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산에 산다
최성현 지음 / 시루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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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자연 속에서 사는 것을 동경했지만, 내가 생각하던 '자연'은 문명의 혜택을 받아야만 하는 정돈된 공간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모기나 벌레도 없어야 하고, 여름에는 에어컨과 제습기로 습기도 줄여야 하니, 사실은 현대 문명이 닿지 않는다면 나는 감당해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산에 산다는 이야기는 나의 동경과 호기심을 한몸에 받기에 충분하다.

이 책은 《그래서 산에 산다》 개정판이다. 표지에 보면 '인디언-법정-데이비드 소로-니어링 부부-후쿠오카 마사노부-야마오 산세이-리틀 포레스트를 잇는, 같으면서도 다른 바보 이반 최성현의 세계!'라는 글이 있으니 더욱 그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렇게 이 책을 읽으며 한국판 자연인 체험기를 엿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이 책의 저자는 최성현. 산에서 살고 있다. 자급 규모의 논밭 농사를 자연농법으로 짓고 있다. 자연농법의 철학과 실제를 탐구하는 작은 모임 지구학교를 열고 있다.

'조화로운 삶'이라는 출판사에서 2006년에 '산에서 살다'라는 이름으로 나왔던 책이다. 그 책을 '가디언'에서 다시 낸다. 몇 편은 뻈고,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글을 새로 썼다. 글의 차례도 바꿨다. 이렇게 더 나은 모습으로 그 산에서 살며 겪은 이야기를 다시 소개할 수 있도록 해준 가디언 출판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 (10쪽, 개정판 서문 중에서)

이 책은 총 5장으로 구성된다. 1장 '산에 사는 바보', 2장 '밭에는 흙, 얼굴에는 미소', 3장 '땅이 웃는 날', 4장 '친구들', 5장 '봄여름가을겨울'로 나뉜다. 서울에 온 주름조개풀, 콩 여섯 알, 벼농사를 짓는 기쁨, 가을 잔치, 어디까지 내 집인가? 별이 키우는 풀, 자급자족, 산이 차리는 밥상, 여행하는 새의 가르침, 농사와 경전, 햇살 거두어들이기, 불을 피우며, 땅이 웃는 날, 밤을 까 주는 청설모, 집쥐와 지혜 겨루기, 말벌과의 싸움과 화해, 1일1엽서, 하이쿠 열다섯 수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저자는 산으로 둘러싸인 외딴 오두막에서 20년을 살았다고 한다. 서른둘이었던 1988년 3월에 그곳에 갔고, 그곳을 떠나온 건 2008년 11월이었으니, 20년 5개월을 산 것이다. 지금은 강원도에 살고 있고, 여전히 산에 살고 있다고 한다. 변함없이 자연농법을 바탕으로 자급 규모의 논밭 농사를 지으면서 말이다.



사실 나도 귀촌을 했다. 처음에는 당연히 자급자족할 밭 정도는 내 힘으로 해낼 수 있을 줄 알았다. 오일장에서 호미를 사려고 하니, "그냥 사 드시지?"라는 이야기로 김을 빼기도 했고, 씨앗을 심었더니 동네 새들이 아침부터 거하게 짹짹거리며 잔치를 벌여 다 먹어버린 적이 있다. 큰맘 먹고 모종을 사서 심었는데, 약 안쓰고 키우려다가 벌레들에게 죄다 강탈 당한 경험도 있다. 방치하면 안 되는 건데 알아서 클 거라는 생각이 나의 첫 농사를 대실패로 장식하게 만들었다.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올레길을 걸으며 보았던 질서정연한 밭의 풍경을 보며 예전에는 '아름답다!'고 감탄하면서 풍경만 보았는데, 이제는 그렇게 만들어나간 사람들의 땀과 노고, 그들의 시간이 함께 보인다. 수시로 잡초도 뽑아주고 발소리 말소리 다 들려주어야 하니, 그쪽으로는 한없이 게으른 나는 '농사'라는 것을 그해로 그냥 포기해버렸다.

그래서 자연농법을 실제로 시행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더 쫑긋한 마음으로 집중한다. 그게 쉽지 않다는 것을 다 알고 있으니 말이다.

여기 사람들이 바람직한 농업을 이야기할 때 자주 써먹는 유명한 말이 있다.

콩 세 알을 심는다.

한 알은 새를 위해.

한 알은 벌레를 위해.

나머지 한 알은 사람을 위해.

사람의 몫은 세 알 가운데 한 알이다. 대단한 양보다. 그렇게만 된다면 사람만이 아니라 새와 벌레까지,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서로 가진 것을 나누며 사이좋게 사는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리라. (33쪽)

아, 이 이야기를 그때 알았더라면, 나는 조금이라도 내가 먹을 분량이 나왔다는 것에 고마워하며 계속 농사의 경험을 쌓아갔을까? 아니다. 계속 읽다보면 포기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가 100평쯤 옥수수 심었던 경험을 이야기하며, 새가 한 알도 남기지 않고 다 먹어버렸던 일화를 들려주었고, 한 해는 콩으로 같은 일을 당했다며, 새들이 잔치를 하고 쥐들이 먹어치운 일화도 들려준다. '맞아, 맞아' 웃으면서 읽어나간 것은 비슷한 경험에서 오는 공감에서일 것이다.

이렇게 저자의 이야기와 내 경험에서 나온 생각에 교차점을 느끼니 더욱 활력을 얻으며 이 책을 읽어나간다. 글을 읽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좋다. 더욱 적극적으로 읽어나갈 수 있는 책이었다.



처음 책장을 넘길 때에는 이렇게까지 몰입해서 흥미롭게 읽어나갈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제목과 소재, 표지에 보이는 사진에서 오는 느낌, 그 모든 것보다 기대 이상으로 다가오는 책이다. 무언가 특이한 사람이거나 특별한 경험이 아니라, 나 대신 대리경험을 한 자연 이야기를 내 눈높이에서 들려주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신선한 자극이 되는 에세이다. 읽고 공감하고 생각에 잠기며 이 책과 함께 보낸 시간이 한참 동안 여운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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