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선물
와카마쓰 에이스케 지음, 송태욱 옮김 / 교유서가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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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고를 때 제목만으로는 별다른 느낌이 없다가도 책소개 몇 마디로 마음이 흔들려 선택하기도 한다. 이 책이 그랬다. "쓴다는 것은, 말할 수 없는 것의 씨앗을 혼자 키워가는 일"이라는 띠지의 한 마디 말에 '이 책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 말을 곰곰이 곱씹으며 생각에 잠긴다. 어쩌면, 쓴다는 것은 그런 것이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고 보니 이 책이 더욱 궁금해졌다. 그제야 '말의 선물'이라는 이 책의 제목이 더욱 크게, 특별하게 다가온다. 구체적인 내용을 들어보고 싶어서 이 책 『말의 선물』을 읽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 책의 저자는 와카마쓰 에이스케. 비평가, 수필가이다. 이 책은 『말의 선물』(저녁의책,2018)을 재출간한 것이다.

마음을 담아 만든 요리가 그 어떤 고급 레스토랑의 요리보다 깊고 뜨겁게 마음에 스며들듯, 손이나 머리가 아니라 마음에서 나온 말은 생사의 벽을 뚫는 힘이 있다. 사랑하는 이에게 진지하게 말을 보낸 사람은 상대가 보낸 말의 선물을 알아채는 것 아닐까. 그것은 알아차리지 못하는 곳에서 날마다 우리를 찾아오는 것 같기도 하다. 말만이 산 자의 세계와 죽은 자의 세계를 잇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8쪽)

이 책에서는 말의 부적, 뿌리를 찾는다, 타는 돌, 하늘의 사자, 일의 의미, 미지의 덕, 쓸 수 없는 날들, 쓰디쓴 말, 말을 엮다 읽지 않는 책, 미지의 아버지, 고통의 의미, 천명을 알다, 살아져서 살다, 색을 받다, 일기일회, 황금의 '말', 형체 없는 벗, 믿음과 앎, 메로스의 회심, 눈을 뜨다, 자기 신뢰, 피안의 말, 말의 씨앗 등 24가지 말의 선물을 들려준다.



이 책은 제목을 보았을 때의 느낌, 프롤로그를 읽을 때의 느낌, 본문을 읽으면서의 느낌이 제각각 달랐다. 팔색조의 매력을 가졌다고나 할까. 이 책에 대한 나의 감상은 이 책을 다 읽을 때까지 종잡을 수 없었다. 생각보다 얇은 책이면서 강약중강약을 다 갖춘 책이다. 읽어나가다가 문득 마음을 툭 건드리는 문장을 만나는 시간을 가져본다.

인생은 여행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확실히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서 여행이 미지의 것과 만나는 사건을 의미한다면, 꼭 멀리 나갈 필요는 없다. 여행해야 할 장소는 우리의 마음속에도 펼쳐져 있다. 오히려 우리는 자기 마음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 모르는 게 아닐까. 그 미지의 것의 전형은 내적 언어, 생명의 '말'이다. (18쪽)



확실히 책은 읽는 사람을 위해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책은 그것을 읽어보고 싶어 하는 사람의 것이다. 통독해야 한다는 규칙도 없다. 책 자체를 사랑스럽게 느낄 수 있다면, 그리고 거기에서 하나의 말을 찾아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책을 손에 든 의미는 충분하다. (60쪽)

나는 책에 대한 기대치가 낮은 편이다. 한 권의 책 속에서 하나의 말을 찾아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그리고 어떤 책이라도 한 가지 말조차 건져낼 수 없다면 그건 그 책을 활용하지 못한 내 책임이라 생각한다. 그럴 가능성이 없어보이면 그냥 그 책을 읽지 않는 편을 선택한다. 그런데 내 생각을 담은 듯한 이 말을 접하니 내심 반갑기도 하고 정말 '내 말이 그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언젠가 읽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읽을 수 없는 책에서도 영향을 받는다. 거기에 쓰인 내용이 아니라 그 존재로부터 영향을 받는 것이다. 우리는 읽을 수 없는 책과도 무언의 대화를 계속한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과 비슷하게, 그 존재를 멀리 느끼며 적절한 시기가 도래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또한 하나의 말에도 인간의 인생을 바꾸기에 충분한 힘이 숨어 있다. 쓰는 사람의 일은 오히려 생애를 바쳐 하나의 말을 전하는 것 같다고도 지금은 생각한다. (60쪽)

책장에 꽂아놓은 책 중 숙제처럼 느껴지지만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여전히 펼쳐들지 못하는 책이 있다. 그 책들에 대해 늘 미안한 마음이었는데, 이 글을 읽으며 다른 방면으로 생각해본다. '사람은 언젠가 읽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읽을 수 없는 책에서도 영향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내 공간에 자리잡고 있는 책들에 대해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이 책을 읽으며 딱히 규정짓지 못했던 내 마음을 여럿 발견했다. 예를 들면 이런 글 말이다.

독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인생에 몇 번쯤 책의 부름을 받았다고 말하고 싶은 경험이 있지 않을까. 스스로 책을 고른 게 아니라, 책이 자신의 품으로 뛰어드는 경험을 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89쪽)

이런 글도 있다.

읽기가 여행이라는 것을 안다면, 올바른 여행이란 존재하지 않듯이 '올바른' 독서라는 것도 없음을 금세 깨달을 것이다. 같은 곳을 가도 같은 여행이 없는 것처럼, 같은 책을 읽어도 같은 독서 경험을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손에 들어야 하는 건 세상에 널리 알려진 책이 아니다. '나'만 읽어낼 수 있는 세계에 단 한 권뿐인 책이다. (124쪽)

이 책은 제목의 평범함, 내용의 난해함, 하지만 거기에서 건져내는 특별함이 모두 섞여 있는 책이다. 난해하게 생각되다가도 어느 순간 훅 들어오는 글의 느낌이 생생하다. 펄떡펄떡 뛰는 활어가 내 품으로 들어오데, 이 물고기가 번쩍거리며 난생 처음 보는 특별한 존재인 그런 느낌이다.

말은 살아 있다. 그래서 그것에 닿았을 때 우리 마음의 현弦이 울린다. 심금이라는 말도 그런 '말'에 감동한 이가 발견한 표현이리라. (136쪽)

그래서 이 말까지 마음에 담아본다. 이 책을 읽으며 여운이 남는 문장을 건져내는 시간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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