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관없는 거 아닌가? - 장기하 산문
장기하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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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왜? 생각이 안난다. 분명 내가 산 책이 맞다. 알라딘 굿즈에 혹해서 쓸어담던 중에 이 책도 포함했었다. 가수 장기하의 책이다. 그런데 내가 이 책을 산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분명 이유가 있을 텐데, 아무리 충동구매를 했어도, 책 저자나 제목만을 가지고 선택했어도 분명 이유가 있을텐데,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 표지도 눈이 현란해서 정신 사나운 형광주황색인데 내가 왜 그랬지?

하지만 이유가 무엇이든 일단 나의 손에 들어왔으니 읽어보기로 했다. 그 '이유'는 읽으면서 차차 발견하기로 하고 장기하 산문집 『상관없는 거 아닌가?』를 읽어보게 되었다. 그런데 이 제목, 왜 이리 공감되냐? 혹시 이 느낌 때문에 이 책을 골랐던 것인가?



이 책의 저자는 장기하. 스물한 살 이후로 음악 외엔 하고 싶은 게 별로 없었다. 록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을 십 년 동안 이끈 후 마무리했다. 솔로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새 출발을 준비하고 있다.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들에 대해 써보려 한다. 나를 괴롭혀온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들.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해서 간단히 극복하거나 잊어버릴 수 잇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법 같은 것은 나는 모른다. 뾰족한 수는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마치 한 단어를 반복해서 되뇌면 그 의미가 불확실해지는 기분이 들듯이,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들을 죄다 끌어내 써보는 것만으로도 그것들의 힘이 좀 약해지지 않을까 하는 정도의 기대는 하고 있다. (11~12쪽)

이 책은 2부로 구성된다. '낮'과 '밤'이다. '낮'에는 안경과 왼손, 즐겁고 해로운 취미, 냉장고의 즐거움, 흰쌀밥과 기분, 아무것도 안 하기, 채식의 즐거움, 정리정돈의 강자, 인생 최고의 라면 등이, '밤'에는 <싸구려 커피>가 잃은 것, 라임의 함정, 시대를 앞서간 명곡, 사막에서 혼자, 만약 의견을 낼 수 있다면, 어떤 문화권에든, 다시 잡담을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에 보면 '내가 생각하는 '적당히'의 기준을 말하자면, 너무 초라해서도 안 되고 너무 화려해서도 안 된다. 한마디로 어떤 방향으로든 과도하게 특징적이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38쪽)'라고 하며 '적당히'에 대해 언급하다. 이 책이 그 '적당히'에 적당히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화려하지도 않고 초라하지도 않으면서, 그러니까 글에 너무 힘을 주거나 밋밋하지 않게 조절해서, 눈길을 놓치지 않게 이끌어가며 끝까지 읽게 만드는 '적당히'의 힘이 있다.

누군가 자신의 소소한 일상을 이야기할 때 독자로서 두 가지 반응이 일어난다. 첫째는 '내가 그걸 알아야 하나?'라며 별로 알고 싶지 않다는 생각, 둘째는 '그래서 그 다음은 어쨌는데?'하는 궁금한 생각이다. 이 책은 후자다. 묘하게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장기하가 집에 냉장고를 들였는지, 2019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계획을 성공시켰는지, 어찌보면 별 것 아닌데도 궁금해져 읽어나가게 되었다.



 

샤워를 하고 빨래를 한다. 빨래는 색깔 구분 없이 그냥 모조리 세탁기에 넣고 돌린다. 반드시 비슷한 색의 옷들과 함께 빨아야 한다든지 꼭 드라이클리닝을 해야 한다든지 하는 까다로운 옷은 잘 사지 않는다. 인생에는 신경써야 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옷까지 모시고 살고 싶지는 않다. (142쪽)

시시콜콜한 일상이나 사소한 생각을 읽어나가다가 문득 키득 웃거나 '맞아' 공감하는 문장이나 내용을 발견한다. 무언가 이야깃거리가 풍부하고 거창한 소재를 가진 사람만 글을 써야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힘을 빼고 툭툭 내뱉는 듯한 글을 읽는 느낌도 괜찮다. '나도 옷까지는 안 모시고 살지롱' 라며 가끔 동조하면서 말이다.



행복 앞에 뾰족한 수가 없다는 점에서 결국 모두가 평등한 셈이므로 나보다 나아 보이는 사람을 보며 부러워 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남과 나 자신을 비교하여 주눅드는 일이 잘 없다…… 면 참 좋겠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남들보다 못났다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쪼그라든다. (188쪽)

투박한 된장찌개 같은 느낌의 글이다. 그런 것 있지 않은가. 예상치 못한 순간, 양파든 감자든 호박이든 커다란 건더기를 건져먹는 재미까지 있는 그런 된장찌개… 나에게는 와인 포함된 고급 코스요리보다는 훨씬 편안하고 정감 있는 그런 것 말이다. 이 책을 읽는다면 쓱 읽어나가다가 툭툭 걸리는 건더기를 건져먹는 재미를 느끼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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