때', 7장 '아이가 말하는 죽음: 십 대 아이들의 마지막 꿈', 8장 '서로 다름에 관하여: 지각 장애를 가진 이들의 임종몽', 9장 '남겨진 사람들에게: 이별과 그 후의 삶', 10장 '꿈의 해석 그 너머에: 해석은 필요하지 않다'로 나뉜다.



누구나 아름다운 마무리, 웰다잉을 꿈꾸지만 그러기 힘들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도 말한다. 오래 살기는 더 쉬워졌지만 잘 죽기는 더 어려워졌다고 말이다. '미국인 대부분이 가족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기 집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어 하지만, 많은 사람이 집이 아닌 보호 시설에서 홀로, 혹은 낯선 사람들의 보살핌 속에서 세상을 떠난다(20쪽)'고 하는데, 우리라고 다를 바가 없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숨 쉬지 못하는 게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삶이라 말할 수 있는, 즉 자신의 '인생을 가치 있게 만들어 준' 자기만의 삶을 잃게 될까 봐 두려워 한다. (20쪽)

이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을 뭉클하고 묵직한 느낌에 멈춰섰는지 모른다. 무겁지만 생생한, 버겁지만 알아야 할 일들이다. 특히 병원에서 어머니 입원하셨을 때 보호자로 함께 지내며 생사를 오가는 사람들을 보아왔기에 인생의 마무리가 너무 형편없다는 것도 알고 있어서 그런지 울컥한 심정으로 이 책을 읽어나갔다. 커 박사가 있는 호스피스 병동의 사람들은 좀더 편안한 마음으로 인생을 마무리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게 있다. 암 치료가 중단된다고 하더라도 책임 있는 의료 서비스는 계속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앓고 있는 질병과 함께 발생할 수 있는 합병증 역시 그에 적합한 치료가 필요하다. (38쪽)



읽어나가는 속도가 매우 더뎠지만 몰입감은 특별했다.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하여 치유마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39쪽)' 말처럼 마음에 콕 와닿으면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글이 많다. 특히 환자 개개인의 사례를 들어주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통계 자료도 함께 들려주니 도움이 된다.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임종 전 경험 중 45%가 수면 중에 일어났고, 16%는 깨어 있는 상태에서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39% 이상이 수면 상태와 각성 상태를 가리지 않고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각자의 상황 여하를 불문하고 우리 환자들은 임종 전 경험을 자신들이 지금까지 겪어 본 경험 중 가장 또렷하고 생생하며 실제적인 경험이었다고 묘사했다. (73쪽)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지셨을 때, 구급차를 타고 병원 응급실로 갔을 때만 해도 너무 갑작스러워서 혼란스러웠고, 혹시 너무 늦게 간 것인가 자책했지만, 의사는 더 늦었으면 바로 혼수상태로 들어가고 돌아가셨을 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 되찾은 소박한 일상은 제2의 인생처럼 특별하다. 어쩌면 평생 후회만 하며 살지도 모를 일상에 주는 기회일 것이다. 그런 경험이 있어서인지 이 책의 문장들이 더욱 생생하게 살아서 내 마음을 툭툭 건드린다. 어떤 부분에서는 너무 쿡쿡 찔러서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저절로 눈물이 흐르기도 했다.

삶에서 가장 의미 있는 것은 우리가 사랑하는 존재들, 즉 엄마, 아빠, 자녀, 배우자,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소박한 일상'과 우리가 그들에게 받는 사랑과 관련된 것들이다. 임종 전 경험은 당연하게 생각했을지 모를 과거의 중요한 순간들이나 우리가 다른 계획을 세우느라 너무 바빠서 놓쳤던 일들을 재조명한다. 임종 전 경험은 유언이나 상실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 더 강해진 자아나 결코 끊어지지 않는 친밀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죽음을 재구성하게 해 준다. (167쪽)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말기 환자들에게는 딱히 얻을 만한 게 없을 것이라는 가정은 임종 과정 전반에 대한 부족한 이해를 그대로 보여 준다. 여러 면에서 볼 때, 인생의 마지막 여정은 삶의 정수를 한데 모아 가장 만족스러운 순간으로 만들어 내는 통합 과정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우연이든 계획적으로든 우리가 살면서 건네받은 인생의 대본을 다시 들춰 보고 고쳐 쓰는 과정이기도 하다. 죽음이 임박하면 전에 없던 새롭고 뚜렷한 관점이 생기면서 과거를 돌이켜보며 바로잡는 과정이 가속화된다. 우리 모두는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출생, 가족, 문화, 역사가 쓰인 인생 대본을 받게 된다. 그 대본에 맞춰 살아가기도 하고, 그 내용을 다시 고쳐 쓰기도 한다. 가끔은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에야 그 내용을 바로잡기도 한다. (264쪽)

지금껏 읽었던 책들 중에 임종몽, 임종시에 대한 글은 처음이었다. 죽음에 대한 책은 묵직하고 무겁다. 이 책도 물론 그렇지만 조금은 다른 느낌이다. 완전 부정적이고 생각하기도 싫은 부분이 아니라, 자신과 사랑하는 가족의 웰다잉을 위해서 꼭 알아야 할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한한 삶을 사는 모든 이에게 적극 추천한다'는 데일 브레드슨의 추천사에 나 또한 동의한다. 정말 특별한 책이다. 여운이 오래 남을 책이고 언젠가 다시 꺼내들어 읽을 책이다.

알에이치코리아로부터 도서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