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아픔이 낫길 바랍니다 - 보통의 죽음을 배웅하고 다시 삶을 마중하는 나날
양성우 지음 / 허밍버드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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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를 읽고자 선택할 때, 저자가 하는 일을 보며 관심이 커지기도 한다. 이 책은 글 쓰는 의사가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개인적 친분이 있는 의사가 없기에 의사의 에세이를 읽어보고 싶었다. 띠지에 보면 이런 글이 있다. "인간의 95%가 죽음을 맞이하는 곳, 내과. 이곳의 의사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삶과 사람을 알게 되었다."라고 말이다. 보다 구체적인 이야기가 궁금했다.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하며 이 책 《당신의 아픔이 낫길 바랍니다》를 읽어보게 되었다.




 

지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인구의 5퍼센트만이 외인사로 죽는다. 나머지 95퍼센트는 내과적으로 죽는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내과 의사, 그러니까 나는 죽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며 산다고 할 수 있다. 내과 의사는 셀 수 없이 많은 사망 진단서를 쓰지만 많은 생명을 살리기도 한다. 내가 주로 해왔던 일들이다. (4쪽)




이 책의 저자는 양성우. 글 쓰는 내과 의사이다. "오늘 말을 나눴던 이가 다음 날 죽어도 일상처럼 받아들여야 한다"는 내과 의사의 숙명 앞에서, 그럼에도 보통의 일상을 받아들이기 위해 삶을 응시하는 글을 쓴다.

생각해 보면 내 환자들이야말로 내게는 가장 큰 스승들이었다. 진심으로 그들이 낫길 바랐고, 환자의 회복은 내게 허락된 가장 큰 기쁨이었다. 《당신의 아픔이 낫길 바랍니다》는 그런 경험을 엮은 기록이다. (12쪽)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된다. 1부 '이렇게 의사가 된다', 2부 '삶과 죽음의 온도차', 3부 '아픔을 지나는 길'로 나뉜다. 바이탈 잡는 의사, 의사는 신이 아니에요, 삶의 마지막 순간에 갖추는 예의, 그때 그 전염병, 나쁜 소식을 전하는 방법, 집에서 죽고 싶다, 오직 퇴원뿐, 부모는 자식의 아이가 된다, 가난한 사람의 입원, 목숨을 걸어야 비로소 엄마다 된다, 친구 K를 추억하며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환자나 보호자가 되어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 너무나도 차가운 말투의 의사에 상처를 입기도 한다. '조금 친절하게 이야기해주면 안될까?' 속상해하며 의사들이 책임지지 않으려고 그런다고들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의 책장을 넘기며 매일 같이 마음에 생채기가 나는 그들이 일상을 살아나가는 방법이 아닐까, 그들 또한 인간임을 떠올린다.

의사가 되어 셀 수 없이 많은 죽음을 겪었다.

이렇게나 많은 죽음을 볼 줄은 몰랐다.

내과 의사는 오늘 말을 나눴던 이가

다음 날 죽어도 일상처럼 받아들여야 한다. (20쪽)




'심폐소생술 중 가끔은 무서워지기도 한다. 내가 내미는 손이 강 저편까지 뻗어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21쪽)' 이 문장을 보며 한참을 멈춰 생각에 잠겼다. 그들도 무섭겠구나. 그들도 인간이니까.

이 책은 어느 내과 의사가 들려주는 에세이다. '에세이'라는 것은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고 진솔하게 풀어내야 독자에게도 감동을 전해주는 글이다. 그래서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은 짐작했지만, 특히 의사로서 수필을 쓴다는 것은 윤리적인 문제가 많기 때문에 환자의 동의를 받는 등 더 많은 노력을 해야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한 권의 책에 수록된 글을 쓰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들어있다는 것을 에필로그를 보며 새삼 깨닫는다.

환자들의 일화, 의사로서 들려주는 심정, 그리고 그가 프랑스 파리에서 직접 환자가 되었던 경험담 등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각각 다른 맛과 향기를 낸다. 유머와 감동, 위로와 공감 등이 갖가지 색깔로 어우러진 씨실과 날실이 되어 총천역색 작품을 건네주는 듯하다. 이 책을 읽어나가다보면 저자가 '글 쓰는 내과 의사'로 자리잡고,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쓸 것이라 짐작된다.

친근감 있는 지인 느낌의 의사가 들려주는 생생한 이야기에 집중해서 읽다보면 어느새 마지막 이야기까지 읽게 된다. 특히 잘 몰랐던 의사의 삶과 마음을 엿볼 수 있어서 기대 이상의 감동과 공감을 느끼게 된 책이다. 추천하고 싶은 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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